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일까. 누군가에게 일은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회와 연결되는 가장 현실적인 통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장애인에게 노동은 경제적 자립을 넘어, 삶의 리듬과 관계, 그리고 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회복해 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장애와 노동의 관계를 둘러싼 사회적 인식과 제도의 흐름을 살펴보며,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글. 편집실
누구나 취약해질 수 있다는 상상력
내꿈내일 기자단 강주연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노동의 가치
최근 잠실의 한 유명 우동집에서 ‘일’이 가지는 가치를 목격했다. 이른 저녁 시간대에도 20~30분이나 줄을 서야 할 만큼 붐비는 식당이었다. 우동을 받아 계산대로 향하던 중, 카운터 뒤편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무심코 바라보게 됐다. 그곳에는 일본인 직원뿐 아니라, 수어로 소통하며 면발을 만드는 청각장애인 직원도 함께 일하고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현장이었지만, 이들은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쉴 새 없는 주문 속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외국인이 함께 어우러져 ‘일’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수행하는 풍경은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곳의 노동은 일이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방식임을 보여주었다.
영화 〈라라랜드〉는 사랑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인물들을 통해, 꿈과 노동의 현실적인 의미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가들에게도 ‘일’은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였다. 조각가 로댕은 시인 릴케에게 “늘 일하라”고 말하며, 반복되는 수련 속에서 삶과 예술의 형태가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 ‘일’이 가지는 의미는 단선적이지 않다. 일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유대와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 간다. 결국 일은 한 개인이 자립하여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자, 삶을 지속하게 하는 욕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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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개념의 등장 배경 및 ‘회복’으로서의 일
우리 사회는 장애 여부를 판단할 때 '일을 할 수 있는지'와 같은 생산성 기준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장애인식개선강사 신홍윤 님의 강연에 따르면, 장애인은 한 나라의 노동손실률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한다.
산업화 이후 노동 생산성이 중요해지면서, 노동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신체를 구분하려는 관점이 강화됐고 이는 근대적 장애 개념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장애의 정의와 사회적 인식이 모두 ‘일’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과 노동의 관계는 쉽게 분리하기 어렵다.
정신장애인의 노동 경험을 다룬 한 연구1)에서는, 참여자들이 일자리를 단순한 소득 활동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작은 경제적 수입만으로도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점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또 “아침에 일어나 갈 수 있는 곳이 생긴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며, 규칙적인 생활과 일상의 구조를 회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이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삶의 리듬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일자리는 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생활 기반인 동시에, 사회와 연결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그렇기에 장애인들은 일자리 제도의 변화 속에서 사회가 자신들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더욱 민감하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
1) 장혜경·하지선, 「회복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장애인 일 경험 -EM실천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장애인복지학 제37권 제37호, p.153~19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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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장애인 고용 모델의 현주소와 제도적 보완점
장애인 일자리는 고용 환경과 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는 개인의 역량과 무관하게 다양한 장벽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 역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중증장애인의 경우, 근로지원인 서비스와 같은 제도적 지원이 마련될 때 업무 수행의 제약이 완화되고 보다 안정적으로 직무를 이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장애인 표준사업장 제도와 장애인 고용의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을 다수 고용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기업의 성장과 장애인 고용 확대를 함께 도모하는 제도다. 장애인 고용의무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주에게 장애인 고용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에서 장애인 고용은 ‘성장의 전략’이라기보다 ‘의무 이행’이나 ‘배려’의 관점으로 접근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 고용 비율 7%를 목표로 설정하고, 연방 계약업체에 적극적인 고용 노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현재 대한민국의 장애인 경제활동인구는 약 92만 명이며, 전체 장애인 인구는 250만 명에 육박한다. 고령화에 따라 장애인 인구 비중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따라서 장애인 고용은 공정한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 역시 지속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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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취약해질 수 있다는 감각: 연대의 시작
장애인 일자리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 제약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최근 ‘돌봄’은 가정 내 재생산 노동을 넘어, 사회 구성원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사회적 활동으로 이해되고 있다. 장애인 일자리 지원 역시 복지와 사회적 역량을 함께 확장한다는 점에서 돌봄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결국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고 비장애인과의 경계를 완화해 가는 일은, 우리 사회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포용의 범위를 넓혀 가는 과정일 것이다.
장애인에게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고용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일은 맹목적인 희생이나 동정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구나 언제든 취약해질 수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나 역시 언제든 몸이 불편해질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할 때, 비로소 장애인 일자리의 현실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조온윤의 시구처럼, “우리는 도무지 인간적이지 않은 감정으로”2)도 인간을 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해당 내용은 시집 『햇볕 쬐기』에 수록된 「중심잡기」의 한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