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음식 솜씨가 좋다”는 말은 조리 과정이 복잡하거나 특별한 날 먹는 고급 요리에만 하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평범한 재료와 익숙한 조리법으로 ‘뚝딱’ 만들었는데도 취향과 감각, 손맛이 자연스럽게 배어, 마음까지 채워진 듯한 식후의 ‘감탄’에 가깝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이영우 실장, 양은영 과장, 정승희 과장(이하 세 사람)도 ’요리’가 그저 생활처럼 편안했으면 했다. ‘밥하기 싫은 날’, ‘입맛이 없는 날’, ‘가벼운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 날’ 등 생활 속 무수한 순간들을 위해 이번 ‘오프 타임’을 갈피해 둔다.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영상. 황의진
소소小小하지만 확실히 매운 ‘땡초’
초여름이면 햇고추의 매운맛이 살아난다. 본격적으로 맛을 내기 시작한 청양고추라면 더욱 입맛을 돋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리하여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세 사람은 ‘땡초김밥’ 역시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생활 메뉴 중 하나라는 ‘나름’ 합리적인 결론 끝에 장터의 공유주방 조리대 앞에 섰다.
‘땡초’는 청양고추처럼 맵고 독한 맛의 고추를 가리킬 때 흔히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니, 간혹 드라마 속 조직 우두머리의 이름이 땡초인 것도 결코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맛의 세계에서는 청양고추가 그런 존재일지 모른다. 입맛이 없거나 먹는 일조차 귀찮은 날, “뭐라도 먹어야지?” 하며 등을 떠미는 생활의 카리스마 같은 것. 결국 오늘의 메뉴 역시 매운맛으로 잃어버린 식욕을 깨우고, 무심한 하루에 작은 활력을 더해 보겠다는 ‘생활의 서사’를 담고 있는 셈이다.
땡초김밥의 주재료가 바로 땡초라고 불리는 청양고추다. 길쭉하게 뻗은 단무지·햄·지단 사이에서, 더구나 참치마요가 잔뜩 엉겨 붙어 존재감이 없나 싶지만 그 특유의 매운맛만은 세련되게 살아남는다.
세 사람이 이번 ‘오프 타임’ 메뉴로 땡초김밥을 선택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익숙한 재료로,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입맛을 또렷하게 깨워주는 매력 때문이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부담 없이 만들 수 있고, 도시락이나 간단한 한 끼로도 든든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세 사람은 매운맛을 신뢰하고 있었다. 단순히 혀끝을 얼얼하게 만드는 자극 때문이 아니라, 무뎌진 입맛과 처진 기분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힘을 애정한다고.
“자, 이제 시작해 볼까요?”라는 오덕균 셰프의 말로 코끝에는 벌써 알싸한 향이 닿는 듯하다.
재료 준비 중 즐거워하는
양은영 과장, 정승희 과장, 이영우 실장
재료 준비는 디테일하게~
“먼저 쌀을 안쳐두고 재료 준비에 들어갈게요. 냄비로 밥을 할 거예요. 빠르게 되지는 않아도 쌀알이 터지는 일은 없거든요.”
셰프님의 말에 의하면, 냄비밥은 쌀알의 형태가 비교적 살아 있어 씹는 맛이 또렷하고, 천천히 익는 만큼 한결 담백한 느낌을 준다. 반면 압력솥은 쌀알 속까지 수분을 깊게 침투시킴으로써 밥을 더 찰지고 쫀득한 식감을 만들지만, 밥알의 형태는 깨어지고 고슬고슬하고 담백한 식감도 살릴 수 없다. 더구나 김밥을 쌀 때는 고슬고슬한 밥이 ‘거의 국룰’ 아니던가. 대신 쌀을 미리 충분히 불려두면 압력솥 특유의 촉촉한 장점 역시 어느 정도는 챙길 수 있다.
지단을 위해서는 계란을 깨 담은 볼에 가는소금을 넣은 뒤 동시에 풀어주는 게 좋다. 이때 소금은 끈적하고 무거운 질감을 없애면서 계란물을 묽고 고르게 한다. 그래야만 기포 없이 매끈한 지단을 만들 수 있고, 부치기에도 훨씬 수월하다. 이왕이면 굵은소금보다는 고운소금을 사용하는 편이 빠르고 균일하게 녹아들어 좋다.
지단을 만드는 모습
손끝에서 완성되는 생활의 맛
칼질에 앞서 기억해야 할 오늘 요리의 ‘관건’은 바로 청양고추와 참치마요가 버무려져 만들어내는 ‘땡초’의 맛이다. 간단해 보여도 제법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참치는 캔 뚜껑을 완전히 떼어내지 않은 채 수저로 꾹 눌러 기름을 깔끔하게 따라 버린 뒤 볼에 옮겨 담는다. 청양고추는 길게 썰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다른 재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잘게 다진다.
당근을 채 썰 때는 서툰 칼질에 너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채칼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굵기가 일정하면 식감 또한 한결 깔끔해지니 일거양득 아닌가. 이 당근에 비결이 하나 숨어 있다는 말에 그 색마저 오늘은 유독 고운 것 같다.
참치마요와 당근 등 김밥소를 준비하는 과정
“당근을 볶고 남은 기름을 지단 부칠 때 활용하면 좋아요. 그 향과 영양이 자연스럽게 배어들며 풍미를 깊게 하거든요. 당근 속 비타민 A는 지용성이라 기름과 함께 조리해야 영양 흡수에도 도움이 돼요. 반대로 물에 데치면 맛이나 영양을 온전히 살리기 어렵죠.”이제 지단을 부쳐본다. 정말, 계란물이 팬 위에 얇게 펴지자 당근향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고운 색으로 익어가는 지단을 보니 마음마저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가장자리가 살짝 들뜨기 시작하면, 나무 재질의 젓가락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팬에서 분리해 뒤집어 준다. 바로 이 순간, 역시 손목의 힘과 순발력이 중요한 것 같다. 이 어려운 걸, 멋진 방법으로 해 내시는 실장님을 보니 절로 감탄이 나온다.
마는 단계는 정말 난관이다. ‘옆구리 터짐’에 대한 염려가 곱절이다. 길고 단단한 원기둥 모양으로 말아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담백한 참치와 부드러운 마요네즈의 조합은 거부할 수 없는 ‘생활의 맛’이다. 여기에 청양고추의 알싸한 매운맛이 더해졌으니,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의 웃음과 유대와 추억이라는 서사 또한 얹었으니, 오늘의 땡초김밥은 그야말로 생활 속 작은 만찬이었다.
김밥을 말고 썬 후,
완성된 땡초김밥을 앞에 두고 환하게 웃는 세 사람
국물은 아욱된장국으로~
아무리 간편한 한 끼라도 국물이 없다면 섭섭하다. 그러니 아욱된장국을 곁들이기로 한다.
아욱의 제철을 굳이 따지면 ‘여름에서 초가을’이라고 한다. 그러나 재배·수확 기준으로 봄 재배는 3월 중순~6월 중순까지로, 이 시기엔 비교적 부드러운 식감의 아욱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셰프님의 말에 따르면, 아욱을 그대로 넣으면 특유의 진액이 국물을 텁텁하게 한다. 그러니 소금을 살짝 뿌려 손으로 바락바락 문질러준 뒤 물에 여러 번 헹궈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진액이 줄어 훨씬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다. 한 움큼, 보리새우를 넣는 것도 잊지 말자.
땡초김밥은 경남 진주 지역에서 유래한 매운 김밥으로 알려져 있다. 잘게 썬 청양고추와 당근 등을 볶아 밥에 섞은 뒤 김에 말아내는 방식이 특징이다. 일반 김밥보다 속 재료는 단출하지만, 청양고추 특유의 강한 매운맛 덕분에 중독성 있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땡초’는 경상도 지역에서 청양고추를 부르던 사투리 표현이다. 알싸하고 매운맛이 강한 고추를 통칭하기도 하며, 진주 지역 분식 문화와 만나 지금의 ‘땡초김밥’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땡초김밥 Recipe
* 재료의 양은 원하는 만큼

- 〈땡초김밥〉
- 청양고추
- 당근
- 단무지
- 참치
- 마요네즈
- 맛소금
- 참기름
- 통깨
- 〈아욱된장국〉
- 쌀뜬물
- 아욱
- 보리새우
- 된장
- 육수제품
- 쌀을 씻어 30분간 불린(2번째 쌀 씻은 물은 따로 남겨둔다)다.
- 달걀 6개 분량을 풀어주고 맛소금으로 간을 해 둔다.
- 청양고추는 길게 반으로 가른 뒤, 잘게 다진다.
- 단무지는 물을 빼 넓은 접시에 담아두고, 당근은 채 썰어 기름으로 볶으면서 소금(약간)으로 간한다.
- 참치는 기름을 빼고, 마요네즈와 다진 청양고추 소금 후추를 넣고 섞는다.
- 약불에 팬을 예열하고 (당근)기름을 이용해 지단을 부친다.
- 밥이 다 되면 참기름, 맛소금을 넣어 간을 맞춰 준다.
- 김밥용 김 위에 밥, 재료들을 올려준 뒤에 말아준다.
- 말아준 김밥 위에 통깨를 살살 뿌린 후 썰어서 접시에 담아낸다.
- 쌀뜬물에 육수용 코인 또는 다시마 팩을 넣고 끓인다.
- 아욱은 질긴 부위는 잘라 주고 이파리 부분은 소금에 씻어서 세척한다.
- 손질된 아욱, 소량의 된장, 보리새우를 넣고 끓인다. 된장은 기호에 따라 추가적으로 넣어주면 된다.
이영우 실장
평소에도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특히 입맛이 없거나 조금 지치는 날에는 청양고추처럼 확실한 맛이 오히려 기분을 환기해 주는 느낌이 있거든요. 땡초김밥은 재료 자체는 익숙한데, 먹는 순간 입맛이 또렷하게 살아난다는 점에 그 매력이 있습니다. 도시락으로도 간단하고, 한 끼 식사로도 든든해요. 지금이 딱! 청양고추의 계절이니 당분간 만들어 먹을 생각에 들뜨네요. 무엇보다 오늘,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 직원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참 즐거웠습니다.
양은영 과장
생각보다, 김밥 마는 게 쉽지 않았어요. 터지지 않게 힘 조절하는 게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재료 하나하나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도 많아지고, 같이 웃게 되는 시간이 좋았던 것 같아요. 단순히 ‘음식을 만든다’기보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랄까요. 특별히 실장님의 의외의 면을 봤습니다. 오늘의 ‘에이스’는 실장님이셨어요. 국제협력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평소 교류가 많지 않은 편인데, 김밥을 만들며 ‘뜻깊은’ 소통을 하게 됐습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정승희 과장
청양고추의 매운맛에 이런 변주가 가능했네요? 단순히 맵기만 한 게 아니라 참치마요의 고소함이 같이 어우러져서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아욱된장국까지 곁들이니까 의외로 조합도 잘 맞았고요. 소소한 메뉴인데도 생각보다 만족감이 큰 한 끼였어요. 무엇보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두 분과 함께 만들고 웃으며 나눠 먹는 시간이 더해져 더욱 특별했습니다.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 ‘사회공헌’과 ‘언론홍보’에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