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위기의 순간 몸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평소 준비에 달려 있다. 특히 장애인은 이동과 정보 접근, 의사소통 방식에 따라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당사자뿐 아니라 활동지원사 등 주변 사람이 함께 대응 방법을 익혀야 하는 이유다. 보라매안전체험관의 최연우 운영팀장은 안전교육의 핵심으로 ‘반복’을 꼽았다. 기후위기로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이 늘어나는 지금, 체험형 안전교육의 의미를 들어봤다.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보라매안전체험관 최연우 운영팀장
Q. 본인 소개와 함께, 보라매안전체험관이 어떤 곳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무슨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어떤 안전교육을 제공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2002년 서울소방에 입문해 관악소방서와 은평소방서, 마포소방서 등 여러 현장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서울시 보라매안전체험관 운영팀장으로 시민들의 안전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소방관 최연우입니다. 『장애인과 일터』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서울시민안전체험관은 동작구의 보라매안전체험관과 광진구의 광나루안전체험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화재와 지진, 태풍, 교통사고, 응급처치 등 다양한 재난 상황을 실제와 유사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해 시민들이 위기 상황에서 올바르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죠. 무엇보다 실제 재난 현장을 경험한 현직 소방관들이 직접 교육을 진행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고요.
저 역시 오랜 기간 소방 현장에서 근무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가 발생한 뒤의 대응보다 사고를 예방하고, 위급한 순간에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는 점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안전을 보다 쉽고 자연스럽게 익히고, 실제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체험 중심의 교육을 운영하고 있어요.
Q. 최근 기후변화로 폭우와 폭염, 태풍 등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이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체험관의 교육 내용이나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재난의 유형도 점점 다양해진 게 사실이에요. 하나의 사고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위험이 동시에 발생하거나 복합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여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까지 더해지면서 지진이나 태풍, 집중호우 등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재난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춰 시민들이 실제 상황을 몸으로 익히고 대응할 수 있도록 체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자연재난 프로그램으로는 지진과 태풍 체험이 있습니다. 지진 프로그램으로는 규모 7.0수준의 지진을 체험하는 프로그램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붕괴 현장을 탈출하는 붕괴탈출체험, 규모 5.0의 실외 지진체험을 진행합니다. 태풍 체험에서는 단계별 침수 상황과 거슬러 올라가는 급류,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의 강한 비바람 등을 실제와 유사하게 구현해 시민들이 재난 상황을 몸으로 체화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요.
또 화재와 교통사고 같은 인적재난에 대비한 체험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화기·소화전과 완강기 사용법, 화재 대피훈련은 물론 버스 사고와 지하철 사고 상황을 가정한 체험까지 실제처럼 경험하며 대응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완강기 사용법과 올바른 대피 요령 교육
Q. 현장에서 다양한 시민을 만나다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재난 대응 여건이 다르다는 점을 체감하실 것 같습니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재난 상황에서는 누구나 위험을 신속하게 인지하고, 곧바로 적절한 행동, 즉 대피나 신고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신체 조건이나 정보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도 재난을 인지하는 과정이나 행동으로 옮기는 속도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어요. 그 차이를 줄이는 것이 바로 보라매안전체험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고요. 단순히 체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이론과 체험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죠.
결국 중요한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보다는,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재난을 인지하고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체험교육은 실제 상황을 몸으로 익히는 과정인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화전 사용법을 설명 중인 최연우 팀장
Q. 장애인은 이동이나 정보 접근, 의사소통 등 여러 조건 때문에 재난 상황에서 더 큰 위험에 놓일 수 있습니다. 운영팀장님께서는 장애인의 재난 안전을 위해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말씀드렸듯, 재난 상황에서는 위험을 얼마나 빨리 인지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만, 장애 유형이나 개인의 특성에 따라 재난 상황을 인지하거나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장애인의 재난 안전을 이야기할 때는 당사자뿐 아니라 함께하는 보호자와 인솔자, 활동지원사 등 주변 사람들의 역할을 특히 강조하게 됩니다. 저희 체험관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해 장애인 대상 체험교육을 운영하고 있고요.
교육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보호자가 실제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익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장애인의 특성과 상황에 맞는 대응 방법을 체험하며 배우고, 보호자가 유사시 어떤 점을 먼저 살피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신속하게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Q. 보라매안전체험관에서는 장애인도 안전체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실제 체험교육을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참여자나 보호자의 반응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장애인을 대상으로 교육할 때는 먼저 해당 기관이나 시설의 건물 구조와 소방시설, 대피 동선 등을 꼼꼼히 살펴봐요. 같은 시설이라도 구조와 이용자의 특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현장에 맞는 교육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몇 층 건물인지, 주로 어느 층에서 생활하는지, 소화기나 비상구, 유도등(피난구유도등) 같은 안전시설이 어디에 설치돼 있는지 등을 확인한 뒤, 그 공간에 가장 적합한 대피 방법을 함께 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시설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체험교육을 진행하고, 그 공간에서 가장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래야 실제 상황에서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교육을 마친 뒤 참여자나 보호자분들이 전해 주시는 이야기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한 복지기관에서는 이용인과 함께 체험에 참여했던 보호자가 완강기를 직접 사용해 보며 그 중요성을 처음 실감했고, 가족 모두가 함께 안전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실제로 소화기나 완강기 같은 소방 장비가 가까이에 있어도 사용법을 몰라 위급한 상황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체험이 실제로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희 교육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교육 후 직접 실행해 보는 완강기 체험
Q. 재난 대응은 ‘아는 것’보다 ‘몸으로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특히 장애인을 위한 체험형 안전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일까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안전교육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이에요. 다만 장애인 분들에게 교육할 때는 그것이 조금 더 강조되어야 합니다. 내용은 최대한 단순하게 구성하되, 반복해서 직접 해 보도록 하면서 익힌 내용이 자연스럽게 체화되도록 돕는 거죠.
그런데 만일 스스로 재난 상황을 인지하기 어렵다면 교육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보호자가 상황에 맞는 행동 요령을 충분히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결국 반복하고, 숙달하고, 체화하는 것. 이것이 장애인은 물론 장애인을 돌보는 보호자에게도 가장 효과적인 안전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Q. 기후위기로 재난의 규모와 빈도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민들이 꼭 갖춰야 할 안전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기후위기로 재난이 더욱 다양해지고 예측하기 어려워질수록 특별한 기술보다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몸에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교육하다 보면 아이들은 비교적 안전수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성인이 되면 오히려 ‘괜찮겠지’ 하는 안전불감증이 생기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소방관으로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죠.
안전은 한 번 배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익혀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정기적으로 안전체험관을 찾아 직접 체험하고 몸으로 익혀 보셨으면 좋겠어요. 위기 상황에서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하거든요. 최소한 한 번만이라도 꼭 체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경험이 언젠가는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Q. 끝으로 『장애인과 일터』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과 함께, 앞으로 보라매안전체험관을 찾게 될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안전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안내 부탁드립니다.
안전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접 체험하고 실제 상황에서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하니까요.
보라매안전체험관에서는 장애인분들이 안전의 문제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대응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합니다. 스스로 대피가 가능한 분들은 반복적인 체험을 통해 대응 능력을 키우도록 돕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은 가족이나 보호자, 활동지원사와 함께 대피 요령을 익히도록 하죠. 실제 재난 상황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장애인 대상 안전체험은 소화기와 비상벨을 직접 사용해 보고, 비상구를 통해 대피하는 방법도 몸에 밸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합니다. 한 번이라도 직접 경험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응은 실제 상황에서 큰 차이가 나니까요. 몸이 먼저 반응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체험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고요.
반면 거동이 어렵거나 혼자 대피하기 어려운 분들일 경우에는 보호자나 활동지원사, 시설 종사자분들의 역할을 무엇보다 강조합니다. 어떤 순서로 대피를 도와야 하는지, 무엇을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 또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함께 설명하고 체험하며 익히게 하는 방식이죠.
결국 장애인 안전교육은 당사자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고 돌보는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은 만큼 함께 준비하고 함께 대응해야 모두의 안전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장애인과 일터』 독자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안전체험교육을 받아 보셨으면 합니다. 한 번의 체험이 위기 상황에서 나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이웃을 지키는 힘이 될 수 있어요.
장애인 체험자들의 안전 교육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