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결국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돌봄은 가족, 특히 여성의 책임 위에 가까스로 유지돼 왔다. 하지만 초고령사회와 장애 돌봄의 현실 속에서 기존 방식은 한계에 이르렀다. 돌봄통합지원법 시행 이후 본격화될 지역사회돌봄은 ‘시설 중심’에서 ‘삶 중심’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 스스로 삶을 선택할 권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글. 김용익 이사장(돌봄과 미래)
시설을 넘어,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것
지난 3월 27일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되었다. 이로써 전국의 시도, 시군구가 지역사회돌봄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됐다. 아직은 아무 변화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사회돌봄은 장애인과 노인의 삶에 스며들어 일상의 방식 자체를 바꿔 갈 것이다.
돌봄 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수많은 장애인이 장애인시설에 들어가 한평생을 살아야 하고, 점점 더 많은 노인이 노인시설로 들어가 자기 인생을 잃어버린 채 여생을 보낸다. 지역사회돌봄은 “자기가 살던 곳, 또는 살아야 할 곳에서의 삶”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지역사회돌봄의 중요한 방향은 탈시설화이다. 탈시설화는 이미 시설에 들어가 있는 분들을 지역사회로 되돌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시설 입소 자체를 줄이는 방향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문제는 탈시설화가 가족의 돌봄노동과 비용 부담을 함께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탈시설화는 탈가족화와 함께 가야 한다. 가족에게만 돌봄 책임이 집중되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탈시설화 역시 지속되기 어렵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재가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돌봄서비스 전반이 지금보다 훨씬 촘촘해져야 한다. 핵심은 주간이용서비스와 방문 서비스다.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주간이용센터가 생활권 가까이에 자리해 누구나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방문 서비스 역시 현재의 활동지원 수준을 넘어, 일상생활 지원과 사회생활 지원을 함께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특히 장애인에게는 사회참여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안정적인 일상생활 지원이 삶의 기반으로 작동해야 한다. 여기에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계획적인 방문 체계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치과의사·치과위생사, 약사, 영양사의 방문이 중요하다는 점 역시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방문 재활의 확대 또한 중요한 과제다. 많은 장애인이 적절한 재활 치료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충분히 개선될 수 있었던 기능 저하를 안고 살아간다. 장애인은 사회적 욕구와 의료적 욕구가 동시에 얽힌 복합 욕구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대응 역시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 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투데이
자립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이유
지역사회돌봄의 발전은 장애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것인가? 만일 한국 사회에서 지역사회돌봄이 정말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면(이건 쉬운 가정이 아니다), 장애인들이 장애의 정도를 크게 줄이고, 자기 삶에서 주도권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장애인의 자립이 ‘타인의 도움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에게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주변 사람의 도움이 없이 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존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영유아나 노인의 시기에는 의존의 정도가 커지고, 성인기에는 돌봄을 제공하는 역할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질병을 앓거나 장애를 가지게 되면 일시적 또는 장기적으로 의존의 정도가 커진다. 그러나 장애인이라고 해서 의존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역시 주변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기여를 하면서 살아간다. 자립은 기계적인 홀로서기가 아니라, ‘사회적 지원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상태’이다.
장애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 더 널리 공유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적 지원이 충분하다면 장애로 인한 제약 역시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장애인의 삶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투데이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
장애인들의 신체·정신적인 기능 저하를 줄이는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장애인에게 유난히 많은 질병을 관리하고 재활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기능을 최대한 복구하는 것이 바탕이 된다. 보건의료서비스의 제공이 장애의 의료적 모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모형으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연결선에 생활 환경이 있다. 물리적 장벽을 줄이고 이동성을 보장하는 것이 장애를 사회적으로 줄이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에는 건축, 토목, 교통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주택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개조해 주고, 손상된 기능을 최대한 보강할 수 있는 보조기기와 의료기기를 부담 없는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주택개조와 보조·의료기기는 짝을 맞추어야 효과적이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과 가족과 함께 살지만 독립을 원하는 장애인을 위한 지원주택이 필요하다. 이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수십만 호 규모의 공급이 뒤따라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집 안팎에서 장애인의 일상생활, 다양한 활동과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생활지원 서비스를 결합해야 장애를 ‘사회적으로 줄이는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의 주권은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달성되지는 않는다. 갖가지 서비스가 이름뿐인 시범사업으로 들쑥날쑥 제공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연계·통합하고, 믿을 수 있는 질을 보장하며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기에 충분한 양을 제공할 때 비로소 장애인의 자립적인 생활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리게 된다. 지역사회돌봄은 이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노력이 개인이나 가족 또는 시장의 기능만으로 추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역사회돌봄은 국가와 사회의 연대적 노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국가는 돌봄의 방향과 정책을 만들고, 법령을 통해 제도를 만든다. 또한 이에 필요한 재정을 조달한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지역사회돌봄의 모든 것을 지휘할 수는 없다. 현장에서의 필요와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기초정부의 자치적인 활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돌봄 욕구를 조사, 판정하고 서비스 제공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사례를 관리하는 과정이 지방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다양한 돌봄서비스를 연계하고, 당사자의 수요에 맞게 구성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경직된 ‘행정’이 아니라 공공과 민간이 같이 하는 ‘협치(governance)’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사회돌봄은 반드시 ‘지역화·자치화’되어야 하고, 중앙정부의 분권 노력과 지방정부가 자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이 결합해야 한다. 돌봄이야말로 지방자치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임무이고, 장기적으로 돌봄은 지방자치의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이다.
Ⓒ 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투데이
돌봄의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아마도 가장 어려운 과제는 각 지역이 돌봄서비스의 제공 능력을 확보하는 일일 것이다. 자원의 공급은 도시와 농어촌,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보건의료인은 여전히 돌봄에 참여하기를 꺼리고, 복지, 주거 분야의 제공 능력도 차이가 크다. 그러나 인구당 장애인과 노인의 수는 농어촌 지역에 현저히 많다. 돌봄의 수요는 많고 능력과 조건은 불리한 모순을 극복하여 돌봄이 전국적으로 균등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낙후된 지역을 강력한 ‘적극적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으로 지원해야 한다. ‘어디에 살든 같은 수준의 돌봄을 받을 권리’, 역시 말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돌봄의 질은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질적 수준이 보장되지 않는 돌봄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장애인 복지의 수십 년 경험이 이를 고통스럽게 입증한다. 그러나 돌봄은 질 관리가 유난히 어려운 영역이다. 이런 경우, ‘좋은’ 공급자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로 만들어지는 돌봄 제공조직은 공공, 사회연대경제, 그리고 민간의 구성을 3:3:3의 비율로 구성하면 좋겠다. 민간도 좋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도록 규율과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정부는 돌봄통합지원법의 시행에 맞추어 좋은 돌봄 인프라가 구성되도록 대대적인 초기 투자를 해야 한다. ‘공공성’이 돌봄의 또 하나 중요한 키워드이다.
Ⓒ 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투데이
돌봄은 인간의 삶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
한국의 복지 정책에서 가족은 늘 정부보다 앞서서 일차적 책임을 지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이 전제는 전복되어야 한다. 얕은 수준의 복지 급여는 당사자들의 욕구 충족에 늘 미달하고 그 틈새는 가족이 채워야 하는 것이 지금의 일상이다. 사회적 돌봄이 기본이고 가족 돌봄이 선택이 되도록 위상을 뒤바꿔야 한다.
‘가족 돌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여성 돌봄’이다. 가족 돌봄이 가족구성원 중 여성에게 주로 부담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내, 딸과 누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주는 돌봄노동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가족 돌봄의 이러한 상황은 사회화된 돌봄 노동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돌봄노동자의 절대다수는 여성이며 고령화되어 있고,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지역사회돌봄이 시행되는 이 변화의 시기를 가족 돌봄과 돌봄노동의 상황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탈가족화는 돌봄 노동의 전면적 재구조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돌봄 노동을 저숙련·저임금이 당연한 주변부 노동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공공 노동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지역사회돌봄은 특정 계층만의 지원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돌봄 체계를 만들어 가는 노력의 궁극적 목적은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에 있기 때문이다. 돌봄이란 결국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며, 인간의 삶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 본 기사는 전문가 필진이 작성한 글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