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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초대석
장애인의 삶과 일에 대한 질문과, 그 질문에 응답하는 목소리를 기록하는 코너

다운증후군 캐리커처 작가 서은혜

‘그림이 노동이 되는 순간, 서은혜의 하루는 지속적 삶이 된다’

2006년 방송된 한 다큐멘터리에는 ‘어린 은혜’와 ‘아버지 서동일’이 함께 등장한다. 아버지와 딸로 만난 지 막 3년 차인 시기였고, 아직 딸이 ‘정은혜’로 불리던 때였다. “은혜는 나중에 배우 하고, 화가 해라”는, 당시 영상 속 아버지의 주문 같은 말은 이미 현실이 됐다. 그리고 지난해, 딸은 아버지의 성을 따라 ‘서은혜’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서로의 삶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해 온 두 사람은 마침내 법의 이름으로도 가족이 된 것이다. 그 두 사람을,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의 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글. 편집실 사진. 전경민

서은혜 작가와 그녀의 아버지

오랜 시간 생활과 작업을 함께해 온 두 사람은 지난해 법적으로도 가족이 됐다.

만남을 그리는 사람, 삶을 연기하는 배우

서은혜 작가는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통해 감정을 읽어내는 작업으로 주목받아 온 화가다. 마주 앉은 인물을 단시간에 그려내는 그녀에게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만남이자, 그 기록과도 같은 의미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춘 드문 사례로 평가받으며 진작부터 그녀는 발달장애 예술인의 사회적 가능성을 증명해 왔다.
그런가 하면 배우로서 대중과 만나기도 했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희’ 역을 맡아 자연스럽고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깊은 인상을 남겼고, 자신의 작업과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을 통해서는 예술가이자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그림과 연기,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을 오가며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예술의 영역을 넓힌 것이다.
서 작가의 하루는 오전 7시 활동지원사의 방문으로 시작된다.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준비해 작업실로 출근한 후에는 그림 작업과 전시 관련 업무가 이어진다. 오후에는 주간활동 서비스가 이어져 동료들과 그림을 그리거나 합창·문화 프로그램 등에 참여한다. 외부 활동을 마친 뒤 귀가해 저녁 시간을 보내고, 밤 9시 무렵 하루가 마무리된다.
“근로 및 주간 활동, 개인 활동 지원이 시간대별로 촘촘하게 짜여 있어요. 물론 작품 포장이나 전시 준비 등 근로지원인의 도움도 있지만, 은혜의 하루는 생각보다 바쁘고 스스로 해내는 일도 많습니다.” 아버지 서동일 감독의 부연이다.

화실에서 시작된 변화, 사람을 만나는 그림

서은혜 작가가 그림을 가까이하게 된 것은 스물세 살 무렵, 어머니 장차현실 씨가 운영하던 옥천의 작은 화실에서였다고 한다. 서 감독이 “당시 은혜가 근로활동으로 청소를 하며 화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는 말을 꺼내자 이내 서 작가가 그 시절의 시간을 떠올리며 들려줬다.
“집에만 있었어요. 갈 곳도 없었고, 만나는 사람도 많지 않았어요. 강박과 불안으로 조현병이 와서 환청과 환시에 시달렸어요. 새벽 두세 시에도 소리를 질렀어요.”
그랬던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13년 2월이었다. 향수를 들고 있는 외국 여성의 얼굴을 그린 한 장의 그림이 화가인 어머니의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그 그림을 통해 가족은 비로소 ‘은혜에게도’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무엇보다, 그림이 그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게 됐다. 그리고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은 조금씩 가능성을 바라보는 쪽으로 옮겨 갔다.
이후 가족은 그림을 통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양평 문호리에서는 주말마다 리버마켓이 열리고 있었고, 사람들이 모이는 그곳이라면 그림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타인과 마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하여 2016년 여름, ‘니얼굴’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자리를 잡고 앉은 서 작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림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넘어,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일과 관계의 출발점’이 됐다.

서은혜 작가에게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만남이자, 그 만남을 기록하는 언어와도 같은 의미다.

서은혜 작가에게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만남이자, 그 만남을 기록하는 언어와도 같은 의미다.

그리는 즐거움이 마주하는 기쁨으로

서은혜 작가에게 그림은 특별한 기술이라기보다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 가깝다. 작업 스타일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거예요.”
서 작가는 마주 앉은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바라보고, 느껴지는 대로 선을 옮긴다고 한다. 단순한 선과 색으로 얼굴을 완성하는 그림이지만, 그림을 받아 든 사람들은 대부분 미소를 짓는다고. 그 반응을 보는 순간이 서 작가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저도 좋아요.” 짧은 말이지만 작업의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아버지 서동일 감독의 말에 의하면, 그 모든 순간이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더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환불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 작가는 묵묵히 다음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리고, 그림을 건네고, 반응을 보며 화답하는 과정 자체의 일상이 그저 소중한 것이다.
처음 그림으로 돈을 받았을 때의 기분을 묻자, 서 작가는 “내가 스스로 돈을 벌어서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얻는 수입은 단순한 보상을 넘어, 그림이 취미가 아닌 ‘일’이 되었음을 실감하며 그녀의 세상은 한층 탄탄해지고, 삶은 이전보다 안정된 리듬을 얻었으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작은 용기도 함께 자라났으리라. 실제로 누군가의 주문을 받아 최선을 다해 그리고 그 대가를 받는 과정은 그녀에게 스스로 감당해야 할 책임과, 하루하루를 단단히 잇는 생활의 리듬을 선사했다.
“밥 먹듯이 매일 그려요”라는 서 작가의 말에 서 감독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림은 은혜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의 의미예요. 말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얼굴을 마주 보고 선을 긋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거든요. 그림을 건네는 순간 웃음이 오가고, 그 짧은 교환이 관계로 이어집니다. 예전에는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그림을 통해 동료와 관객,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어요.” 그렇게,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고 반응을 경험하는 경험 속에서 서 작가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확인해 간다.

그림은 서 작가에게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가능성이었다.
그림은 서 작가에게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가능성이었다.

그림은 서 작가에게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가능성이었다.

재능 넘어 ‘일하는 삶’, 정책이 만든 가능성

그림 중심으로 하루의 흐름이 만들어지면서 서 작가의 일상은 단연 확장됐다. 작업을 위해 외출하고, 약속을 지키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생활이 반복된 데다, 이러한 반복은 단순한 일과가 아니라 ‘일하는 삶’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물론 이 같은 변화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과 제도적 지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일상이 안정화 됐다는 것이 서 감독의 고백이다. 무엇보다 뜻깊은 건, 그 환경 속에서 스스로 작업을 선택하고 자신의 시간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라고 한다. ‘일’ 역시 더 이상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개념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의 중요한 영역이 됐다고.
“처음 화실에서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일자리 덕분이었어요. 2019년에는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장애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그땐 작업의 폭이 한층 넓어졌죠. 또래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색을 쓰는 법을 배우고, 그러면서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한층 확장하게 됐으니까요. 개인의 재능과 가족의 지지에 기대어 이어오던 작업이, 제도 안에서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거예요. 제 성을 따르고 싶다고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누군가의 선택이 아니라, 제 삶을 제가 정해보고 싶다는 마음인 겁니다.”

발달장애인 화가들의 일터인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

발달장애인 화가들의 일터인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는 서 작가와 동료 작가의 월급으로 운영된다.

서 작가의 경우 대중적 인지도와 작품 활동이 비교적 빠르게 자리 잡은 편이다. 그러나 서 감독에 따르면, 발달장애 예술가 다수가 예술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비장애 예술가에게도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은 현실에, 장애 예술가에게 예술을 직업으로 유지하는 일은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결국 장애 예술가들에게 예술은 단순한 취미나 재능을 넘어, 일상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도구’이자 노동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의 존립 이유라고 한다.
“이곳이 바로 은혜와 같은 발달장애인 화가들이 매일 아침 출근하는 작업실입니다. 출근 후 그림을 그리며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는 리듬은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아요.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시민 참여 수업 등을 준비하며 사회와 연결되는 과정 역시 하나의 업무죠. 그리는 행위 자체가 노동으로 인정되고, 그 노동이 월급과 일상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예요.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이들도 ‘생산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그 월급으로 여기 월세도 내는걸요?”

제도적 뒷받침이 열어 준 삶

작가로 살아가기 시작한 이후 서은혜 작가의 삶은 분명 달라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내고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럽게 여기던 때도 있었지만, 그림 작업을 시작하고 일터로 나가며 동료와 관객은 물론 지금의 배우자도 만나게 됐다. “그림을 안 그렸으면 지금의 삶도 없었을 것 같아요”라는 서 작가의 고백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고, 스스로 번 돈으로 생활을 꾸리는 경험이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임을 말해준다. 작업실로 출근해 그림을 그리고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가 지금은 서 작가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아버지 서동일 감독은 이러한 변화를 “개인의 재능이나 의지만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며 “은혜의 현재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 ‘일자리’라는 지원체계 안에서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의 화실’과 ‘노동의 기회’를 이어준 단순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필연’이었고, 매일 출근해 그림을 그리는 반복된 생활의 루틴은 노동을 넘어 ‘생산적인 삶’으로 자리 잡았다. 즉 서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취미나 재활이 아닌 정당한 노동이며, 더 나아가 안정된 하루와 관계, 그리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기반인 셈이다.
“은혜에게 그림은 삶을 바꾼 계기이자 세상과 이어지는 언어였어요. 그 그림이 일로 이어질 수 있게 한 것은 개인적 재능뿐 아니라, 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 제도와 환경이었고요. 그런 점에서 은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 특별한 사례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매 순간 분명하게 말하고 있네요. 저도 같은 마음으로 장애인 일자리 등 관련 정책들이 꾸준히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서 작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남편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서 작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남편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아버지 서동일 감독 인터뷰

서동일 감독은 발달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해 온 문화기획자이자 교육자로, 2004년 서 작가(당시 정은혜)와 인연을 맺은 뒤 오랜 시간 곁을 지키며 생활과 작업을 함께해 왔다. 스승이자 보호자로 이어진 관계는 최근 입양 절차를 통해 법적인 가족으로까지 이어졌다.

마이크아이콘 ‘서은혜’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말풍선아이콘 법적으로 정리된 것은 최근이지만, 실제 생활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족이었어요. 이름은, 은혜가 먼저 제 성을 따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살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저는 그 뜻을 존중한 거죠. 이름을 바꾼 뒤 은혜도 훨씬 편안해 보입니다. 가족으로서 관계가 정리된 느낌도 있고요.

마이크아이콘오래전 “배우 하고, 화가 해라” 하셨던 말씀이 실현되었죠. 이후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요?

말풍선아이콘다큐 촬영할 때였을 겁니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다기보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을 거예요. 예상했다기보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죠.
가장 큰 변화는 생활의 중심이 생겼다는 겁니다. 밖에 나가고, 사람을 만나고, 일정을 소화하는 흐름이 만들어졌어요. 예전에는 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림으로 꽉 찬 일상을 관리하며 즐거워합니다. 그게 참 편안하고 좋아 보여요.

마이크아이콘결혼 이후의 모습도 지켜보고 계십니다. 아버지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말풍선아이콘지금처럼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은혜는 정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가장 편안해 보이거든요. 이제 막 독립해 가정을 꾸리면서 전반적으로 안정된 느낌입니다. 스스로 생활해 나가고 있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죠. 가장 중요한 건 은혜가 자기 삶을 자기 속도로 이어가는 거예요. 지금처럼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는 이 시간이 오래 계속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