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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트렌드
영화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해 장애를 관계와 공감의 관점에서 짚어보는 칼럼

재난과 장애인

공적·사회적 시스템 작동의 중요성

재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닥치지는 않는다.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재난 속 장애인의 현실을 비추며 사회가 놓치고 있는 질문을 던진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영웅 한 사람의 활약이 아니라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공적 시스템이다.

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중원대 특임교수)

편견을 뒤집은 재난영화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 2018)’에는 소리가 나면 괴생명체에게 목숨을 잃는 설정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점자를 읽거나 수어를 할 줄 아는 장애인들이 소리를 내지 않고도 지혜롭게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간다. 비장애인에게 더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이기에 오히려 생존할 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장애가 내포한 함의를 전달한다. 나아가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 혐오와 차별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수 있게 돕는다.
영화 ‘스카이스크래퍼(Skyscraper, 2018)’에는 중도장애인의 의족이 부각된다. 전직 FBI 요원이었던 윌 소여는 폭탄 테러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착용한다. 은퇴 후에는 고층빌딩 보안 시스템 검사요원으로 일하는데, 홍콩의 초고층 빌딩 보안 시스템 점검을 위해 가족과 함께 출장을 왔다가 폭탄 테러로 가족 모두가 건물에 갇히고 만다. 그런데 윌 소여는 의족 덕분에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구하게 된다. 다리에 감긴 밧줄을 버티며 건물 외벽을 오를 수 있었고, 닫히려는 승강기 문 사이에 의족을 끼워 틈을 만든 뒤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일반 다리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물론 이런 유형의 영화들은 할리우드 장르물이거나 액션물이기 때문에 현실과는 좀 거리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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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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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카이스크래퍼〉

장애인 어머니가 마주한 재난

한국의 재난 상황 속 장애인의 모습은 몇 편의 영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한국 재난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2009년 개봉한 ‘해운대’다. 부산에 쓰나미가 몰려오면서 벌어지는 재난 상황을 다룬 작품인데, 이 영화에 장애인이 등장한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코믹 감초 캐릭터인 오동춘(김인권)의 어머니가 장애인이다.
저녁 시간, 어머니는 아들에게 작은 중소기업을 알아봤다며 월급도 200만 원을 준다고 하니 면접을 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아들은 구두 한 켤레도 없는데 무슨 면접이냐며 극구 거절하고, 어머니를 타박한다. 어머니는 “구두 사주면 면접 보러 갈끼가?”라고 묻지만 아들은 그대로 집을 나가버린다.
구두가 없어 오래도록 취업하지 못한 아들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어머니는 야유회를 나온 관광버스 일행을 뒤로하고 시장으로 향한다. 아들을 위해 구두를 사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나오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쓰나미와 마주한다. 몇 발자국 걷지 못한 채 다리를 저는 모습이 비춰지고, 이후 어머니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재빨리 도망이라도 가지만 말이다. 재난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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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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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기〉

장애인 어머니가 등장하는 영화는 또 있다. 2013년 개봉 영화 ‘감기’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벌어지는 감염병 팬데믹 상황에서 시위 진압군 철교(박정민)의 어머니가 장애인으로 등장한다. 철교는 분당의 진입 부대원으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던 가운데 엄마가 그 사이에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고 당황한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철교의 어머니는 친구 환갑잔치에 다녀오다가 강제 격리된 상황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부당한 조치에 문제의식을 강하게 느낀다. 분당-수서 고속도로에는 감염자가 아닌 이들까지 모두 통제 조치하는데, 항의하는 시민들의 항거가 있고 여기에 철교의 어머니도 있다. 당국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항의를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울러 재난 상황에서 자식의 죽음까지 보듬어야 하는 어머니의 상황도 보여준다.

장애인의 새로운 재현, 군체

개봉 영화 가운데 진일보한 사례로 많이 언급된 작품도 있다. 바로 영화 ‘군체(2026)’로 이 영화에서는 최현희(김신록)가 그 주인공이다. 최현희는 휴가를 맞아 동생과 점심을 먹으려고 둥우리 빌딩에 있다가 고립되는데 그냥 구조를 기다리는 인물에 머물지 않는다.
우선 최현희가 IT 업계의 전문가로 등장하는 지체 장애인이라 반가웠다. 특히 통제실을 확보해 생존자들의 눈과 귀가 되어 탈출 통로를 알려주며 절망적인 상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눈과 귀가 되어 준다는 설정도 역설적이다. 극한의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은 수동적인 배려와 동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며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남동생이 캠핑지게에 업고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상호 협력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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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체〉

다만, 장애인 배우가 연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며, ‘크리핑 업(cripping up)’1)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또한 최현희는 영화 ‘노팅힐(Notting Hill, 1999)’에 등장하는 벨라(지나 맥키)가 하반신 마비 지체장애인으로 활발하고 유쾌하게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자신의 역량을 바탕으로 결정적인 해법을 제시하던 모습에서 진일보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 역시 장르물이기에 장애인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영화들이 개인의 역량을 부각하고는 있지만, 재난은 공적 시스템을 통해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1)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관행을 일컫는 용어다. 장애 경험의 진정성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고, 장애인 배우의 배역 기회를 제한하며 장애 재현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모두를 위한 재난 대응을 바라며

장애인과 재난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 2018)’가 있는데, 이 작품은 포항 지진 당시의 실제 사례를 담고 있다.
2017년 11월 규모 5.4의 포항 지진이 발생했고, 이는 1905년 근대적 지진 관측 이래 가장 큰 피해를 기록했다. 하지만 많은 장애인은 대피하지 못하거나 대피를 포기해야만 했다. 52만 명이 거주하는 포항에는 약 2만 6,000명의 장애인이 있었지만, 포항시 재난관리 대책에서 이들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장애인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앞으로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포항 지진 당시 신체장애인은 대피가 어려웠고, 청각장애인은 재난 상황을 알지 못했다. 어렵게 대피소에 도착했더라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재난 상황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 주민센터 담당 공무원이나 소방공무원 등은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개인별 재난 대피계획을 마련하고, 재난 발생 시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대피 방법과 행동요령을 미리 숙달하도록 해야 한다. 홍수나 대형 화재 등의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 안전 종합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미리 점검하는 일은 언제나 필수적이다. 이러한 문제를 다룬 드라마나 극영화는 아직 드문 만큼,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더욱 늘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