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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초대석
장애인의 삶과 일에 대한 질문과, 그 질문에 응답하는 목소리를 기록하는 코너

서울인공지능고등학교 권용덕 특수교사

교실에서 사회까지 함께하는 마음

걷다 보면 길이 되고, 살다 보면 삶이 된다. 막연한 선택으로 들어선 길은 어느새 선명히 드러났고, ‘꿈 지도’와 무관하게 시작된 삶은 이미 꿈처럼 행복하다. 서울인공지능학교의 특수학급이 있는 건물 복도, 전화를 받고 달려 나오는 권용덕 교사의 뒤로 봄빛이 길게 번졌다. 역광 속에 흩날리는 단발 펌이 한껏 자유로운 인상을 전했고, 그 곁의 아이들 역시 그만큼 편안하고 환하겠구나 짐작케 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장애아이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쌓아온 글을 만나 “특수교사에게 ‘돌봄’이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Q.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 어떤 학생들과 함께하시는지, 또 아이들과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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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공지능고등학교 권용덕 특수교사

안녕하세요. 학교 현장에서 20년째 장애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는 특수교사 권용덕입니다. 많은 분들이 『장애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선생님하고 나는 친하니까』 등의 책으로 제 이름을 접하셨을 것 같습니다. 주로 중·고등학생들을 만나 왔고, 지금은 서울인공지능고등학교 특수학급에서 3학년 아이들과 생활 중이에요. 아이들이 자기 속도에 맞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특수학급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배우고 어울리는 일반학교 안의 ‘통합교육 현장’이에요. 아이들은 각자 소속 학급을 두고, 필요에 따라 특수학급과 일반학급 수업을 오가며 학교생활을 하는 시스템이죠. 어떤 아이는 일반학급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특수학급을 통해 조금 더 촘촘한 지원을 받습니다. 중요한 건 당연히,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자연스럽게 관계 맺고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고요.

Q. 그간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 오셨고, 책을 통해 전해지는 선생님의 마음과 진정성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현장을 오래, 밀도 있게 살아오신 만큼 특수교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의 여정도 궁금합니다.

입시를 준비할 즈음 ‘특수교육’이 어떻겠냐는 어머니의 말씀에 선택한 길이었어요. 그런데 그 막연한 선택이 어느새 “특수교육이란 한 사람의 삶을 오래 지켜보고 함께 성장하는 일이구나”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더군요.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세상과 연결돼 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특수학교와 일반학교 특수학급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특수학교에서 더 촘촘한 지원의 필요를 배웠다면, 10여 년 전 일반학교로 오고부터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더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학교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거든요. 어쩌면 “돕는다”는 말보다,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요. 특수학급의 교실은 제게 하루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공간이자, 스스로 조금씩 달라져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Q. ‘특수교육 현장’을 ‘힘듦을 넘어서는 즐거움이 있는 행복한 곳’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직업의식이나 사명감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고백인데, 그 행복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특수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즐겁고 따뜻한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많은 분들이 ‘장애’라고 하면 먼저 안타까움이나 어려움을 떠올리지만, 제가 매일 마주하는 교실은 웃음과 놀라움, 예상치 못한 감동이 있는 곳이에요. 물론 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어려움도 있고, 아이들이나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순간도 있어요.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고, 지치고 힘들 때도 적지 않아요. 그럼에도 다음 날 다시 교실로 들어서며 즐거운 이유는, 아이들은 어제보다 조금 더 웃을 거고,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마음을 열어 줄 거고, 또 무언가를 해내고 뿌듯한 표정을 지어 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에요.
특수교육 현장은 분명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곳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배우며 살아가는 지금 제 삶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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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하며, ‘배움’을 채우고, ‘가르침’ 으로 이어지는) 권용덕 교사의 일상

Q.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돌봄’은 무엇인가요? 가르침이나 보호를 넘어서는 의미는 무엇인지,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그 돌봄은 어떤 방식으로 실천되고 있는지도 함께 말씀해 주세요.

단순히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일이 돌봄은 아닐 거예요.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믿어 주고, 그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가도록 곁을 지켜 주는 일이야말로 진짜 돌봄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학교야말로 장애학생에게 가장 큰 돌봄을 건넬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졸업한 제자들의 삶을 지켜보며, 학교를 떠나는 순간 돌봄의 안전망이 얼마나 쉽게 끊어지는지 자주 실감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주고 있는가”를 되묻게 되고요. 답은 항상 “돌봄이 학교 안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졸업생들과 아직도 관계를 이어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스무 살을 넘어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도록, 또는 독립을 해서 혼자서 살아가게 되어도 안부를 묻고, 진로 고민을 듣고, 가족의 걱정을 나누며 오래도록 ‘믿을 구석’이 되어 주고 싶어요. 힘들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교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돌봄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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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 친구를 응원하는 아이들의 모습

Q. 학생들을 지도하시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나 원칙은 무엇일까요?

저는 아이를 처음 만날 때 가능한 한 백지상태로 다가가고자 해요. 이전 교사나 부모님으로부터의 정보를 참고하기는 해도, 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순간에 불안해하는지, 무엇에 웃고 반응하는지는 수업과 활동을 직접 해 봐야만 알 수 있거든요.
또 하나는 “할 수 없는 건 없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입니다. 물론 장애로 인한 어려움과 한계는 분명히 존재해요. 하지만 대부분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어서 처음부터 “일단 함께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편이죠. 결국 포기하게 되더라도 다른 길은 없는지 같이 고민하며 다시 생각하고요. 혼자 밥을 짓기 어렵다면 보조 인력이나 사회적 서비스를 연결할 수도 있고, 즉석밥을 데우거나 배달 앱을 활용하는 법을 익히는 것도 충분히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아이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해내느냐가 아니라, 자기 삶을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가르치기보다 아이의 방식과 속도를 믿고 기다려 주려 애씁니다. 결국 포기하게 되더라도 다른 길은 없는지 같이 고민하며 다시 생각해 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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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덕 교사의 특수교육 현장

Q.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의 취업과 졸업 이후 삶까지 함께 고민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실을 넘어 ‘삶’까지 이어지는 돌봄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특수교육 현장에서는 종종 “특수교사에게는 제자가 없다”는 말이 오갑니다. 졸업과 동시에 연결이 끊기는 일이 많아서예요. 저는 그 말이 항상 아픕니다. 학교를 나섰다고 아이들의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의 관심은 거기서 멈춰야 할까요. 그 질문이 지금도 졸업한 아이들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학기 초 만들어 둔 학급 연락망이나 학부모 단체방도 졸업 후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편이에요. 교사의 역할이 교실 문 앞에서 끝난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직접 연락이 가능한 아이들과는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 장애 정도가 심한 아이들의 근황은 부모님을 통해 듣기도 하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어요. 취업이나 진학, 이직, 자립, 돌봄 문제까지 아이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고민하고, 부모님과 상의하며 현실적인 길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살아가는 긴 시간 속에서 “힘들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 “내 삶을 기억해 주는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습니다. 어쩌면 교실을 넘어 삶까지 이어지는 돌봄이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래 곁을 지켜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Q. 취업이나 사회 진출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은 어디까지라고 보시는지요? 학생들이 일터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이를 함께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느끼신 점도 들려주세요.

장애학생들도 다른 학생들처럼 진로를 고민하고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러나 학교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 선택을 온전히 받아 줄 여건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에요. 대학에 진학해도 또 다른 분리와 차별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고,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단시간·저임금 일자리에 머무는 일이 흔합니다.
그래서 진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더 편안한지”부터 들여다보게 됩니다. 때로는 취업 기술보다 버스 타고 출근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 더 앞서기도 하고, 사람들과 인사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익히는 일이 더 시급할 때도 있지요. 어떤 경우에는 아이보다 부모님의 불안을 먼저 덜어 드리는 일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이 과정에서 늘 실감하는 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기다려 주는 시간과 기회라는 점입니다. 중요한 건 “취업을 시켰느냐”가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도록 얼마나 함께 준비했느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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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돌봄’을 향한 열정의 자취들

Q. ‘일하는 삶’은 장애학생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제 장애인의 노동이 더 이상 특별한 일만은 아닙니다. 일하는 삶이란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중요한 방식이며, 스스로 삶을 이끌어 갈 힘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맡은 역할을 해내며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삶은 훨씬 단단해지니까요.
무엇보다 일은 자신도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어떤 학생은 반복적인 일을 누구보다 성실히 해내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관계 속에서 예상치 못한 강점을 드러내기도 하죠. 그렇게 아이들은 “나는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되찾고,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 갈 힘을 조금씩 길러 갑니다. 일이란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한 축이니까요.
중요한 건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아니에요. 핵심은 우리 사회가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얼마나 공정하게 마련하고 얼마나 기다려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에 있어요. 아이들이 사회 안에서 자기 이름으로 불리고 자기 역할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거드는 일, 저는 그것이 교육이 끝내 닿아야 할 방향이라 믿습니다.

Q. 학교 교육이 실제 일터와 더 잘 연결되기 위해 필요한 변화는 무엇일까요? 현장에서 체감하시는 제도적 한계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학교와 지역사회가 훨씬 촘촘하게 이어지는 구조가 시급합니다. 학교 안에서는 체계적인 지원을 받다가도, 졸업과 동시에 홀로 사회로 내던져지는 게 지금의 현실이거든요. 아이들의 삶은 졸업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니, 학교 교육 또한 그 이후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설계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장애학생에게는 일과 교육과 돌봄이 따로 놓이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당사자의 삶을 중심에 두고 제도가 움직여야 합니다. 학교가 끝나는 순간 지원도 끊기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기관이 한 팀처럼 연결되는 시스템이 필요하지요.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자기 삶을 이어갈 힘을 길러 주는 데 있다면, 장애아이들의 삶 역시 어느 한 시점에서 멈추지 않도록 학교와 지역사회가 더 단단히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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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의 삶을 위한 교육
(이력서 작성법, 바리스타 교육)

Q. 최근 또 한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장애는 “나쁜 것이 아니기에 ‘극복’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면 되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장애아동·청소년이 더 안전하고 존중받으며 성장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요?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살아가는 법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해요. 낯설더라도 외면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조금씩 알아가려는 노력이죠.
거창한 무언가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귀 기울여 듣고, 조금 더 기다려 주며,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 여유 있는 태도만으로 아이들에게는 큰 안전망이 될 겁니다. 자기 모습 그대로 존중받고 환영받는다는 믿음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돌봄이자 가장 단단한 울타리니까요.
우리 또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만 지킬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해요. 서로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면, 우리 아이들도 충분히 밝고 건강하게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Q. 스승의 날을 앞두고 특별히 떠오르는 제자가 있을까요? 그 아이를 생각하며, 또 학생들과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10년 전쯤 가족 모두가 지적 장애인인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로뿐 아니라 삶 전반을 함께 고민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땐 담임으로서 진로를 지원했고, 졸업 이후엔 취업과 자립이 이어지도록 도왔죠. 집을 나와 독립하기를 원해서 그룹홈과 연계했고, 공공후견과 신탁 지원까지 맡게 되며 거의 매일 만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전화도 하고, 가끔은 만나서 맥주 한잔할 수 있는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흔히 교사는 학생들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비장애학생들이 장애학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교사의 시선과 태도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자주 느껴요.
사회도 마찬가지죠. 어른이 먼저 이해하고 다가설 때, 아이들도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편견 없이 다가가고, 조금 더 이해하려는 마음을 보인다면 아이들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다름을 받아들이며 자라날 수 있을 겁니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존중받고 사랑받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여겨주세요. 학교와 사회가 장애아이들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너여도 괜찮다”는 믿음을 주는 곳이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