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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선, 지금
세계 각국의 사례를 통해 국내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분석형 콘텐츠

여성장애인도 안전하게 ‘엄마’가 될 수 있는 나라들

‘여성장애인의 부모될 권리(Parenthood of Women with Disabilities)’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은 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삶의 과정이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여성에게 ‘엄마가 되는 일’은 여전히 개인의 의지와 가족의 부담에 맡겨져 있다. 국제사회는 이미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을 기본권으로 선언하고, 부모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출산 순간의 지원을 넘어, 여성장애인이 부모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된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이제는 점검할 때다.

글. 이정주 센터장(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여성장애인의 부모됨, 준비된 사회인가

이제 ‘장애가 있는 여성(women with disabilities)’1)의 모성권을 주목할 때이다.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에게 있어 임신, 출산, 양육은 개인뿐 아니라 중대한 국가적 과제로 올라섰다. 여성장애인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 52조는 여성장애인의 모성보호를 정의하고 있고, UN CRPD 제6조는 여성장애인의 권리를, 23조는 장애인의 결혼과 가족 형성에 있어 구체적인 모성보호 지원을 말하고 있다. 여성장애인의 모성권 과연 현실은 얼만큼 준비되고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여성장애인을 위한 지원은 놀랍게도 ‘출산비용 지원 120만 원‘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단 지원금의 크고 작고 문제가 아니다. 여성장애인의 임신, 출산, 양육을 통틀어 여성장애인 모성보호 전 과정에 있어 겨우 출산할 때만 일회성 현금 120만 원을 지원한다는 것은 출산 이전과 이후 육아, 교육, 양육 등 전 과정에 필요한 부모됨(Parenthood of Women with Disabilities)’ 차원에서 바라볼 내용이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현재는 장애가 있으니 엄마가 되지 말라고는 하지 않지만 부모로, 엄마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구조가 설계되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엄마 노릇은 짧게 잡아도 20년은 족히 걸릴 텐데 출산지원 1회에만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 여성장애인은 과연 이 치열한 시대 엄마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2)
실제로 2024년 장애인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결혼 적령기’로 분류되는 30대 이상 여성장애인의 관심은 줄곧 양육 전 과정에 대한 지원 요구가 가장 높았다. 육아전담 활동지원사 배치, 출산비용 증액, 건강관리 프로그램, 임신출산 교육과 정보제공, 장애편의를 고려한 여성용품 제공 등 다양한 욕구가 조사되었다. 여성장애인들은 임신이나 출산지원도 중요하지만 더욱 바라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의 돌봄과 육아 지원에 대한 욕구가 큰 것으로 보여진다.

1) CRPD 제6조(장애여성과 소녀)에 해당하는 영어 원문은 “Women with disabilities”이다. 일부에서는
‘장애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2) 물론 비장애인 여성을 위한 다양한 육아정책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고 그 제도에 따라 여성장애인도 지원을 받고 있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기에 겪을 수 밖에 없는 추가되는 물적, 인적 지원은 현저히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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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지원 중심의 선진국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떠한가. 먼저 스웨덴은 장애인 가족, 부모가 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 부모 역할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본권으로 접근하는 국가다. 특히 장애를 가진 부모(여성장애인 포함)의 육아와 가족유지 지원 체계가 법·제도·지원 서비스를 통해 비교적 체계화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동등하다고 알려진 나라답게 강력한 개인보조서비스 제도(Personal Assistance)를 운영한다. 장애가 있는 부모를 대신하여 일상활동을 지원해 주는 서비스로서 부모 대신 양육활동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스웨덴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부모로서 역할을 수행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하면서,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부모로서 권리와 지원체계를 확보해줌으로서 즉, ‘장애인이 부모가 되는 것’을 능력이나 적합성 판단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 지원 책임과 연계하여 접근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는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을 지켜주기 위해서 NDIS(국가장애보험)이 작동한다. 흔히들 NDIS는 장애인 당사자 개인을 위한 사회보험적 성격을 띄고 있다고 보고 있지만, 이 제도는 여성장애인의 출산과 양육 전과정에 필요한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설계하여 지원해 주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영국은 개인예산제(Personal Budget, Direct Payment)를 통해 여성장애인의 출산과 양육에 필요한 부분을 재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양육에 필요한 활동지원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여성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미국장애인법(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1990)에 따라 여성의 모성권을 보호하고 있다. 또한 주별로 ‘여성장애인의 부모됨(The Right to Parenthood of Women with Disabilities)’을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가장 범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제도는 Medicaid HCBS(지역사회 기반 장기지원)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부모가 양육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로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여성장애인만을 위한 특별한 법적 장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일본 모자보건법에서는 여성장애인을 위한 건강검진, 상담, 육아정보를 보건서비스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주고 있다. 여성장애인이 산전, 산후 과정에서 정신적 신체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지자체별로 판정과 지원체계를 기반으로 맞춤지원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장애당사자 여성 임산부 지원은 별도 전용제도보다는, ① 고위험요인(이해·의사소통·이동/ADL·정신건강)을 산전 단계에서 평가하고, ② 산부인과-조산사-마취과-소아과-재활(PT/OT)-사례관리(케이스워커)-지자체 서비스를 다학제로 묶어, ③ 계획분만·산후 육아기술 훈련·환경개조·통역/자료 접근성까지 포함해 연속 지원하는 방식으로 실제 현장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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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침묵을 넘어, 이제는 제도로 답할 때

이상에 살펴본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눈에 띄는 큰 차이점이 보인다. 한국의 제도가 단순히 출산의 사건에 120만 원으로 반응한다. 다른 나라는 여성장애인이 엄마로서 부모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스웨덴은 충분한 개인보조를 통해 부모로서 일상적 양육행위를 가능하게 하고, 영국은 개인예산을 통해 필요한 자원을 지원하여 여성장애인 스스로 양육체계를 설계하도록 하며, 미국 일부 주는 장애 부모의 양육 활동 자체를 지원 범위에 포함하고 있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나라 출산지원금 120만 원의 규모가 크고 작고를 떠나 핵심은 출산이라는 일회성 이벤트로 대응하느냐와 장애가 있어도 부모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느냐의 관점 차이가 핵심이었다. ‘사람’과 ‘시간’을 제도적으로 붙여주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활동지원이 있음에도 그것이 ‘부모 역할 수행’으로 명확히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부모가 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부모로 살아가도록 설계하지도 않는다.
임신·출산은 한 시점이지만, 부모됨은 20년의 과정이다. 현금 지원은 일회성이고, 양육은 일상적이며 지속적이다. 출산을 허용하는 것과 부모가 되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핵심 문제는 120만 원이 아니다. 120만 원 그 이후 구조적 침묵이다.

글을 쓰다보니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은 마치 불균형 성장 이면에 갇혀있던 우리나라 장애인복지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가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여성장애인은 여전히 갇혀있다는 생각이다. 최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여성장애인법(가칭) 제정 촉구가 이어지고 있다. 22대 국회에는 장애인을 대표하는 4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모두 여성이다.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장애가 있어도 완벽하고 안전하게 엄마가 될 수 있는 국가, 그것이야말로 헌법적 기본권을 지켜내는 기본사회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