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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이 비어 있던 도시에서:

AI 시대, 장애인의 노동이 묻는 질문

함께 만들다 인식의 확장
글. 전지혜 교수(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AI는 일자리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기준을 바꾸는 기술이다. 이 글은 자동화 시대에 장애인의 노동이 보호의 대상에 머무를 것인지, 새로운 삶의 선택지로 확장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일하는 존재’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장애인 노동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 보기 위한 문제 제기다. 이 칼럼에서는 기술의 속도에 밀려 다시 주변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AI 시대의 장애인 노동을 ‘고용률’이 아닌 ‘삶의 조건’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해 본다.

기계가 운전하는 시대, 노동은 어디로 가는가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길,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화려한 건물도, 새로운 스타트업도 아니었다. 운전석이 텅 빈 택시가 도로 위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 도시에서는 운전사가 없는 자율주행 택시가 이미 일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택시는 신호를 기다렸고, 보행자를 피해 멈췄으며, 목적지 앞에 정확히 섰다. 그 모든 과정에 운전자는 없었다. 수많은 인파와 복잡한 도로를 비켜가며 달리던 자율주행 택시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차를 몰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기술의 발전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변화는 머릿속 생각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을 압도하는 장면으로 다가왔다.
만약 한국에도 자율주행 택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어떨까. 한국의 택시 기사들에게 자율주행 택시운영사업권의 우선권을 주는 형태로 운전사의 소득은 보전하면서 노동만 기계가 대체하게 될까. 아니면 거대 빅테크 기업들이 플랫폼을 장악하고 모든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가 될까. 그렇게 된다면 기본소득은 정말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어떤 방식이든,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기존의 노동 형태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변화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과 노동을 재편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뒤따랐다. “이 변화 속에서 장애인의 노동은 어떻게 될까?”
사실 장애인의 일터는 늘 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공장과 사무실은 ‘정상적인 신체’를 기준으로 설계되었고, 그 안에서 장애인은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정보화 사회가 도래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각 중심의 화면, 빠른 손놀림을 전제로 한 컴퓨터 환경은 장애인에게 또 다른 장벽이 되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기본값의 인간’은 늘 비슷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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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노동은, 장애인에게도 같은 출발선이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공학의 발전과 재택근무, 유연한 근무 방식은 장애인의 노동 참여 가능성을 조금씩 넓혀 왔다. 특히 정보화 시대는 장애인의 노동을 ‘권리이자 보호’의 영역으로 바라보며 장애인 고용률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복지의 연장선이었다. 장애인의 노동은 비장애인의 노동과 대등한 경제활동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책무로서 보호되어야 할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의무고용제도와 보호작업장은 그런 인식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장애인은 일하는 존재이되, 여전히 보호의 대상이었다.
이제 자율주행 택시가 현실이 된 4차 산업혁명, AI 중심 사회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장애인의 노동은 앞으로도 보호의 틀 안에 머물러야 할까.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있을까. AI는 분명 위기이자 기회다. 기술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가치와 상상력으로 그것을 활용하느냐에 있다.
사실 AI는 이미 노동시장의 풍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업무는 자동화되고, 분석과 판단, 사람 사이의 소통이 필요한 일은 새로운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이 변화는 장애인에게 상반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우선 단순 조립이나 사무 보조처럼 장애인 고용이 집중되어 있던 영역이 더 큰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장애인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이 오히려 자동화에 가장 취약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저임금적용제외를 받는 보호작업장의 노동은 더욱 취약한 값싼 노동으로 인식되어, AI를 통한 효율화 과정에서조차 배제될지도 모르겠다. 장애인의 노동은 효율화의 대상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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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바꾸는 노동의 얼굴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분명한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음성 인식, 실시간 자막, 이미지 설명, 자동 요약과 같은 AI 기술은 시각·청각·발달장애인의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는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보조기술이 아니라, 일의 구조 자체를 다시 짜는 기술이다. 무엇을 얼마나 빠르게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를 묻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AI를 장애인의 활동과 참여를 증진시키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또는 이미 보장된 일자리가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더 이상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AI의 발전은 비장애인의 노동시장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정적인 직업이 평생의 정체성이 되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오랜 시간 배제되다가 제도적 보호를 통해 일자리를 보전받아 온 장애인의 노동 경험은, 어쩌면 다가올 미래에 우리 모두가 마주하게 될 노동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보호작업장에서 기계가 종이봉투를 접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수작업으로 봉투를 접는 노동을 보호해 왔듯이, 앞으로는 인간의 노동 자체가 제도적 보호를 요구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의 의미 자체를 다시 묻게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노동하는 인간’으로 자신을 정의해 왔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묻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살아왔다. 직업은 곧 정체성이었고, 노동은 삶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AI와 함께하는 사회에서는 이 공식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는 “무엇을 하며 자유시간을 보내는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즐기고 관계를 맺는가”가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하는 인간에서, 유희하는 인간으로의 이동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희는 단순한 여가나 소비가 아니다. 자신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활동에 시간을 쓰고, 관계를 맺고, 삶을 구성하는 능력 그 자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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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수 있는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이 변화는 장애인에게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애인의 삶은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평가받아 왔다. 일하지 못하면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기 어려웠고, 노동을 통해서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준이 강했다. 물론 노동은 여전히 중요하다. 일과 일터를 통해 삶을 채우는 경험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의미를 준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기준일 필요는 없다. AI와 함께하는 사회에서는 일과 여가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장애인은 노동시장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도 있고, 노동 바깥에서 창작과 돌봄, 관계 맺기와 참여를 통해 삶의 지평을 넓혀 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장애인 고용 정책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는 단순히 몇 명을 고용했는가를 넘어, 장애인이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인가를 묻는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직업훈련은 AI 환경에 맞게 재설계되어야 하고, 보조기술은 복지의 부가적 혜택이 아니라 노동과 삶을 연결하는 기본 인프라로 인식되어야 한다. 동시에 일하지 않는 시간, 즉 여가와 돌봄, 관계 맺기의 영역에서도 장애인이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수다 떠는 장애』에서 장애를 결핍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고 쓴 적이 있다. AI 시대의 장애인 노동 역시 그렇다. 장애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특정한 몸과 특정한 삶의 방식만을 기준으로 삼아 왔기 때문에 배제되어 왔다. AI는 그 기준을 더 좁힐 수도 있고, 더 넓힐 수도 있다. 음성 인식과 자동 기록 기술은 손으로 오래 글을 쓰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회의와 문서 작업의 부담을 줄여주고, 실시간 자막과 자동 번역은 청각장애인이 국경과 언어를 넘어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반복적인 관리 업무를 AI가 대신하면서,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일의 핵심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도 가능해진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넘어, 장애인이 노동과 삶을 맺는 관계 자체를 바꾼다. 하루의 대부분을 버티듯 일터에 맞추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리듬과 관심에 맞게 일과 여가를 다시 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AI를 통해 더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샌프란시스코의 무인 택시가 내게 던졌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AI 시대에 우리의 노동은 분명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그 변화의 방향에서, 장애인의 일과 삶이 다시 한번 뒤로 밀려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