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인식의 확장
장애인 고용에 대한 관성적 시선을 넘어, 새로운 관점과 해법을 제시하는 칼럼

가장 배제된 사람의 노동에서,
장애인고용의 방향을 다시 묻다

우리는 왜 어떤 사람의 노동은 ‘가능성’으로, 어떤 사람의 노동은 ‘지원 대상’으로만 바라봐 왔을까.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이 오래된 기준을 흔든다. 노동을 통해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감각, 그 당연한 경험이 누구에게는 왜 이제야 가능해졌는지를 묻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글.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능력주의가 가른 노동의 경계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한 뒤 처음으로 ‘사회 속에서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한 장애인야학에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했던 한 중증장애인의 말이다. 그는 오랫동안 집에 머물며 사회와 단절된 일상을 보내왔다. 장애로 인해 이동과 소통, 일상적인 활동에서 반복적으로 제약을 겪었고, 그 결과 사회와의 접점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던 그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 권익옹호와 인식개선 활동을 수행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 참여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기획하고 시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동자’로서 하루를 살아간다. 이 경험은 그에게 생계를 넘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기쁨을 주었다. 우리는 왜 이런 경험을 ‘특별한 사례’로 받아들이는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노동은 오랫동안 ‘생산성’이라는 기준안에서 평가되어 왔다. 일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가 노동의 전제 조건이 되었고,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노동의 영역 밖으로 밀려났다. 장애인 고용 정책 역시 이러한 전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일정 수준의 노동 능력을 갖춘 장애인을 일반 노동시장에 편입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서 ‘누가 노동 현장에서 배제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충분히 제기되지 못했다.
이러한 시선은 능력주의(Ableism)와도 연결된다. 능력주의는 노동의 가치를 개인의 신체적·인지적 능력과 생산성으로만 판단하는 관점이다. 일정한 속도로 일하지 못하거나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은 노동의 주체로 인정받기 어렵다. 보호작업장과 같은 분리된 고용 형태는 장애인을 ‘일하는 사람’으로 사회 안에 위치시키기보다는, 경쟁 노동시장과 분리된 공간에 머물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정책의 목표를 고용률로 설정할수록, 성과를 만들기 쉬운 집단에 자원이 집중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쉽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지원이 필요했던 사람들, 노동시장 진입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정책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 머무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중증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노동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는 이분법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미지

능력주의는 장애인을 ‘일하는 사람’으로 사회 안에 위치시키기보다는, 경쟁 노동시장과 분리된 공간에 머물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노동을 확장하는 새로운 기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이러한 전제 자체를 흔드는 시도다. 이 제도는 노동을 오직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행위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으로 확장한다. 인식 개선, 권익 옹호, 문화예술 활동과 같은 영역을 노동의 내용으로 인정하는 것은, 노동의 기준을 효율과 성과에서 사회적 책임과 변화로 옮겨 놓는 작업이다. 이는 단지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를 하나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다시 묻는 전환에 가깝다.
이러한 전환은 국제인권 기준과도 맞닿아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의 노동권을 단순한 고용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동등하게 참여할 권리로 규정한다. 협약 제27조는 장애인이 개방적이고 통합적인 노동시장과 노동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며, 국가가 특히 공공부문에서 장애인 고용을 장려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음을 명시한다. 동시에 제8조는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해소하고 장애인의 역량과 기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킬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이 두 조항을 분리된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실천으로 결합한다. 노동을 통해 생계를 보장하는 동시에, 그 노동의 내용 자체가 사회 인식을 바꾸는 활동이 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재정의다. 지금까지 노동의 가치는 눈에 보이는 생산물, 즉 경제적 성과로 측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사회가 지속 가능하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 모두 시장 가격으로 환산되지는 않는다. 차별과 편견을 줄이는 일, 공공의 인식을 바꾸는 일,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드러내는 일은 단기간의 수익으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사회의 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노동이다. 이러한 활동을 ‘봉사’나 ‘참여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하는 순간, 노동의 의미는 개인의 성취를 넘어 사회의 방향을 만들어내는 행위로 확장된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바로 이 지점에 위치시킨다. 이들은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나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노동자로 호명된다. 인식 개선 교육을 진행하고 정책 모니터링에 참여하며 지역사회에서 권익옹호 활동을 수행하는 일은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실천이다. 이 노동의 결과는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만들어지는 성과처럼 즉각적인 숫자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반복되고 축적될수록 차별은 완화되고 접근성은 높아지며 공공의 감수성은 변화하게 된다.

이미지

인식 개선 교육을 진행하고 정책 모니터링에 참여하며 지역사회에서 권익옹호 활동을 수행하는 일은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

일회성 기회를 넘어 권리를 향해

그럼에도 제도의 운영 현실은 여전히 이 전환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다수 지역에서 매년 공모 방식으로 운영된다. 사업 주체가 선정되지 않으면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고, 선정이 되더라도 다시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의 내용이나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제도의 구조 자체가 고용의 연속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내년에도 일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이 제도가 아직 노동권으로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노동은 일회성 기회가 아니라 지속될 수 있을 때 비로소 권리가 된다.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는 단순히 임금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안정성, 예측 가능성, 그리고 권리 보장이 결합된 상태를 의미한다. 아무리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고용의 토대가 불안정하다면, 그 경험은 개인의 노력에 의존한 예외적 사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인식개선과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목표는 단기간에 달성되기 어렵다. 장기적인 활동과 관계 형성이 축적될 때 비로소 사회적 변화가 만들어진다. 제도의 불안정성은 노동자의 삶뿐 아니라 정책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변화의 가능성까지 약화시킨다.
결국 관건은 정책의 출발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누가 일하기 쉬운가”를 기준으로 장애인 고용 정책을 설계하는 대신 “누가 가장 배제되어 왔는가”를 기준으로 법과 제도를 세워가면 어떨까. 중증·최중증장애인을 정책의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기존의 고용정책 발전을 되돌려 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정책이 닿지 못했던 지점을 기준점으로 삼아 고용의 방향을 촘촘히 재정렬하자는 제안이다. 가장 배제된 사람의 노동권이 보장될 수 있다면, 다른 장애인들의 노동권 역시 더 두텁게 떠받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미지

장애인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선언과 같다.

함께 바꾸는 노동의 패러다임

이 전환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민간 기업의 고용은 아무래도 시장 논리와 효율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가장 배제된 사람의 노동권을 먼저 책임져야 할 주체는 공공이다.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고용의 기준을 넓히고 노동의 의미를 확장할 때, 민간 영역 역시 그 변화를 참조하게 된다. 공공이 보여주는 선택은 단순한 고용 정책을 넘어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는지를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중증·최중증장애인의 노동을 공공이 책임지는 제도는, 그 자체로 “이 사회는 누구를 노동의 주체로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집단적 응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전환은 각 사람의 자리에서 실천할 때 가능하다. 정책을 설계하는 이들에게는 숫자의 성과보다 제도의 방향을 점검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는 ‘도와주는 대상’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의 관계를 상상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불편함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보다 관점을 바꾸는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장애 당사자에게는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일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노동의 일부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은 단지 한 정책을 수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가장 배제되어 온 사람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다른 모든 사람의 노동 역시 더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장애인 고용 정책의 방향 전환은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떤 기준으로 연대를 설계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 본 기사는 전문가 필진이 작성한 글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