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수행되지만, 그 대가는 언제나 개인의 몸과 삶 위에 남는다. 특히 군인은 국가의 명령 아래 위험을 감수하고, 때로는 신체와 정신의 손상까지 떠안는다. 그렇기에 현대 국가는 전상자를 단순한 ‘부상자’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존재로 바라본다. 보훈과 재활, 사회복귀 지원 역시 개인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국가가 져야 할 공적 책임이라는 의미다. 전쟁과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 전상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는가. 군인의 예외적 지위와 전상자의 사회 복귀 문제를 통해 현대 국가의 보훈 체계를 다시 생각해 본다.
글. 남보람 선임연구원(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학자, 북한대학교 겸임교수)
국가의 폭력 독점과 군인의 예외적 지위
근대 국가는 군사력, 경찰력, 사법 집행력을 포함한 합법적 강제력을 독점하는 조직이다. 이 중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최후의 보루는 군사력이다. 현대의 군사력은 전문군인 집단에 의해 행사된다. 전문군인 집단은 헌법, 병역법, 군형법 등의 법적 근거에 의해 군사력을 배타적으로 운용한다.
군사력을 운용하는 군인의 생명과 신체는 국가안보 체계의 일부로 간주된다. 이 역시 법과 제도에 명시되어 있다. 군인은 자연인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사활적 문제에 관련된 전략 자산이다. 따라서 개인의 기본권 행사보다 집단적 의무에 대한 복종을 우선시해야 한다. 이를 군인의 예외적 지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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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동원과 국가의 보상 책임
전쟁은 위험하다. 실시간 전투에서 하는 사고, 발화, 행동은 생명과 직결된다. “공격하라”는 명령에는 ‘죽더라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종류의 명령은 군대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죽더라도 공격하라”는 명령 권한은 “죽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복종 다짐과 맞물린다. 군대의 경례구호, 부대훈, 군가, 복무신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죽어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실천하는 것은 군인 뿐이다. 강제 조항도 존재한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거나, 임무 수행할 때 위험을 회피하면 군형법 및 규정에 의해 강한 처벌을 받는다. 그래서 군인은 일반 시민과 다른 법적 지위에 있다고 한다.
현대 국가와 사회는 복종한 군인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 책임은 여러 층위에서 구성된다. 최상위 책임은 명예와 기억 보존이다. 국립묘지 조성, 추모행사, 서훈 제도, 참전기념물 건립, 국가 의전 등이 국가 차원에서 실행된다. 경제적 보상도 뒤따른다. 급여, 위험수당, 군인연금, 유족연금, 상이연금, 생활보조금 등이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된다. 의료와 재활도 중요하다. 임무의 특성상 심신의 부상이 많기 때문에 보훈병원, 국가지원 수술과 치료, 외상후스트레스 관리, 정신건강 프로그램, 재활훈련 체계가 잘 갖춰져야 한다.
최근에 많은 발전이 있었던 분야는 전역한 군인의 사회복귀 지원이다. 군인이 수행하는 전투 과업은 매우 특수해서, 대개 다른 사회 분과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업 지원, 직업 재교육, 주거 지원, 법률 지원, 자녀 학비 지원, 가족 돌봄 프로그램 등이 군인 맞춤형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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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자의 가중된 예외성과 국가의 회복 책임
군인의 예외적 지위는 국가의 특별한 보상 책임을 발생시킨다. 이제 생각해볼 것은 군대에서 임무 수행 중 부상을 입은 전상자의 경우이다. 전상자는 일반 군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예외적 지위에 놓인다. 국가보훈부의 〈국가보훈대상자 생활실태조사〉에 의하면 임무 수행 도중 신체와 정신에 손상을 입은 전상자는 전역 이후에도 통증, 장애, 외상후스트레스, 우울, 가족관계 변화, 직업 단절, 소득 감소, 사회적 고립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7월 4일생(1989)’은 전상자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제도적 지연을 잘 그렸다. 주인공 론 코빅(Ron Kovic)은 애국심과 군사적 명예를 신념처럼 받들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전상을 입고 하반신 마비 상태로 귀환한 후, 그에게 돌아온 것은 편견과 냉대였다. 영화는 재활병원의 열악한 환경, 관료적 보훈 체계의 비효율, 가족 내부의 긴장, 전상자에 대한 사회의 불편한 시선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던 가운데 론 코빅은 신체의 손상보다 더 아픈 ‘두 번째 부상(second wound)’을 입는다. 이 부상은 복종과 희생을 요구한 국가와 사회가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는 ‘제도적 배신(institutional betrayal)’에 의해 생기는 심리적 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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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적 의무에 상응하는 예외적 국가 책임
전상자에 대한 보훈 체계와 우선 지원은 법과 제도에 의해 군인에 부과된 예외적 지위에 상응하는 국가 책임의 일부이다. 그래서 현대 국가는 전상자를 일반 장애 체계와 분리하여 관리한다. 별도의 법률, 보훈 행정, 의료 체계, 연금 구조가 운영된다. 이러한 구조를 마련한 것은 전상자의 사회 복귀 지원을 ‘공적 손실 회복(public restoration of loss)’으로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상자의 손상은 개인 차원의 불운이나 사고가 아닌, 국가 명령 하에 발생한 결과이다. 따라서 전상자 지원은 국가가 수행하는 군사력 운용의 사후 관리 체계인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전상자의 사회 복귀 지원을 포함한 광범위한 책임을 ‘국가 보훈 체계’라고 한다. 보훈 체계는 군사력 강화와 군 조직 안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전상자를 대우하는 국가의 수준은 “죽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군인의 다짐, 즉 군 조직 내부의 신뢰와 전투지속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보훈 체계의 수준은 해당 국가가 군인이자 시민인 개인의 희생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많은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보훈 지원 수준을 국가 제도 신뢰, 사회통합, 민주적 책임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삼아 측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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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대와 국가의 장기 책임
세계는 전쟁과 무력 충돌이 지속되는 시대에 놓여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그것을 증명한다. 전쟁사학자 존 키건(John Keegan)은 이 세계가 ‘이빨과 손톱에 피를 묻힌(red in tooth and claw)’ 상태에 놓여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피를 가장 많이 묻힌 것은 군인들이다. 또 그 피는 국가가 생존을 위해 감수한 위험과 절대적 복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현대 국가가 전상자를 별도의 보훈 체계 안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제1·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다. 수많은 상이군인이 발생하면서, 전상 문제는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가 감당해야 할 과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절단 장애와 척수손상, 시각·청각 손상뿐 아니라, 오늘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불리는 정신적 후유증 역시 전쟁 경험 속에서 본격적으로 제도화됐다. 이에 따라 각국은 보훈병원과 재활치료 체계, 의수·의족 지원, 직업훈련과 심리 상담 프로그램 등을 확대해 왔다. 최근에는 단순한 생계 보조를 넘어, 가족 돌봄과 공동체 재통합, 취업 및 주거 지원까지 보훈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일부 국가는 장애를 입은 군인이 행정·교육·훈련 분야 등으로 보직을 전환해 계속 복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이는 전상자를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니라, 계속 사회와 연결되어야 할 시민으로 바라보는 접근이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예외적 보호와 회복 지원을 받지 못할 때, 전상자는 ‘제도적 배신’에 의한 ‘두 번째 부상’을 입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날 보훈 체계는 단순한 복지 제도를 넘어, 국가 제도에 대한 신뢰와 사회통합, 민주적 책임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진다. 결국 한 사회가 전쟁 이후의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고 회복시키는가는, 그 국가가 인간의 희생과 존엄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 본 기사는 전문가 필진이 작성한 글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