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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픽
이달의 이슈로 살펴보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 방향

전쟁이 남긴 휠체어와 재활의 역사

휠체어는 단순한 이동 보조기기가 아니다. 전쟁 이후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생존 도구이자,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꾼 ‘상징’에 가깝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상 군인의 사회 복귀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휠체어는 치료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권리’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전쟁이 남긴 상처 속에서 등장한 ‘휠체어부대’의 이야기는 오늘날 장애인의 ‘이동권’과 ‘사회 참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글. 편집실

휠체어: 보호를 넘어, 다시 역할 속으로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당시, 하반신에 중상을 입거나 신체 일부를 절단한 군인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휠체어의 대량 생산이 본격화됐다. 부상을 입은 군인들이 이동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휠체어 공장이 세워졌고, 전쟁 말기에는 휠체어를 탄 병사들로 구성된 이른바 ‘휠체어부대’까지 등장했다.1)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보호의 대상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몸이 되었지만, 여전히 군인의 역할과 책임을 이어갔고 실제 전투와 지원 활동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는 장애를 ‘무력함’으로만 바라보던 당시 사회 인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쟁 이후 미국 사회에서 장애인 권리와 재활, 사회 복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배경에도 이러한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늘날 휠체어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 보조기기에 머물지 않는다. 전동 기술과 인체공학적 설계, 경량 소재의 발전은 장애인의 이동성과 선택의 폭을 크게 넓혀 놓았다. 이제 휠체어는 학교와 일터, 그리고 사회로 이어지는 연결의 도구가 되고 있다. 전쟁의 상처 속에서 등장했던 ‘휠체어부대’의 기억은 결국 장애를 안고도 삶과 역할을 이어가려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동과 참여를 가능하게 하려는 사회의 변화까지 함께 떠올리게 만든다.

1) 김현철, 「[사소한 역사] 남북전쟁 때 '휠체어 부대' 활약… 이후 장애인 인권 관심 높아졌대요」,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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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투데이

제도: 개인의 상처에서 사회의 책임으로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 역시 비슷한 변화를 마주했다. 전투 과정에서 신체 일부를 잃거나 기능이 손상된 상이군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재활과 생계, 사회 복귀라는 또 다른 삶의 과제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당시 정부는 의수·의족 보급과 재활 치료, 직업훈련 등의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 시작했고, 상이군인을 위한 원호 정책 역시 국가적 과제로 다루었다.
특히 이승만 정부는 상이군인을 “살아있는 자들 중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표현하며, 이들을 국가적 영웅으로 강조했다. 언론 역시 상이군인의 생계와 재활 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로 다루었고, 원호사업에 대한 범국민적 참여를 독려했다. 정부는 상이군인 원호주간과 각종 체육대회 등을 운영하며 이들의 사회 복귀와 자활을 지원했고, 대통령이 직접 위문품을 전달하는 모습도 이어졌다. 이는 장애를 단지 개인의 불행이나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변화의 한 장면이었다. 2)

2) 김규민, 「1950년대 한국 상이군인의 형성과 자활」, 서울대학교, 의학과 인문의학 전공, p.14~17

재활: 다시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그러나 상이군인에 대한 지원은 단순한 보호에 머물 수 없었다. 전쟁 이후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치료와 재활뿐 아니라, 다시 사회 속 역할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직업훈련과 자활 지원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기 시작했다. 몸은 이전과 달라졌지만, 여전히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 변화와도 맞닿아 있었다.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지원과 환경이 갖춰진다면 일하고 참여하며 공동체 안에서 역할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되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 상이군인을 위한 재활과 직업훈련 체계가 만들어진 배경에도 이러한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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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투데이

전쟁은 장애를 어떻게 바꾸었나

전쟁은 수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장애를 대하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도 했다. 전투 과정에서 신체 일부를 잃거나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장애는 더 이상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 된 것이다. 여기에 휠체어와 각종 보조기기를 활용해 다시 군 복무와 지원 활동에 참여하려 했던 상이군인들의 존재는, 장애를 단지 ‘무력함’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재활 치료와 직업훈련, 의수·의족과 휠체어 같은 보조기기의 개발과 보급도 빠르게 확대됐다. 특히 휠체어는 단순한 치료 도구를 넘어, 장애인이 다시 학교와 일터, 사회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상징적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결국 장애인의 역사에서 전쟁은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동시에, 장애인의 이동과 참여, 사회 복귀를 둘러싼 인식과 제도가 변화하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였다.

인물 돋보기

전쟁 이후, 장애 재활의 방향을 바꾼 사람
‘패럴림픽의 아버지’ 루트비히 구트만

루트비히 구트만(1899~1980)은 독일 출신의 영국 신경학자이자 재활의학의 선구자로, 현대 패럴림픽 운동의 창시자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부상을 입은 척수손상 군인들의 재활 과정에 스포츠를 도입하며,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그가 활동하던 ‘스토크 맨더빌 병원’에서는 휠체어 양궁과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장애 재활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았다.
구트만은 1948년 런던 올림픽 개막일에 맞춰 ‘스토크 맨더빌 경기(Stoke Mandeville Games)’를 개최했는데, 이것이 전 세계 장애인 스포츠 교류의 출발점이 됐다. 196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제1회 패럴림픽이 공식적으로 열리며, 장애인 스포츠는 국제 대회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참고자료
  • https://blog.naver.com/ri_freeget/
    221816377586
  • https://www.chosun.com/national/nie/2022/
    04/26/N52BHCJYKJFLXDKLY2CZBOBQMU/
  • 김규민, 「1950년대 한국 상이군인의 형성과 자활」,
    서울대학교, 의학과 인문의학 전공, p.14~17
  • https://brunch.co.kr/@pacama/1326
  • https://ko.wikipedia.org/wiki/루트비히_구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