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어떤 이들의 사랑은 여전히 설명과 증명을 요구받는다. 장애인의 연애와 결혼, 출산이 당사자의 삶을 넘어 타인의 판단과 우려 속에서 이야기되는 현실 속에서, 연극 〈젤리피쉬(Jellyfish)〉는 ‘당연한 감정’으로서의 사랑을 다시 묻는다.
정리. 편집실
〈젤리피쉬〉가 묻는 사랑의 조건
내꿈내일 기자단
곽시안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자주, 또 깊이 생각해 볼까. 사랑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감정이지만, 막상 말로 설명하려면 쉽지 않은 개념이기도 하다. 특히 누군가에게 사랑은 기쁨이 아니라, 끊임없이 평가받고 증명해야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사랑이 그렇다. 사랑은 본래 두 사람만의 이야기다. 하지만 장애인의 연애와 결혼, 출산은 늘 주변의 시선과 간섭 속에 놓인다. 가족, 보호자, 이웃, 때로는 아무 관련 없는 타인들까지도 그들의 선택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연극 〈젤리피쉬〉는 바로 이런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극 〈젤리피쉬〉는 우리에게 장애인의 사랑을 ‘당연한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여성 ‘켈리’의 사랑
연극 〈젤리피쉬〉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여성 켈리의 연애와 출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켈리는 어머니 아그네스와 함께 영국의 작은 해변 도시 스케그니스에서 살아간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산책하는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된다.
그러던 어느 날, 켈리는 아케이드에서 일하는 비장애인 남성 닐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고,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주변의 시선과 편견, 걱정이라는 이름의 간섭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 이야기인데, 나는 빠져 있다.”
켈리의 입장에서 가장 힘든 점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늘 ‘자신을 제외한 채’ 진행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켈리를 걱정한다며 그의 선택을 대신 판단하고, 결정하려 한다. 물론 그 출발점에는 걱정과 보호의 마음이 있다. 그러나 켈리에게 그것은 ‘배려’보다는 ‘제한’에 가깝게 다가온다. 할 수 있는 일조차 “너는 어려울 거야”라는 말로 미리 차단당하기 때문이다.
극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켈리 자신보다 ‘장애’가 먼저 보이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켈리는 한 사람의 성인이기보다, 늘 보호 대상이자 관리 대상이 된다.
“왜 그는 계속 증명해야 할까?”
닐 역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단지 켈리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쉽게 묻는다.
“혹시 이용하는 건 아닐까?” “진짜 사랑이 맞을까?”
닐은 직장과 가족, 주변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신뢰를 시험받는다. 마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본래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사랑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많은 설명이 필요한 관계는 흔치 않다.
연극 〈젤리피쉬〉에서 켈리 역은 배우 백지윤이 맡아 섬세한 연기로 무대를 이끌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제공 ⓒ 옥상훈
보호와 통제 사이에 선 어머니, 아그네스
켈리의 어머니 아그네스는 십 대에 켈리를 낳아 홀로 키워 왔다. 그녀의 삶 대부분은 ‘돌봄’으로 채워져 있다. 그만큼 켈리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도 깊다.
그래서 아그네스는 늘 불안하다. 딸이 상처받지는 않을지, 위험에 처하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그 걱정은 때로 과보호와 통제로 이어진다.
켈리에게 다른 장애인 남성을 소개하며 연애를 막으려는 장면은, 딸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딸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동시에 담긴 장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연극이 인상적인 이유는, 아그네스를 ‘방해자’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그네스 역시 변화하고 성장한다. 딸을 놓아주는 법을 배우고, 믿는 법을 배운다. 사랑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다시, 사랑을 생각하다
〈젤리피쉬〉를 보며 계속 떠오른 질문이 있다.
우리는 과연 장애인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장애인 당사자의 연애와 결혼, 출산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조심스럽게 다뤄진다. 때로는 금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들의 선택에는 늘 ‘우려’와 ‘검증’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사랑은 특정 조건을 갖춘 사람만의 권리가 아니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누구에게나 존중받아야 할 감정이다.
켈리, 닐, 그리고 아그네스는 모두 편견 앞에서 흔들리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며 성장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사랑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연극 〈젤리피쉬〉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이 질문을 던진다. 장애인의 사랑을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당연한 이야기’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편견 없이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면, 이 연극을 한 번쯤 만나보기를 권하고 싶다.
연극 〈젤리피쉬〉는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의 희곡으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이 공동 제작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제공 ⓒ 옥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