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학교를 졸업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평생교육은 일상을 스스로 꾸리고 직업을 얻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토대다. 이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드물지만, 작품 속 장애인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일터에 적응하며 자립을 준비하는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평생교육의 의미와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주변의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
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중원대 특임교수)
이상적인 일터 너머, 배움의 과정
장애인 평생교육은 장애인이 사회의 주체로 자리 잡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많지 않다. 2001년에 제작된 김희선, 주진모, 조승우 주연 ‘와니와 준하(Wanee & Junah)’는 청춘스타들의 로맨스물이지만 장애인의 이상적인 직장 모습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꼽히는데 리메이크가 되었으면 싶다. 이유는 작품에서 등장하는 장애인의 고용 환경 때문이다.
주인공 와니(김희선)가 6년째 근무하는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에는 여성 직원이 많고, 그중에는 청각장애인 여성도 있다.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는 수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주목할 점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 모두가 수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다.
영화 〈와니와 준하〉
그렇다면 이 여성은 애니메이션 관련 기술을 어디에서, 어떻게 배웠을까? 영화는 그가 직무 역량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은 보여주지 않은 채, 동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일하는 이상적인 직장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춘다. 만약 이 작품이 오늘날 다시 만들어진다면, 장애인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직무 역량을 쌓고 일터에 진입하는 과정까지 함께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 평생교육과 고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로 리메이크되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배움과 가르침이 맞닿은 삶
안마 기술에 관한 영화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제6회 노인영화제 본선에 오른 단편 다큐멘터리 ‘손.길.’이 있다. 이 작품은 중증 시각장애인 안마사 양만석 씨의 활동을 중심으로, 도움을 받는 장애인이 아니라 자신의 기술로 다른 사람을 돕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양만석 씨 개인의 삶에만 머물지 않고 장애인의 학습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장면을 담고 있다. 양 씨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한편, 자신이 익힌 안마 기술을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 적극적으로 가르친다. 그에게 배우는 이들 역시 단순히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대로 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직접 찾아온다.
특히 양 씨가 학습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교육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배우려는 사람의 태도와 개인별 특성을 고려한 교육 방식은 일반적인 교육·훈련 과정에서도 간과하기 쉬운 요소이기 때문이다.
15분가량의 짧은 단편이지만, 이처럼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을 좀 더 비중 있게 확장했다면 더욱 풍성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는 영화 ‘사랑이 머무는 풍경(At First Sight, 1999)’과도 대조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 버질(발 킬머)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로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만, 그가 안마 기술을 어떻게 익혔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그 이야기가 개인의 삶에 머문다는 점에서도 ‘손.길.’과 차이를 보인다.
영화 〈사랑이 머무는 풍경〉
일상의 배움이 일과 자립으로 이어질 때
영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2014)’은 ‘응용행동분석’ 기법을 직업 선택과 연결한 작품이다. 딸 세연이 세 살 때 발달장애 판정을 받자 아버지 동훈은 응용행동분석을 통해 아이의 성장을 돕는다. 응용행동분석은 하나의 행동을 여러 단계로 세분화한 뒤, 각 단계를 차례로 익히도록 하는 방법이다. 가령 밥을 먹는 행동을 ‘숟가락 들기→밥에 숟가락 넣기→밥 뜨기→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기→입을 벌려 밥 넣기→씹기→삼키기’와 같이 나누고, 하나씩 반복해 익힘으로써 스스로 식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동훈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나지만, 아버지의 꾸준한 노력 속에서 성장한 세연은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비장애인인 유미래와 함께 바리스타 직업재활훈련도 받는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같은 자리에서 직업교육을 받는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장면이다. 다만 작품 전체가 학교폭력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만큼, 바리스타 교육과 직업 선택의 과정은 부차적으로 다뤄진다. 응용행동분석을 통해 일상생활 능력을 익히는 과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업교육과 평생 학습까지 비중 있게 그렸다면 어땠을까 싶다. 이러한 접근을 확장한다면 장애인의 평생교육을 다룬 다양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바리스타에서 확장된 직업군이 나오는 영화 ‘채비(2017)’의 경우에는 생각지 못한 면에서 장애인의 교육을 생각하게 만든다. 엄마의 아들 자립기에 관한 훈훈한 작품인데 학습에 더해 경제 자립, 그리고 독립생활에 대해 한국적인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영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영화 〈채비〉
함께 배우고, 스스로 서기까지
일곱 살 아이의 지능을 지닌 서른 살 아들 인규(김성균)와 살아온 애순(고두심)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아들이 자신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한다. 집에서는 인규가 좋아하는 달걀프라이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밖에서는 직업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규가 일을 배우는 곳은 베이커리 카페다. 그는 다른 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샌드위치와 커피를 만드는 법부터 손님을 응대하는 방법까지 차근차근 익힌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어느 날 애순은 인규가 경찰서에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 상처 난 얼굴을 본 애순은 아들이 일방적으로 맞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인규가 손님을 먼저 때린 것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손님이 자신을 미워하고 욕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들었던 “바보 같은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아, 세상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그렇게 여길 것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사정을 알게 된 애순은 아무도 인규를 바보라고 생각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며, 먼저 인사하고 다정하게 다가가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다음 날 인규는 엄마와 함께 홍보 전단을 나눠 주지만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한다. 그러다 직장 동료들이 나와 함께 인사하며 전단을 건네고, 사람들이 이를 받아 주자 조금씩 성취감을 느낀다. 이후에는 전단을 나눠 주지 않을 때도 시장 사람들에게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다. 직무 기술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상처와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장애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인규는 점차 동료들과 어울려 일하게 되고, 마침내 엄마가 좋아하는 슈크림빵을 직접 만들어 애순을 놀라게 한다.
인규가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을 배우고 직업을 갖기까지는 엄마 애순의 노력뿐 아니라 구청 복지 담당 공무원 박 계장(박철민)의 지원도 큰 역할을 한다. 학습과 자립의 과정이 다소 낭만적으로 그려진 면은 있지만, 장애인 평생교육이 실제 직업과 독립생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노력뿐 아니라 가족의 지지와 동료 관계, 지역사회의 지원이 함께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간혹 장애인 평생교육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배움이 일상생활과 직업교육, 일자리, 독립생활로 이어지는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를 만난다. 그럴 때면 장애인의 학습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수어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과 숙련자의 맞춤형 교육, 가족의 꾸준한 가르침, 직장과 지역사회의 지원이 함께할 때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 이러한 단편적인 장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애인 평생교육의 과정과 그것이 삶에 가져오는 변화를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