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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확장
장애인 고용에 대한 관성적 시선을 넘어, 새로운 관점과 해법을 제시하는 칼럼

장애인예술로 K-컬처를 더욱 빛나게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본질이다. 장애를 넘어 사랑의 의미를 말한 한 편의 시처럼, 우리는 ‘다름’이 아닌 ‘존재’를 바라보는 자세를 배운다. 오는 4월 20일, 제46회 장애인의 날을 즈음해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본질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에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장애인예술이 있다.

글. 방귀희(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

문학에서 시작된, 본질을 향한 여정

19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의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 Browning)은 15살 때 말에서 떨어져 척추장애를 갖게 되었다. 당시 무명 시인이었던 로버트 브라우닝은 그녀에게 시를 보내며 사랑을 전했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If Thou Must Love Me’라는 시로 화답한다. 바로 다음의 싯귀가 시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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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주세요

이 시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랑의 본질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그 어떤 조건도 필요 없고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달라고 한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자못 크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장애라는 남다른 조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조건으로 본질이 왜곡되는 것을 경계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사랑의 본질에 충실했기에 오직 사랑으로 부부가 되었다.
문학은 인간의 본질을 찾는 작업이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람들은 자기의 참 모습 즉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삶을 시작한 이래 소아마비로 오른쪽 손의 기능만 40% 정도 남아있는 중증의 장애 속에서 올해로 70년을 맞이하였으니, 정말 긴 세월을 장애 속에서 살면서 장애가 사회적 장벽으로 작용할 때마다 차별과 배제라는 현상에 대하여 곱씹어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삶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 깨달음은 문학 작품을 통해 느끼며 체득할 수 있었기에 나에게 가장 큰 스승은 문학 작품이다. 그래서 나는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할 수 있었고 힘든 상황 속에서 100호를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지류를 만든 후 2013년 장애인예술로 확장시켜서 지금까지 달려왔다.
장애인예술은 2015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창립되어 이음센터라는 공간을 확보하면서 다양한 장애인예술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고, 2020년에는 「장애예술인지원법」 제정, 2023년 모두예술극장 이어서 2024 모두예술공간이 마련되어 장애인예술의 제도적, 공간적 인프라는 모습을 갖추었다.
문학이 인간의 본질을 찾아준다면 다른 장르의 예술은 그 본질에 충실하도록 만든다.
본질에 충실하다 보면 사람은 순수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 이것이 필자가 긴 세월 장애인예술에 매달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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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투데이

장애인예술의 필요성

우리에게 장애인예술이 왜 필요한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인류는 행복추구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의 불행은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로 생산, 확대되고 있다. 소수집단이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미국의 법철학자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이 갈파하였듯이 투사적 혐오 때문인데, 투사적 혐오란 아무런 실제적 근거도 없지만 원초적 대상에서 역겹다고 느껴지는 속성을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 전가하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혐오에서 인류애로〉(2016)에서 그 해결 방법을 예술에서 찾았다. 인류애의 정치는 상상력을 동원해 타인의 삶에서 인간성을 찾아내어 감성적으로 참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혐오의 정치가 인류애의 정치로 거듭나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상상을 하게 하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즉 혐오로 인한 편견과 싸워 행복을 찾는데 예술이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소수집단 가운데 가장 차별이 심한 장애인의 행복도 예술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기에 왜 장애인예술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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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투데이

장애인예술의 가능성

앤드류 델방코(Andrew Delbanco)는 문화예술 내러티브의 두 가지 목표는 첫째, 소망을 주어야 하고, 둘째, 사회를 응집시켜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두 가지 역할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예술이 바로 장애인예술이다. 예술인 자체가 남다른 내러티브를 갖고 있고, 장애 속에서 무엇인가를 했을 때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면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장애예술인은 독특한 창조적 자산을 갖고 있다.
필자는 31년 동안 방송작가 일을 하며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내러티브를 취재하여 글로 쓰면서 혼자서 얼마나 웃고, 울었는지 모른다. 작가를 울렸던 이야기는 시청자들도 울릴 수 있었고, 작가를 웃게 했던 이야기는 시청자들도 웃게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이야기에 있는데 장애예술인들은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자신의 내러티브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그 능력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장애인예술의 가능성을 의심치 않는다. 역사적으로 그 가능성은 입증이 되고 있다.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 〈실락원〉은 밀턴이 실명을 한 후에 쓴 것이었고, 낭만주의 시의 거장 바이런은 다리가 몹시 불편한 지체장애인이었다. 〈인간과 굴레〉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모옴은 말을 더듬는 언어장애인이었다. 우화의 전설 이솝은 척추장애인이었고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왼쪽 팔이 절단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불후의 명작을 남겨 인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작가들이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이었던 노벨문학상에서 1909년 첫 여성 수상자를 탄생시켰는데 그 첫 여성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은 스웨덴의 작가 셀마 라게를뢰프로 그녀는 지체장애인이었다. 장애문인들이 세계 문학을 다져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면상 문학의 사례만 들었지만 예술 전반에 거쳐 장애예술인들이 많았다. 이것이 바로 장애인예술의 가능성이고,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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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투데이

K-장애인예술을
세계 속으로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 이사장으로 근무한 지 1년이 되었다. 은퇴할 나이인데 자리에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 보일까 봐 서류를 준비하며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장애예술인의 가능성이 발화되도록 작은 역할이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출근을 했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세워지듯이 모든 조직은 사람이 있어야 존재한다. 장문원도 장애예술인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문원은 장애예술인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장애예술인이 지적해주는 문제를 우리의 과제로 삼아 해결 가능한 것부터 실천해 나가고 있다. 대학로에 오는 장애예술인들은 당연히 장문원에 들러서 차 한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장애예술인지원법」을 제정할 때 법명을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에 관한 지원법률」로 하려는 당시 여당에게 법률의 주체이자 대상이 ‘장애예술인’이 되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야 장애인이 예술인으로서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세계 유일한 장애인예술 관련 법률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로에 있는 장문원 건물명은 ‘이음센터’인데 그 센터를 마련할 때 일본 하나센터로 견학을 갔다 와서 샘플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로 이음센터를 보고 일본 관계자들이 ‘어떻게 시내 한복판에 장애인예술 시설이 있느냐’고 놀란다. 그들에게 모두예술극장과 모두미술공간을 보여주면 한국은 역시 문화 강국이라고 부러워한다. 이제 우리나라가 장애인예술의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사회통합 차원에서 장애인예술정책이 효과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영국은 한계가 없는 예술(Unlimited Arts), 미국은 특별한 예술(Very Special Arts), 일본은 가능성의 예술(Able Arts)로 장애예술인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예술을 모두의 예술(Arts for All)이라고 명명한 것은 장애·비장애의 구분을 넘어 모두가 즐기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장문원 미션을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예술은 뒤늦게 시작하였지만 장애예술인들의 예술 수준이 뛰어나기 때문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장애인예술은 그 정체성을 살려서 발전시켜 나가면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멋진 예술이 될 것이다. 한국의 장애인예술이 머지않아 K-컬쳐를 더욱 빛나게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 본다.

예술활동이 직업이 되어야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예술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2012년에 제정된 「예술인복지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라고 되어있어서 예술인이 근로자가 되었다.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제정되면서 제11조(장애예술인 고용지원)으로 예전에 비해 미술과 음악 분야에서 많은 고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문학 장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기업에서 장애문인을 고용하지 않고 있다. 미술은 그림이 노동의 결과이고 음악은 연습과 공연으로 노동이 증명되지만, 문학은 시와 소설을 노동의 산물로 인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장벽도 머지않아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로는 권리이고 직업 선택은 자유이듯이 장애인에게 무조건 기술을 배워야 한다든지 단순노동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온당치 않다. 적어도 예술을 좋아하고 예술 분야에 재능이 있다면 예술활동이 직업이 되어야 하고 그 직업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장애예술인도 행복하고 그 활동을 통해 예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전문가 필진이 작성한 글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