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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트렌드
영화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해 장애를 관계와 공감의 관점에서 짚어보는 칼럼

장애와 휴가 그리고 문화 향유

장애인에게 여행은 또 하나의 도전이자 긴 여정이다. 이동수단을 찾는 일부터 숙소를 예약하고 관광지를 이용하기까지, 여행의 모든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문턱이 놓여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길을 나선다. 벨기에 영화 ‘아스타 라 비스타’와 한국 다큐멘터리 ‘철규’, 프랑스 영화 ‘어 리틀 섬싱 엑스트라’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장애인의 여행을 이야기한다. 영화 속 여정은 단순한 휴가가 아니라 이동권과 문화향유권, 그리고 사회참여의 의미를 되묻는 과정이다.

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중원대 특임교수)

영화가 말하는 장애인 여행의 의미

벨기에 영화 ‘아스타 라 비스타(hasta la vista, 2011)’는 스페인에 있다는 장애인 전용 클럽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세 명의 신체장애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아 눈길을 끈 바 있다. 이들의 여행을 만류하는 부모들에게 세 친구는 굽힐 줄 모른다. 이에 부모들은 절충안을 모색한다. 바로 여행 보조인을 붙이는 것인데 일반인은 아니고 간호사 겸 운전사를 붙여준다.
프랑스 간호사 클로드(이자벨 드 헤르토그 분)는 남다를 것 없는 외모에 옷차림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덩치 큰 여성이다. 심지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여행이 힘든 것이라는 은근한 협박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 중에 요제프는 그녀에게 이성의 감정을 갖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여행이란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 애틋한 감정이 싹트는 건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한편 여행 가운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의사가 경고했던 라스는 바닷가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의 전체 내용을 보면, 제목 ‘아스타 라 비스타’가 스페인어로 “또 만나자”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있다. 여행 중에 세상을 떠나는 친구에게 건네는 이 말은, 장애인에게 여행이 얼마나 쉽지 않은 도전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적 현실을 다루고 있는 작품도 있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영화 ‘철규(2019)’는 와상장애인 철규의 제주 여행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장애인 휴가 여행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10여 년 전 시설을 나온 철규씨의 평생소원은 제주여행이었다. 마침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이상엽씨가 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나섰다. 탈시설은 물론이고 자립생활도 투쟁의 연속이었던 철규씨에게 여행도 마찬가지로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장애인이 세상 밖으로 나와 더 많이 보이고 더 많이 이동할 때, 비장애인의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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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스타 라 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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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철규〉

여행이라는 꿈, 접근성이라는 현실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2022)에 따르면 장애인이 참여하고 싶은 문화 및 여가 활동으로 여행, 나들이, 캠핑을 꼽은 비율은 49.8%에 달했다. 하지만 실제 참여는 저조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인의 삶’ 패널조사(2024년)에 따르면 장애인의 88%가 지난 1년간 “국내 여행 경험이 없다”고 답했으며,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7.4%(10명 중 9명 정도)가 국내 여행이 불편하다고 밝혔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떠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접근성의 한계에 있다. 휴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동이지만 그 문턱은 철규씨가 마주한 현실처럼 여전히 높다. 주요 관광지를 순회하는 시티투어버스는 전국 60여 개의 지자체에서 운행되고 있으나, 저상버스를 운영하는 지자체는 인천과 울산 등 7곳에 불과하다. 서울과 부산 역시 일부 노선에서만 저상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문제는 저상버스에만 그치지 않는다. 개별 여행을 위해서는 기차는 물론 유람선과 관광택시 등 다양한 교통수단에도 휠체어 경사로와 같은 접근성 설비가 마련돼야 한다.

여행권을 가로막는 마지막 장벽

영화 ‘철규’에서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나선 것은 숙박시설 역시 장애인에게 충분히 열려 있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관광숙박시설은 전체 객실의 3%를 장애인 등의 객실로 구성해야 한다. 특히 30실 이상의 일반숙박시설은 전체 객실의 1% 이상을 장애인 객실로 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규정을 지키는 곳은 많지 않다. 특히 여행지 중심에 있는 숙박시설은 이용률이 높기 때문에 장애인에게 할당하지 않는다. 장애인 객실이 있어도 예약 과정에서 확인하기 어렵고, 비장애인에게 판매되더라도 사실상 제재하기 쉽지 않다. 만약 장애인 객실을 의무 표기하게 하고 비장애인에게 판매를 제한한다면 현실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관광예산 1%에 불과한 무장애 예산을 확대하고 전국 단위의 표준 조례 또한 마련해야 한다. 장애인의 휴가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문화 향유의 권리이며, 이는 결국 모두를 위한 여행 환경을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편견을 거두면 얻을 수 있는 것들

프랑스 영화 ‘어 리틀 섬싱 엑스트라(A Little Something Extra, 원제: Un p‘tit truc en plus, 2024)’는 장애인 바캉스 여행의 긍정적 효과를 생각하게 만든다. 보석상을 턴 부자는 경찰에 쫓기던 가운데 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승차하게 된다. 알고 보니 그 버스는 발달장애인 11명이 바캉스 프로그램 여름 캠프에 가고 있었다. 그러자 아들은 발달장애인으로, 아버지는 보호자(사회복지사)로 위장한다.
장애인들은 곧 발달장애인 연기를 하는 아들을 눈치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으며, 오히려 발달장애인 실뱅은 더 완벽한 연기법을 가르쳐주기까지 한다. 얼떨결에 숨어들었던 두 부자는 점점 캠프에 참여한 장애인들에게 감복하게 되고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경찰이 마침내 들이닥치게 되자 발달장애인들이 온몸으로 두 부자를 지키려고 한다. 끝내 체포되지만, 두 부자는 이미 예전의 범죄자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 있었다. 장애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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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 리틀 섬싱 엑스트라〉

이러한 점은 장애인과 함께하는 여행이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장애인의 여행이 늘어날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기회 역시 많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다. 실제로 이 작품의 11명 주요 배역은 모두 실제 장애인이 맡았으며, 2024년 5월 개봉 이후 1,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프랑스 영화계의 흥행 기록을 새로 썼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장애인의 삶과 여행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작품이 더 많이 등장할 때가 됐다. 장애인이 여행지와 일상 곳곳에서 더 자주 보일수록,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또한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