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까지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길이 된 사람들’ 장애예술 전시회는 전쟁과 장애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전쟁은 수많은 상처와 장애를 남기지만, 동시에 그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 이들의 예술과 삶 역시 남긴다. 영화와 회화, 그리고 문화 콘텐츠 속에 남겨진 ‘전쟁 이후의 장애’는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또 외면해 왔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중원대 특임교수)
전쟁이 만든 장애, 예술이 이어간 삶
지난 5월 10일까지 열린 대학로 이음센터의 ‘길이 된 사람들’이라는 장애예술 전시회는 전쟁과 장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도 제공했다. 5만 원권 뒷면에는 세찬 바람에도 견디고 있는 대나무 그림이 인쇄되어 있는데, 이른바 풍죽화로, 세종의 5대손 탄은 이정(李霆, 1554~1626)의 작품이라는 점은 제법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을 그린 탄은 이정이 장애 예술가였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실 종친이었던 그는 직접 진주성 싸움에 나섰다가 왜군의 칼에 오른팔을 크게 다쳐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이후 그는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른손잡이였던 그가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다시 붓을 잡게 된 셈이지만, 오히려 그의 풍죽화는 더욱 독창적인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쟁은 많은 장애인을 만든다. 전투가 아니어도 군대라는 조직 구성원인 병사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된다.
최초의 한국 구필화가(口筆畵家)의 김준호(1954~2002)는 1974년 군 생활을 하던 중 탱크 위에서 떨어지면서 목을 다치는 통에 전신마비의 장애를 입게 됐다. 이후 그는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결국 ‘세계구족화가협회(AMFPA: Association of Mouth and Foot Painting Artists)’ 최초의 한국 회원이 되었다.
화가 장창익(1957~2023) 또한 21세에 판문점 근처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지뢰 사고를 당해 왼쪽 발과 눈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도 붓을 놓지 않았고, 생애 동안 4천여 점에 이르는 수준 높은 꽃 그림을 남겼다.
전후(戰後) 상처를 그린 우리 영화
영화 작품 속에서 전쟁과 장애의 관계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영화부터 보자. 이범선의 소설을 원작으로 연출한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1961)에서 철호(김진규)의 동생 영호(최무룡)는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6·25전쟁에서 허리에 총상을 입고 장애를 안게 된 인물이었다. 영호만이 아니라 경식(윤일봉) 등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들은 물론 주변에 팔과 다리를 잃은 이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실업자였고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영호에게 들어온 일이라는 게 영화 촬영 장면에서 실제 상이군인의 흉터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이에 격분한 그는 은행 강도로 전락한다. 상이군인만이 아니었다. 영호의 여동생 명숙은 영호의 전우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는 상이군인이 된 터라 잠적한다. 명숙은 절망스런 상황에서 미군 양공주의 길에 빠지고 경찰단속에 적발까지 된다. 국가에서는 이들을 거의 돌보지 않는 모습이었다. 곧잘 ‘가자’라는 말을 연발하는 전쟁 중에 실성했다고만 묘사되는 어머니(노재신)는 사실 전쟁 외상으로 인한 정신 장애인이었는데 이런 가족들에 대한 복지 정책도 전무했다.
이만희 감독의 ‘귀로’(1967)에도 상이군인이 등장하는데 결이 좀 다르다. 최동우는 6·25전쟁에서 부상으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데 제대군인의 자부심을 갖고 군복을 입으며 군가에 따라 엄숙한 의식까지 치르곤 한다.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들었지만 전쟁터를 추억하는 것이다. 더구나 성기능 장애로 아내에게 매우 자괴감에 휩싸여 있는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장애인 문인으로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다만 장애예술인의 측면을 간과한 면이 있다. 그의 소설은 부부의 이야기인데 성 장애의 상이군인을 아내가 살뜰하게 헌신하며 살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주인공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의 어머니(이영란)는 언어장애인이었는데 동생 대신 자원 징집된 진태는 극렬한 전쟁 외상으로 정신 장애를 얻게 된다. 다만, 전쟁으로 인한 정신 장애 관점에 집중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이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
할리우드 영화 속 재활과 회복
다음으로 할리우드 작품을 보려 한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6)는 전역 군인들의 귀국 후 일상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다. 이 가운데는 항공모함의 화재로 두 손을 잃은 호머라는 상이군인도 있었다. 호머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애인과 가족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초조해 한다. 가족들은 자신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에 부담감을 느껴 겉돌게 되고 애인 윌마(Wilma Cameron)를 떠나보내려 한다. 영화 ‘오발탄’에서 상이군인이 애인 명숙을 두고 사라진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오발탄’과 달리 호머는 자기 긍정 속에 윌마와 결혼하고 가족과 행복을 찾는다.
영화 ‘7월 4일생’(1989)은 베트남전 상이군인 론 코빅(71)의 동명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론은 어린 시절부터 전쟁과 군인에 대해서 낭만적인 환상을 갖고 있었지만 베트남 참전했다가 하반신 장애를 얻게 되고 상이군인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점차 반전주의자로 거듭나게 된다. 월남전을 다룬 또 다른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에서 경계성 지능장애이자 척추측만증으로 인한 지체장애인이었지만 결국에는 월남 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은 댄 소위를 구한다. 무엇보다 댄 소위가 제대하고 나서 상이군인으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새우잡이 선박 운항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재활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상이군인의 현실은 물론 사회 경제적 활동운 상대적으로 덜 부각이 된 것이 사실이다.
전쟁이 남긴 몸과 마음의 후유증
전쟁과 장애를 다룬 작품으로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The Deer Hunter, 1978)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동북부 펜실베니아주 철강공장 노동자 마이클(로버트 드 니로), 니키(크리스토퍼 워컨), 스티브(존 새배지), 스탠(존 카잘)은 절친 사이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는데 그만 포로로 잡히고 만다. 집으로 돌아온 것은 마이클뿐이었다. 스티브는 나중에 발견이 되지만 탈출 과정에서 헬기에서 추락해 하반신 마비 장애인으로 재향 병원에 있었고 스티브에게 거액의 돈을 보내는 이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돈을 보내오는 이는 사이공 도박장에 있던 니키였다. 함락 직전에 있는 사이공에서 도박 중독 상태였는데 알고 보니 포로 과정에서 고문당했던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등 정신 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결국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고 마이클은 혼자 다시 미국으로 오게 된다. 다만 상이군인이 주인공으로 장애인 관점이 덜 부각이 된 점이 아쉬웠다.
영화 〈디어 헌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우크라이나 이민자들의 후손들이었다. 2022년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장애인이 30만 명 발생하고, 러시아 측 부상자도 100만 명을 넘긴지 오래다. 전쟁으로 중도 장애를 입은 이들도 문제지만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이 우크라이나에만 180만 명이라는 분석도 있다. 상이군인뿐 아니라 전쟁으로 더욱 취약해진 장애인들의 삶 역시 국제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는 전쟁영화 속 영웅과 승리의 서사만이 아니라, 그 장면 뒤에 남겨진 장애와 재활, 배제와 생존의 문제까지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전쟁을 기억한다는 것은, 전쟁 이후에도 계속되는 누군가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