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승환 선임연구원(엔젤로보틱스)
돌이켜보면 로봇은 오래전부터 우리 삶의 언저리에 자리해 왔다. 7·80년대의 인기 캐릭터 우주소년 ‘아톰’, 공공의 안전을 위해 움직이는
‘로보카_폴리·로이·엠버·헬리’, 그리고 실사 영화에서의 ‘아이언맨’까지. 비록 스크린 너머의 세계였지만, 그 상상들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기술의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승환 연구원에게 그 예고는 이미 현실이 됐다. 9년 전 사고로 삶의 조건이 갑작스레 바뀌자, ‘길’을 찾아야 했던 그는 ‘로봇’을 선택했다. 그리고 2024년 에서 우승을 차지, 로봇은 더 이상 상상에 머물지 않는 ‘지금의 기술’임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그동안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외로운 싸움을 했을 김 연구원을, 또 하나의 희망을 마음에 새기던 지난 연말 만났다.
김승환 연구원은 로봇 연구자이자 사용자로서 엔젤로보틱스의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먼저 간단히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공적인 삶 이전의, 지금 ‘이 순간’ 한 개인으로서의 ‘나’에 대해는 어떻게 설명하고 싶으신가요?
안녕하세요. 엔젤로보틱스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승환입니다. 엔젤로보틱스는 인간과 로봇이 자연스럽게 상호 작용하며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예요. 저는 이곳에서 기술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몸으로 확인하며 검증하는 사용자이자 연구자로 연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 분야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이전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해왔고, 로봇 기술과의 인연은 사고 이후 이어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직접 만지고, 만들고, 구현해 보는 것’이 좋아했는데, 돌이켜보니 생각보다 제가 이 일에 제 성향과 잘 맞는 분야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를 “사람을 위한 로봇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사용자의 경험’을 기술 속에 넣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증하며 확인하면서요.
Q. 중증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웨어러블 로봇이 공개된 게 지난 2024년 10월이었습니다. 어떤 장치이고,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워크온 슈트 F1’은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의 보행을 가능하게 하는 웨어러블 로봇입니다. 단순히 ‘걷게 하는 것’ 자체보다는, 제한된 조건이지만, 일상에서 사람과 로봇이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실제 일상에서 바로 사용하기 위한 상용제품은 아니지만, 기술적 한계와 가능성을 점검하고, 사용자 경험의 방향성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착용자의 움직임, 피로도, 조작 방식 등 사용자의 관점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하나하나 확인해 가는 과정이에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기술이 언젠가는 삶 속으로 들어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도 따라옵니다. 저 역시 로봇 재활을 직접 경험해 온 사용자로서, 접근성에 대한 논의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과제라는 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술과 함께할 수 있으려면, 제도적·사회적 보완 장치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상이 조금씩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고 있고, 결국 그렇게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이 로봇에 참여하게 된 계기 역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술을 직접 입고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엔젤로보틱스의 웨어러블 로봇은 재활의 한계를 일상의 가능성으로 바꾸고 있다.
Q. 연구원님의 시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하반신 완전마비라는 상황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언제이고, 연구원님 삶에서 어떤 시기로 기억되고 있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2017년 교통사고가 났고, 그 사고로 하반신 완전마비 판정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상황 파악이 안 되더라고요. 예전에 유리병을 밟아 척추 마취를 하고 수술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너무 비슷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면 감각이 돌아올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고 회복이 더디다는 걸 체감하면서 “이 상태가 평생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됐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꽤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돌아보면 혼란과 막막함이 컸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제 삶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 시기인 것도 같고요. 재활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 도움 덕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시간을 떠올릴 때, 힘들었던 기억보다도 감사함이 남아 있는 시기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Q. 웨어러블 로봇을 ‘연구 대상’이 아니라 ‘직접 착용하는 기술’로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 궁금합니다. 그 순간, 기술은 연구원님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왔나요?
제게 웨어러블 로봇 기술은 하나의 단순한 기술이 아닌 가능성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다시 걷기는 어렵다는 말을 듣고 나서, “내 몸을(걸음을) 직접 움직일 수 없다면 나를 움직이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로봇을 찾아보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처음엔 재활병원에서 큰 장비에 매달려 트레드밀 위를 걷게 해주는 로봇 재활부터 접했고, 거기서 웨어러블 로봇과 사이배슬론 같은 무대를 알게 되면서 “기술이 좋아지면, 언젠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조금씩 생겼습니다.
로봇 기술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그때그때 이어진 인연들이 자연스럽게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해요. 재활 중 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로봇 재활과 웨어러블 로봇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이 분야를 찾아보기 시작했으니까요. 제 복귀를 오래 기다려 주셨던 이전 회사 대표님도 정작 진로를 바뀌겠다 했을 땐 응원하며 흔쾌히 보내주셨고요. 그런 배려와 신뢰가 있었기에, 저는 새로운 선택을 두려움보다는 책임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봇 기술과의 만남은 여러 사람의 기다림과 응원이 겹겹이 이어지며 열어준 하나의 길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김승환 연구원은 2024년 사이배슬론 대회 출전 당시 ‘워크온슈트 F1’을 착용했다.
Q. 개발 당시 연구팀의 일원이자 동시에 로봇을 착용하는 당사자로 참여하셨습니다. 혹시 두 역할 사이를 오가면서 느낀 점이 있는지요? ‘사용자’로서 느낀 불편이나 두려움이 연구 과정에 영향을 준 순간도 있었을까요?
사용자이자 연구 참여자로서 느낀 건, 연구자의 시선과 사용자의 시선 사이 간극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입니다. 연구자의 목표는 “일어나 걸으면 된다”로 정리되기 쉽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착용을 해보면 설계 단계에서 보이지 않던 문제가 드러나곤 해요. 특정 부위가 불편해지면 다리에 강직과 떨림이 생기기도 하고, 자세를 바꾸면서도 의도치 않은 반응이 나타나거나 벗고 난 후 상처가 발견되기도 하죠. 그런 피드백들이 연구 과정에 들어가면서 개선 방향을 바꾸거나 설계를 다시 하게 된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영화 속 로봇을 현실로 앞당겨진다면, 그 속에 바로 제 역할도 들어 있다고 믿어요.
Q. 로봇을 착용하고 실제로 걷거나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단순히 “걷는다”는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로봇을 입고 처음 20m를 걸었을 땐 솔직히,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쓰지 않던 근육들을 다시 움직이는 과정이었으니까요. 동시에 “아! 내가 이렇게 걸었었지, 이렇게 걷고 있구나”라는 감각도 분명히 있었죠.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는데, 어느 순간 그 거리를 지나와 있더라고요. 어느새 여기까지 왔고 “현실이 맞구나”하며 벅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그 생생함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지난해 열린 사이배슬론 대회에서 우승하셨습니다. ‘기술을 증명하는 무대’이자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는 무대’였죠. 그때의 감정은 또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해냈다”보다는 “우리가 해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결과는 아니었거든요. 교수님의 지도 아래, 팀원 모두가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했던 성과였어요.
동시에 그 무대는 기술이 대표성을 갖게 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승의 순간보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결과에 안주하기보다는, 끝까지 책임지고 이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과정 자체가 앞으로 제가 맡아야 할 역할이자 풀어가야 할 과제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Q. 연구에 참여한 이후, 일상을 대하는 태도나 미래를 대하는 자세에 변화가 있었다면요?
돌이켜보면 장애라는 경험은 제 삶에서 실패이자 도전이었고,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장애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여전히 생각은 사고 이전과 이후 사이, 장애와 비장애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종종 갈등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럼에도 분명한 건,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며 나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의 존재도 큰 힘이 됩니다. 한동안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주말부부로 지냈는데, 말문이 트인 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함께 공놀이를 하거나 물놀이를 즐기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대신 무엇이든 더 조심스럽게 계획하고 준비하게 돼요. 그 안에 웨어러블 로봇 기술에 대한 기대도 있지 않을까요? 상상 속의 기술이 현실이 되어온 것처럼,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한다면 언젠가는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를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을 잘 지키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Q. 연구원님에게 웨어러블 로봇 기술은 아직 더 가야 할 ‘미래’인가요, 아니면 이미 삶 속에 들어온 ‘현실’인가요? 또한 기술이 실제로 삶을 바꾼다고 실감한 순간이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웨어러블 로봇은 여전히 더 가야 할 미래이면서도, 동시에 이미 현실에 들어와 있는 기술인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은 더 작아지고 더 편해져야 할 부분도 많죠.
실제로 기술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조금씩 분화되고 확장되면서, 더 작은 형태의 로봇이나 다양한 장애 유형과 불편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용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웨어러블 로봇은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기술이자 앞으로 더 확장될 미래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런 기술은 삶을 뭔가 획기적으로 바꾸기보다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변화로 나타나지 않을까 합니다. 시계를 의도적으로 ‘봐야 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워치나 휴대폰처럼 무심코 확인하게 되는 순간들처럼요. 있을 땐 몰랐다가 없어져야만 “어디 갔지?” 하며 찾게 되는 거죠. 웨어러블 로봇 역시 언젠가는 휠체어나 다른 보조기기처럼, 혹은 안경을 쓰는 것처럼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엔젤로보틱스의 연구팀은 로봇 기술로 재활과 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