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향한 ‘선한 의도’는 언제나 옳은 것일까. 장애 인식 백일장 심사를 15년간 이어오며 마주한 학생들의 글에는 늘 배려와 동정, 변화의 필요를 말하는 진심 어린 태도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선의가 때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짓고,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또 다른 장벽이 되기도 한다. 영화와 일상의 장면들을 통해,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진정한 이해와 공존은 ‘잘해 주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아니면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일까.
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중원대 특임교수)
선의라는 이름의 이중성
장애 인식에 관한 백일장 심사를 15년째 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학생들의 변함없는 태도가 있다. 바로 선한 의도를 갖고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다. 선한 의도는 장애인에게 어떻게 특별하게 혹은 따로 좋게 해야 한다는 의식을 의미한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있는 학생들은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명제를 표현하기 일쑤이고 신문의 사설이나 논설문 같은 형식의 글을 통해 장애를 다룬다. 이를 통해 차별과 편견의 현실을 진단하면서 장애인들을 대하는 자신을 포함한 비장애인의 언행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미 이러한 표현들은 장애인과 자신을 분리시키고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역설에 빠지고 만다. 이러한 인식과 태도가 오히려 장애인에게 불편과 상처를 줄 수 있다. 정치인이나 언론인, 공무원 가운데에서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례는 흔하다. 자신이 다른 비장애인과 다른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며 차별화를 시도한다.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같은 사회 구성원이라는 점을 전제하지 않는 태도는 동정과 시혜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한다.
영화가 보여준 선의의 균열
이런 선한 의도의 불편한 현실은 장애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The Intouchables, 2011)’을 보면, 필립(프랑수아 클루제)는 보조인을 구하는 데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느 날 기대를 하지 않았던 면접 자리에서 흑인 청년 드리스(오마르 시)를 접한 필립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필립의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무례하고 직선적인 드리스에게 관심을 가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필립이 드리스에게 관심을 보이고 마침내 보조인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단순했다. 격의 없이 필립을 대하는 드리스의 태도 때문이었다. 장애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조심하고 표현도 잘 못하는 이들의 마음이야 이해하겠지만, 그것은 필립에게 불편과 고통을 가중시켰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에서는 격의 없는 태도로 다가서는 것(드리스의 모습)이 오히려 진정한 위로임을 보여준다.
장애인에 대한 선한 의도를 내세워 본심을 숨기고 있다면 이 또한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 영화 ‘원더(Wonder, 2017)’는 안면 장애가 있는 어기가 홈스쿨링을 그만두고 학교에 다니면서 겪게 되는 일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로, 유독 잭만이 어기를 친구로 대해준다. 하지만 그 친구 사이는 잭의 한마디에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친구들은 잭에게 이런 말을 한다. “어기 같은 애하고 왜 놀아, 어기가 징그럽지 않아.” 잭은 친구들이 그렇게 말을 하자 이렇게 말을 해버린다. “어기랑 친하게 지내는 것은 교장 선생님이 부탁을 해서 그런 거야. 내가 어기처럼 생겼으면 나는 자살할 거야.”
이 말을 들은 어기는 매우 충격을 받고 잭과 절교를 선언하며 두문불출하게 된다. 장애인을 동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당위명제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백일장에 제출된 소감문들도 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잭이 본심이 아니라 아이들의 분위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을 어기가 들어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났을 뿐이어서 다시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여하간 장애인에 대한 선한 의도와 행동이 마음과 분리되어 행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영화 ‘원더’는 장애인에 대한 선한 의도와 행동이 마음과 분리되어 행해지는 것에 대한 무감각을 경고한다.
선의를 완성하는 조건: 공감과 소통 먼저
남녀 시각 장애인들의 로맨스를 다룬 단편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Two Lights: Relumino, 2017)’에서도 선한 마음과 행동의 역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단 비장애인의 태도를 짚어볼 수 있다. 시각 장애인 수영(한지민)은 명랑하고 쾌활하게 향기 테라피스트로 일하고 있는데 어느 날 낯선 길에서 긴 계단에 부딪히게 되는데 뜻하지 않는 사람의 태도를 접하게 된다. 길 가던 할머니가 수영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갑자기 얼굴도 예쁜데 불쌍하다고 하면서 볼을 만지고, 천 원짜리를 쥐어 준다. 더구나 여기에 “딴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말까지 한다. 수영을 난데없이 동정하는 것은 물론 삶 자체를 부정하는 듯 한 발언과 행동이었다. 수영은 고맙기보다는 놀라고 당황했고 두려움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그 할머니의 시혜적인 언행은 보행에 불편함만 주었을 뿐이었다. 다만, 이러한 선한 의도의 역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수영이 다른 시각장애인 인수(박형식)에게 초짜라면서 도와주려고 하자 불쾌감을 느끼는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둘은 사진 동호회라는 공통의 활동을 하게 되면 친해지고 원활한 관계를 맺게 된다. 선한 의도 이전에 상황의 공유와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충분한 이해와 대화 속에서 원하는 바로 서로 소통하는 우선이다. 선한 의도는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를 통해서는 선한 의도 이전에 상황의 공유와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