장애인고용의 숫자는 분명 늘고 있다. 의무고용률은 상향됐고, 공공 일자리는 확대되고 있으며, 정부의 정책 의지도 이전보다 분명해졌다. 그러나 일터의 풍경은 과연 그만큼 달라졌을까. 본고는 “얼마나 고용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장애인고용을 둘러싼 생산성의 기준, 자립에 대한 오해, 그리고 직무 환경 혁신이 만들어낸 실제 변화를 통해 노동의 정의를 다시 살펴본다. 아울러 이 코너는 장애인고용을 시혜나 제도의 문제가 아닌, 노동의 가치와 일터의 구조를 다시 묻는 사회적 과제로 조명하며, 현장의 사례와 정책 논의를 잇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됐다. <편집자 주>
숫자가 채워진 일터에 여전히 남겨진 질문들
최근 정부는 장애인고용 의무를 저버린 기업에 대해 고용부담금을 인상하고 실질적인 이행 강제력을 높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실제로 공공부문 의무고용률은 3.8%까지 상향되었으며,
보건복지부는 2026년 장애인일자리 지원 대상을 3.6만 명 수준으로 확대하고 예산 또한 전년 대비 증액 편성하는 등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는 추세다. 하지만 현장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필자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겁다.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 안의 ‘노동’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배담론은 여전히 ‘표준 노동력’이라는 견고한 성벽 위에 서 있다. 이 성벽 안에서 노동은 오직 ‘단위 시간당 산출물’로만 측정된다. 100m를 13초에 뛰는 사람을 표준으로
정해두고, 신체적 혹은 정신적 제약으로 걸음이 느린 이들에게 “왜 13초 안에 들어오지 못하느냐”고 묻는 격이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율이 15개 장애 유형 중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이 표준의 성벽이 특정 장애 유형에게는 더욱 높고 견고함을 시사한다. 기준에 미달하는 장애인의 노동은 ‘비효율적인 것’ 혹은 ‘배려가 필요한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일터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장애인고용의 성패는 채용 인원보다, ‘일하는 조건을 바꾸는 능력’에서 갈린다.
개인의 적응을 넘어 직무 환경의 혁신이 만든 변화
필자가 주목한 호텔업을 영위하는 대기업 W의 정신장애인 고용 사례는 이 견고한 생산성 담론에 균열을 내는 구체적인 장면들을 보여준다. 처음 이 기업이 정신장애인을 고용했을 때, 동료 직원들은
정신장애를 미지의 영역으로 느끼며 불안해했다. “우리의 업무도 바쁜데 이들까지 케어해야 하느냐”는 항의는 생산성 지배담론이 현장에서 표출되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반전이 일어났다. 표준적 생산성의 잣대로는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웠던 정신장애인들도 적합한 직무 배치와 지원이 갖춰지자 컵 세척, 린넨 접기 등 주어진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며
자기 자리를 지켜냈다. 결정적인 변화는 ‘정당한 편의제공’에서 나타났다. 무거운 컵 카트를 끌다 컵을 깨뜨리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업은 사람을 탓하는 대신 동선을 최소화하도록 식기세척기를 추가
배치하고 조명을 LED로 교체하는 등 ‘직무 환경의 혁신’을 선택했다.
이 변화는 장애인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다. 환경 개선은 업무의 안전과 품질, 협업의 안정성을 먼저 끌어올렸고, 그 결과로 비장애인 직원의 업무 효율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장애인 직원은 더 이상
자신의 속도에 대해 자책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터를 공유하는 동료들이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 ‘현장을 함께 지키는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하자, 일터는 차가운 생산 공간을 넘어
인간적 유대가 흐르는 공동체로 진화했다.
상호의존적 자립이 여는 디지털 대전환의 기회
우리가 타개해야 할 또 다른 지배담론은 ‘모든 것을 홀로 해내는 독립’에 대한 환상이다. W의 성공 뒤에는 전문가들이 권위적인 태도를 버리고,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기업과의 사이에서
수평적인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한 ‘지역사회 지지망의 연대’가 있었다. 자립은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적절한 사회적 자원을 선택하고 활용하며
삶을 주도해 나가는 ‘상호의존적 자립’의 가치가 일터에서도 실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무능함의 증거가 아니라, 노동을 지속하기 위한 능동적인 선택이자 권리다.
유럽의 사례는 이러한 상호의존적 고용 모델의 미래를 잘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사회적 협동조합(B형)은 장애인과 지역 주민이 함께 일하며, 노동의 가치를 단순히 수익성이 아닌 ‘지역사회 통합의
정도’로 측정한다. 또한 독일의 통합사업장(Inklusionsbetriebe)은 시장 경제 안에서 경쟁하면서도 전체 인력의 상당수를 중증장애인으로 고용하며, 국가로부터 인건비 자체가 아닌 ‘직무
보조 및 환경 개선’에 초점을 둔 지원을 받는다. 핵심은 사람을 표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직무와 환경을 조정하고 필요한 지원을 일터 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일하는 풍경’을 상시화하는 데
있다.
이러한 흐름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시적 변화와 맞물려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자동화와 AI의 발전은 단순 반복적 일자리를 축소시킬 것이라는 위기감을 주지만, 동시에 스마트 보조공학기기를 통해
장애인의 개별적 특성을 지원함으로써 비장애인과의 격차를 줄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기술은 장애인이 ‘표준’에 맞추기 위한 보조물이 아니라, 장애인의 특성이 그대로 일의 방식이 되도록
노동환경을 재설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AI가 인지적 보조를 수행하고 로봇이 신체적 제약을 보완할 때, 노동의 정의는 ‘속도’ 하나의 잣대에서 벗어나 ‘정확도’, ‘안전’, ‘품질’, ‘협업’,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기여의 지표로 재편될 것이다.
양적인 확대를 넘어 질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정책
현 시점에서 정부 정책의 진화는 고무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장애인고용 의무 이행 지원을 위해 단순한 규제를 넘어 기업별 맞춤형 컨설팅을 강화하고, IT·디지털 분야의 장애인 특화 훈련 과정을
확대하는 등 변화하는 산업 구조에 대응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역시 2026년 계획을 통해 ‘읽기 쉬운 자료 감수’, ‘장애인 편의시설 모니터링’ 등 장애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직무들을 공공일자리로
대거 도입하며 노동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다만, 이러한 성과가 지속가능하려면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무는 범부처 협력 체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노동부의 '시장형 고용'과 복지부의 '복지적 일자리'가 분절되지 않도록 장애인고용 통합지원
플랫폼을 구축하여, 장애인이 생애주기에 따라 유연하게 일자리를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
향후 정책은 세 가지 지향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취업자 수라는 양적 지표를 넘어 근속기간과 임금 수준에 따라 장려금을 가산하는 ‘고용의 질’ 중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플랫폼
노동이나 재택근무와 같은 비전형적 근로 환경에서도 장애인이 자신의 노동권을 지킬 수 있도록 새로운 안전망을 구체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순 노무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디지털 전환에 따른 직무
재설계를 지원하고, 개개인의 역량에 맞춘 ‘이력 기반 맞춤형 고용지원’을 통해 장애인이 미래 산업의 주역이 되도록 혁신해야 한다.
노동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미래를 향하여
장애인고용은 부족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시혜적 복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노동을 정의해온 낡고 편협한 상상력에 도전하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표준적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비장애인 노동자들 역시 나이가 들거나 건강을 잃으면 언제든 ‘비효율적 존재’로 밀려날 수 있는 잠재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기준을 유연하게 넓히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보험과도 같다.
미래의 장애인고용은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결핍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조각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산출물의 양이 아닌 ‘사회적 기여’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일이다. 일터는 단순히 재화를 생산하는 곳을 넘어,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자의 속도로 시민권을 획득하고 서로의 존재를
환대하는 존엄한 현장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표준’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각자의 자리에서 존엄하게 기여하는 새로운 노동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기업은 다양성을 통해 혁신을 얻고, 장애인은 노동을 통해 상호의존 속에서 자립을
구체화하고 확장하며, 사회는 이들의 연대를 통해 통합을 이루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우리 모두가 일터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는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