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
정신장애인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다. 관계를 회복하고, 존엄을 지키고, 다시 사회와 연결되는 거의 유일한 통로에 가깝다. 당사자 단체 ‘파도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살려고 만들었다”는 말처럼, 파도손은 무너진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서로의 손을 붙잡으며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온 조직이다. 이곳에서 정신장애는 배제의 이유가 아니라, 경험이자 역량이 된다. 장터 초대석에서는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기 위해 힘쓰고 있는 이정하 대표를, 그림이 가득 걸린 파도손 건물의 한 공간에서 만났다.
이정하 대표는 파도손의 출발을 “서로를 붙잡고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Q. 파도손은 어떤 계기로 시작됐나요? 특히 대표님께서 “살려고 만든 단체”라고 표현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파도손은 거창한 구호나 운동의 계획에서 출발한 단체는 아닙니다. 제 삶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지점에 와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파도손을 두고 “살려고 만든 단체”라고 말하곤 하죠.
처음부터 인권운동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했고, 입·퇴원이 반복되면서 삶의 바닥이 계속 무너지고 있었죠. 그 절박한 상태에서 혼자 버티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정말 끝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당사자 단체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른 거예요. 마침 전국의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드나들던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었고, 그 안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따로 모여 논의를 시작했고요. 회원이 약 8천 명 정도 되던 큰 카페에서 200명가량이 독립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우리 삶을 바꿀 조직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구체화했습니다. 그래서 파도손은 ‘무언가를 해보자’는 운동의 출발점이라기보다, 서로를 붙잡고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Q. 파도손을 만들기까지의 시간은 대표님께 어떤 시기였나요? 그 당시의 생활과 상황을 조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돌아보면 정말 “전부 다 어려움”이었어요. 당시에는 퇴원을 해도 다시 입원하는 일이 반복됐고, 10년 가까이 일을 하지 못한 시간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살아 있다”는 감각보다 “겨우 버틴다”는 감각이 더 컸다고 할까요? 생활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인데, 그걸 다시 세우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이잖아요.
가족과도 단절됐습니다. 강제 입원을 많이 겪으면서 갈등이 커졌고, 파도손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할 즈음에는 이미 가족과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였어요. 관계가 끊기면 몸을 누일 자리도 불안정해지죠. 한동안 자취형 시설을 거치기도 했고, 이후에는 임대아파트에서 지내다 지금은 행복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주거의 변화는 단순히 “어디서 살았다”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정신장애인이 삶을 다시 꾸리려면 안전한 공간, 안정적인 관계, 스스로를 지킬 조건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주는 지점이죠.
Q. 단체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파도손’이라는 이름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정해졌고, 그 안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요?
이름은 제가 혼자 정한 게 아닙니다. 2013년에 온라인 카페에서 약 50명 정도가 일주일 동안 채팅으로 토론을 했어요. “정신장애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뭘까”를 하는 질문이었죠. 그때 광주에 계신 한 당사자가 “우리 마음이 파도처럼 출렁출렁하지 않냐”고 하더군요. 스트레스와 환경에 따라 마음의 상태가 크게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일상을 통째로 흔들어버리는 경험이 당사자들에게는 너무 익숙하니까요. 그 이미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여기에 ‘손’이라는 단어를 또 한 사람이 보탰죠. 마음이 출렁일 때 “서로를 위험하다 여기지 말고, 고립시키지 말고, 옆에서 잡아주자”는 뜻이었어요.
저는 ‘파도손’이라는 이름이, 우리가 어떤 조직인지 설명하기 전에 이미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더더욱 손을 놓지 않기 위해 모였다는 것. 이름 자체가 우리의 생존 방식이자, 앞으로의 약속인 거죠.
파도손은 서울특별시 보조금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파도손 동료지원가 활동의 한 장면으로,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공감과 곁의 힘을 담았다.
Q. 대표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의 파도’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정신장애인은 스트레스에 취약합니다. 중요한 건 스트레스가 단지 “힘들다”에서 끝나지 않고,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에요. 몸이 약한 사람은 면역이 약한 부분에서 탈이 나듯이, 정신장애인들은 정서·심리적으로 취약한 지점이 증상 형태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스트레스의 강도가 같아도 반응의 양상은 훨씬 극단적으로 나타나죠. 저 역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먼저 불안이 생기고, 통증에 환각까지 심해져요. 잠을 못 자는 게 당연하고요, 그러면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더 힘든 건, 이런 상태가 한 번 나빠지고 나면 끝나는 식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증상은 항상 같은 강도로 이어지지 않고, 좋아졌다가 다시 흔들리고, 또 잠시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오는 식으로 ‘파도처럼’ 굉장히 변화무쌍하게 반복돼요. 결국 그 파도를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증상이 심해질 때 대표님께 실제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의료적 치료 이후에,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증상이 심해지면 우선 의료적인 도움을 받아요. 급성기에는 약물이 분명 진정 효과를 주고, 응급 상황에서는 의료 개입이 꼭 필요하죠.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나를 지지해 주는 동료의 존재’예요. 중요한 건 ‘상담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가’가 아닙니다. 나를 병리적인 존재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태도죠. 늘 설명하고 납득시키며 “나는 위험하지 않다”,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정신장애인에게, 그런 프레임을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관계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됩니다. “너는 그냥 너다”라는 방식으로 곁에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회복의 방향이 열려요. 그런 관계가 있어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도 생기고,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시 일을 생각할 여지도 생기죠.
Q. 파도손 활동에서 그림과 같은 예술 작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대표님 개인에게, 또 참여하는 당사자들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림은 저와 많은 당사자들에게 하나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나 혼란을, 선과 색으로 밖으로 꺼내 놓는 방식이죠. 파도손에서는 이런 미술 모임을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이어가고 있는데, 실제로 “증상이 없어지진 않지만, 증상에 전부 잠기지 않을 공간이 생긴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또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환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으로 느끼게 됩니다. 실제로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그 경험을 계기로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분들도 계시죠. 완성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경험 자체가 큰 힘아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에게 예술은 치료라기보다, 흔들리는 마음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삶의 방식에 가깝습니다.
Q. 대표님께서 느끼기에, 정신장애인에 대해 가장 뿌리 깊은 오해나 편견은 무엇인가요? 특히 일터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보시나요?
가장 큰 편견은 단연 “위험하다”는 인식입니다. 실제로 당사자들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취약한 사람이 훨씬 많은데도 그렇죠. 사회는 정신장애인을 ‘이상한 사람’,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너무 쉽게 씌웁니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정신병자’라는 말이 욕처럼 사용되는 걸 보면, 그런 프레임이 얼마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이런 인식이 반복되고 쌓일수록, 당사자는 설명하거나 이해받아 보기도 전에 이미 사회 밖으로 밀려나기 쉽고요.
저는 특히 ‘정상-비정상’ 구도가 권력관계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비장애인은 ‘정상인’, 장애인은 ‘비정상인’으로 간주되죠. ‘정상인’은 ‘비정상인’보다 우위에 있고, 그러면 당사자가 하는 말과 판단은 어느 순간부터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바뀌죠. 정상인의 말은 옳고, 비정상인의 말은 틀리다는 구도가 만들어져요. 결국 당사자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구조죠. 이는 일터에서 좀 더 더 빠르게 작동하고요. 채용, 평가, 협업 과정에서 “조금 불안정해 보인다”는 느낌만으로도 배제되기 쉽고, 어떤 행동도 ‘위험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커지니까요.
Q. 파도손은 당사자들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생각에서 출발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시도들을 해 오셨나요?
파도손이 초기에 가장 열심히 했던 건 당사자들이 일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구상하고, 전문 상담자(동료지원가) 교육을 하고, 당사자들이 이 사회에서 한 사람의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사람이 일한다는 건 정말 평범한 일이잖아요. 눈 뜨고 일하고, 그 소득으로 살아가는 것. 그런데 정신장애인에게 그 평범함이 막히면, 생계만이 아니라 관계도 끊기고 존엄도 무너집니다. 저는 당사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유의 핵심에 일의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파도손은 “당사자도 일할 수 있다”는 선언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그 일이 가능하도록 훈련, 역할, 자리, 관계까지 갖춘 구조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일’은 개인의 의지로만 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파도손의 당사자들은 상담과 교육, 일자리 모델을 함께 논의하며, 정신장애인이 한 사람의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간다.
Q. 당사자를 동료지원가로 채용해 일하게 하는 모델이 인상적입니다. 이 제도는 어떻게 시작됐고, 법과 예산으로 제도화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파도손은 당사자를 직접 채용해 일하게 합니다. 당사자들의 가장 특수한 경험, 즉 투병의 경험을 강점으로 바꿔 동료지원가라는 직무로 연결했어요. 현재도 10명 이상이 파도손에서 근무하며 지역사회 당사자들을 지원하고,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당사자에게는 당사자가 가장 잘 들어줄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거든요.
다만 이 일을 지속하려면 결국 제도와 예산이 필요합니다. 동료지원은 공공의 일에 가깝기때문에 공적 예산이 있어야 하고, 공적 예산을 만들려면 근거 법령이 필요하죠. 그래서 법과 정책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도 참여했고, 실제로 입법을 통해 제도화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또 여기서 양성된 동료지원가들이 다른 센터나 기관으로 취업하기도 해요. 여전히 부족하지만 ‘당사자가 경험을 강점으로 바꾸어 노동이 되는 길’, 그 모델이 아주 조금씩 현실화 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우리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역할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제도로 증명해 온 셈이죠.
Q.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과 당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함께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지속 가능한 사회적 일자리와 지지체계예요. 정당한 편의 제공도 필요하고, 당사자의 증상과 삶을 이해하며 함께 버텨줄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하죠. “여기서 일하세요” 하고 자리만 내어준다고 일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지지가 이루어지고, 공동체가 함께 책임질 때 비로소 일은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사자는 다시 고립되기 쉽고, 고립은 곧 증상의 악화로 연결되니까요.
정신장애는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감당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만날 수 있고, 그런 경험 앞에서 나타나는 반응이 증상일 뿐이죠. 그러니 멀리서 보고 너무 쉽게 판단하지 말고, 조금만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장애인은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