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스포츠는 즐거움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활력을 되찾는 통로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걸린 현실이다. 장애인에게도 스포츠의 의미는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오랫동안 장애인 스포츠를 재활과 극복, 감동의 언어로 설명해 왔다. 영화 속 장애인 스포츠가 누구를 위한 감동이었는지, 그리고 최근의 작품들은 그 익숙한 시선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있는지 살펴본다.
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중원대 특임교수)
극복의 서사를 넘어 삶의 스포츠로
장애인에게 스포츠는 흔히 치유와 재활, 자신감 회복과 사회관계 형성의 수단으로 설명된다. 장애를 다룬 영화 역시 비장애인 관객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전하는 데 주력하면서 정작 장애인을 이야기의 중심에서 밀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비장애인에게 스포츠가 건강과 성취 이상의 다채로운 의미를 지니듯, 장애인에게도 스포츠는 재활이나 극복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영역이다.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영화는 장애인이 스포츠를 통해 마주하는 다양한 현실에 조금씩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이클 톨린 감독의 영화 ‘라디오(2003)’는 1976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배경으로, 지적장애인 제임스 로버트 케네디와 고등학교 미식축구 코치 헤롤드 존스의 우정을 그린 실화 기반의 스포츠 드라마다. ‘라디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제임스(쿠바 구딩 주니어)는 흑인이자 지적장애인으로 위축된 채 미식축구팀의 경기와 훈련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일부 선수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제임스를 헤롤드 존스 코치가 도와주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이후 제임스는 팀의 훈련을 도우며 활기를 더하고, 점차 학교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대와 모함을 딛고 제임스가 명예 졸업장과 미식축구팀의 상징인 레터맨 재킷을 받기까지는 백인 비장애인 코치의 배려와 노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라디오’라는 별명 역시 늘 라디오를 지니고 다니는 제임스의 모습을 보고 존스 코치가 붙여준 것이다.
영화 〈라디오〉
존스 코치는 제임스가 자신들에게 더 큰 위로와 가르침을 주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제임스는 미식축구 선수로 뛰지 않는다. 장애인이 스포츠의 주체가 되기보다 비장애인과 공동체에 감동을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한계를 남긴다. 장애인 스포츠를 당사자의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여전히 많지 않다.
감동의 대상에서 스포츠의 주체로
코치와 장애인의 관계를 보다 긍정적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작품은 영화 ‘말아톤(2005)’이다.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전직 마라토너 정욱(이기영)은 처음에는 초원이(조승우)를 무심하게 대하지만, 달리기를 향한 그의 열정과 남다른 지구력을 발견하면서 진심으로 훈련을 돕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초원이를 과도하게 보호하려는 어머니 경숙에게 제동을 걸고, 초원이가 자신의 의지로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도록 이끈다. 영화는 장애 극복이나 승리의 감동보다 초원이가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자립해 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다리 보조기를 착용하던 주인공이 어느 순간 비범한 달리기 능력을 발휘해 성공과 명성을 얻는 ‘포레스트 검프’와 비교하면 이러한 차이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영화 〈말아톤〉
영화 〈국가대표〉
2009년 개봉한 ‘국가대표’에는 지적장애가 있는 강봉구와 청각장애가 있는 그의 할머니가 등장한다. 봉구는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로 대회에도 출전하지만, 영화의 주제의식은 장애인의 삶이나 스포츠 경험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장애인 캐릭터 역시 극적인 감동을 더하기 위한 설정에 머문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장애인 선수들이 스포츠 영화의 중심에 선 대표적인 작품은 2011년 개봉한 ‘글러브’다. 영화는 청각장애 학생 10명으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처음에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마지못해 야구부 감독을 맡은 김상남(정재영)은 선수들을 향한 세상의 동정 어린 시선을 마주하면서 태도를 바꾼다. 이후 우승보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르는 데 의미를 두고 훈련에 매진한다. 영화가 장애 극복이나 승리보다 도전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 점은 의미가 있다. 다만 이야기가 비장애인 감독의 변화에 무게를 둔 탓에 청각장애 선수들이 처한 상황과 내면은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했다.
영화 〈글러브〉
삶으로 이어지는 스포츠, 현실의 장벽
장애인 스포츠를 자신감 회복이나 사회관계 형성뿐 아니라 생계의 관점에서 비춘 작품도 있다. 바로 2022년 개봉한 ‘복지식당’이다. 사고로 중도장애인이 된 재기는 잘못된 장애등급 판정으로 경증인 5급을 받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친절하게 접근한 병호는 장애인 스포츠인 론볼(Lawn Bowls) 선수로 등록하면 적은 금액이나마 매달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며 500만 원을 요구한다. 자립하려는 장애인의 절박함을 악용한 사기였던 것이다. 영화 속 론볼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하는 스포츠인 동시에 장애인의 불안정한 생계와 이를 둘러싼 착취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스포츠가 자립과 사회관계 형성, 자아실현의 통로가 될 수 있지만, 그 기회에 다가가는 장애인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앞서 살펴본 문제의식을 한층 확장한 작품이 ‘달팽이 농구단(2025)’이다. 농구 스타 출신인 상우(박호산)는 은퇴 후 지도자로 활동하던 중 뇌종양 수술을 받으며 위기를 겪는다.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그는 제약회사 소속 실업 휠체어농구팀의 감독을 맡지만,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팀의 실력과 자신에게 낯선 경기 방식에 불만을 품고 선수들을 거칠게 몰아붙인다. 여기에 에이스로 영입한 천재 선수 최명이 팀원들과 갈등을 빚고, 제약회사마저 구단 해체를 결정하면서 팀은 존폐의 기로에 놓인다.
그러던 중 뇌종양이 재발해 한동안 휠체어를 이용하게 된 상우는 선수들의 삶과 휠체어농구를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한다. 전직 형사와 격투기 선수 등 저마다 살아온 과정과 장애를 갖게 된 배경이 다르며, 신체적 특성과 처지에 맞는 농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후 상우와 선수들은 직접 구단을 꾸려 다시 코트에 나선다.
영화 〈달팽이 농구단〉
장애인이 스포츠를 ‘누리는’ 삶, 더 많은 영화로
‘달팽이 농구단’은 휠체어농구를 개인의 재활을 넘어 삶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재활을 위해 농구를 시작한 선수들은 코트에서 사회와 다시 연결되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해 나간다. 이야기도 첫 승이나 우승이라는 결과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특히 중도장애인이 된 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비추며, 같은 지체장애인이라도 신체적 조건과 처지에 따라 서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장애인 선수들 사이에도 각기 다른 욕망과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담아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장애인 스포츠 영화보다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입장에서도 스포츠를 즐기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여전히 드물다. 장애인에게도 스포츠는 재활이나 극복, 감동을 위한 도구이기 전에 그 자체로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활동이다. 그런 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스포츠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다만 스포츠에 참여하는 조건과 경험,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