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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확장
장애인 고용에 대한 관성적 시선을 넘어, 새로운 관점과 해법을 제시하는 칼럼

기후정의와 장애인 노동:

포용적 일터를 위한 기업과 사회의 과제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고 날씨 패턴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폭염과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생태계 훼손 등 다양한 기후재난이 일상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후위기(climate crisis)가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과 맞물려 장애인, 저소득층, 노인, 아동, 원주민, 이주민, 여성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더 큰 피해를 안긴다는 점이다. 특히 기후위기는 장애인의 노동환경과 고용에도 새로운 위험과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장애 포용적인 일터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글. 이동석 교수(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 대학원 장애학과)

장애인에게 불평등하게 다가오는 기후위기

기후위기는 기존의 불평등에 더해 이미 주변화된 소수자들에게 더 큰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후위기는 단순히 ‘환경문제’나 ‘자연재해에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비장애 중심 사회구조가 기후위기 속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어떻게 더 위험하게 만드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기후위기는 ‘장애 정의(disability justice)’의 개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장애인은 ‘기후위기에 본래 취약한 사람’이 아니다. 폭염, 홍수, 산불, 감염병 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접근 불가능한 대피소, 수어·쉬운 정보·점자·음성 안내 없는 재난문자, 휠체어 이용이 불가능한 대피소, 전력 의존 의료기기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는 정전 대응, 활동지원 중단, 약물·보조기기·돌봄서비스의 단절 등이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기후위기 취약성은 손상 자체의 결과가 아니라, 비장애 중심의 도시, 재난관리, 의료, 교통, 노동, 돌봄체계가 기후위기와 결합하면서 생산되는 구조적 위험이라 할 수 있다. 즉 장애인은 기후위기의 ‘수동적 피해자’라기보다, 접근 불가능한 교통, 재난대응 체계, 의료·돌봄 서비스, 노동환경 속에서 더 큰 위험에 놓이는 집단인 것이다.

사진 이미지

Ⓒ 클립아트코리아

기후위기 대응 속에서도 배제되는 장애

더구나 장애인이 배제된 채 기후위기 정책을 논의하다 보니 탈탄소 사회로 가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배제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탄소감축을 이유로 자동차 이용을 제한하거나 자전거·보행 중심 도시를 만들 때 휠체어 이용자, 시각장애인, 만성질환자,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사람의 접근권을 고려하지 않다 보니, 친환경정책으로 칭송받지만 장애인의 불평등을 강화하게 되었다. 이처럼 기후정책이 비장애 신체를 보편적 기준으로 삼을 때 장애인이 겪는 불평등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장애정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는 단순히 탄소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가, 누가 재난 시 가장 먼저 배제되는가, 누가 녹색 전환의 일자리에서 제외되는가를 묻는 문제이다. 예컨대 폭염 속 야외 노동, 냉난방이 충분하지 않은 작업장, 장시간 통근, 비상대피계획의 부재, 재택근무를 허용하지 않는 조직문화는 장애인 노동자에게 더 큰 건강위험과 고용 불안을 만든다. 따라서 기후위기와 관련된 장애정의 관점에서 장애인 노동권 보장이란 “장애인을 폭염·재난에 취약한 노동자로 보호한다”는 수준을 넘어, 기후위기와 녹색전환 과정에서 장애인이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일터에서 일하며, 전환 과정의 의사결정 주체가 되도록 노동체계를 재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장애 포용적 일터를 위한 사회의 과제

우선 폭염·한파·재난을 ‘노동안전’이자 ‘정당한 편의제공’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가장 직접적인 방안은 폭염, 한파, 홍수, 미세먼지, 감염병, 정전 등을 장애인 노동자의 개별 건강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 의무와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2025년 산업안전보건규칙 개정 이후 폭염 시 휴식, 냉방·통풍, 작업시간 조정 등 사업주의 보건조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장애인 노동자에게는 여기에 더해 장애 유형과 노동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휠체어 이용 노동자에게는 접근 가능한 냉방 휴게공간과 장애인화장실이 함께 보장되어야 하고, 신장장애·심혈관질환·척수손상·호흡기질환이 있는 노동자에게는 더 엄격한 온도 기준에 따른 작업 중지나 재택근무가 가능해야 한다. 또한 전동휠체어, 산소발생기, 인공호흡기 등 전력 의존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노동자에게는 정전에 대비한 비상전원과 충전시설도 노동권의 일부로 보장돼야 한다.
또한, 일터에 기후위험에 대한 장애영향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기업과 공공기관은 기후위험평가를 할 때 사업장 침수 가능성, 폭염 노출, 정전 가능성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위험이 장애인 노동자에게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후위험을 장애인의 관점에서 점검하는 ‘일터 기반 장애영향평가’가 필요하다.
평가 항목에는 휠체어로 이용 가능한 대피로 확보, 음성·문자·수어·시각신호를 활용한 재난경보 제공, 폭염 시 접근 가능한 휴게공간 마련, 보조공학기기 충전시설 확보 등이 포함돼야 한다. 아울러 활동지원사와 근로지원인, 통근지원 서비스가 재난 상황에서도 지속될 수 있는지, 감각과민이 있는 노동자가 폭염 대피소나 임시 근무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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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노동권을 지키는 기후정책

기후위기 시대의 노동권은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장애인이 녹색전환 과정에도 동등하게 참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녹색일자리와 정당한 편의제공, 이동권을 아우르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녹색일자리 전환에서는 장애인을 사후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초기 설계의 주체로 포함해야 한다. 기후정책은 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 돌봄, 생태복원, 순환경제, 녹색건축, 공공교통 등 새로운 일자리 확대를 포함한다. 문제는 이 전환이 비장애 노동자를 표준으로 설계되면 장애인은 새 일자리에서도 배제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녹색일자리 정책에는 장애인 접근 가능한 직업훈련, 보조공학 지원, 근로지원인, 쉬운 정보, 수어통역, 맞춤형 진입경로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적으로는 ‘장애인 녹색일자리 특별트랙’을 마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건물 에너지진단, 접근 가능한 기후재난 모니터링, 재사용·수리 산업, 공공돌봄과 기후적응 서비스, 무장애 생태관광, 장애인 접근성 컨설팅, 재난안전 교육 분야 등에 장애인 고용 목표를 설정하고 훈련비와 장비비, 근로지원 비용을 함께 지원하는 방식이다.
정당한 편의제공을 기후위기 대응형으로 확장할 필요도 있다. 기후위기 상황에서는 폭염 시 출퇴근 시간 조정, 재택근무, 냉방장비 제공, 보조기기 방수장비 지원, 미세먼지 또는 감염병 상황에서 별도 근무공간 제공, 침수 또는 폭설 시 유급 기후휴가, 기후재난 시 근로지원인 동행 보장, 장애 특성에 맞는 재난문자와 사업장 공지 제공 등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를 특혜가 아니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권리로 제도화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탈탄소 정책은 장애인의 이동권과 노동권을 함께 보장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기후정책은 자동차 이용 감축, 대중교통 확대, 보행·자전거 중심 도시, 에너지 절약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접근 가능하지 않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거나,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이 부족하면 장애인은 친환경 전환 과정에서 오히려 일터 접근권을 잃게 된다. 따라서 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는 기후정의는 무장애 대중교통, 특별교통수단의 노동시간대 운행, 전동휠체어 충전 인프라, 접근 가능한 환승체계, 재택근무권, 직장 내 주차 및 이동지원을 포함해야 한다. 녹색교통 정책은 “자동차를 줄이자”가 아니라 “누구나 탄소를 줄이면서도 일터에 갈 수 있게 하자”는 관점에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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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립아트코리아

장애인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는 모두의 일터

최근 폭염과 집중호우 등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커지면서 재난은 더 이상 일부 지역이나 계층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은 장애인이 이동과 정보 접근, 대피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이 단순한 재난 관리가 아니라, 장애인의 생존과 노동권을 함께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기후위기 시대 장애정의의 관점에서 포용적인 일터란 ‘장애인을 배려하는 착한 직장’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위기와 산업전환의 부담을 가장 약한 위치의 노동자에게 떠넘기지 않는 정의로운 일터이다.
결국 기후위기 시대의 일터는 가장 큰 불평등을 겪는 장애인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재난과 산업전환의 과정에서도 장애인의 생존과 노동권을 먼저 고려할 때 비로소 우리 기업과 사회는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포용적 노동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전문가 필진이 작성한 글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