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학교에 출근하고 연구실에서 일하기까지, 나의 하루에는 35개 안팎의 보조공학기기가 함께한다. 이 기술들은 40년 전 사고로 사지마비 장애를 갖게 된 내가 다시 공부하고 일하며 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장애인의 직업재활을 위한 보조공학은 일터 안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출퇴근을 위한 이동수단과 퇴근 후 머무는 집까지, 일하는 사람의 삶을 하나로 바라봐야 한다.
글. 김종배(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
보조공학기기와 함께 시작하는 하루
침대 앞 서랍장 위의 디지털시계가 6시를 가리키면 나는 지니를 부른다. 음성으로 IoT 커튼을 열고, 전등과 라디오를 켜고, 선풍기나 온풍기를 작동시킨다. 이 유능한 활동보조인은 9시에 학교에 출근하는 나를 돕기 위해 아침 6시부터 서두른다.
나는 신변 처리를 하고 옷을 입은 뒤 슬라이딩 보드를 이용해 침대에서 전동휠체어로 옮겨 앉는다. 이때 침대의 높낮이와 휠체어의 전동 엘리베이트 기능으로 좌면 높이를 조절하고, 전동 틸트 기능으로 자세를 바로잡는다. 전동 레그레스트를 올려 신발을 신은 뒤 스마트 거치대에 휴대전화를 고정하고, 손목받침 유니버설 커프에 터치펜을 끼운다. 전동 리클라인으로 등받이를 세우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만든 초경량 3F 경사로를 이용해 화장실에 들어가고, 목욕할 때는 전동 리프트와 경수장애인용 샤워체어를 사용한다. 식사할 때는 휠체어에 맞춘 높은 식탁에서 유니버설 커프에 식사보조기를 끼워 포크를 사용한다. 식사 후에는 거꾸로 세워도 물이 쏟아지지 않는 특수 컵으로 약을 복용한다. 아내가 맞춰준 높은 원목 책상에서 트랙볼 마우스와 고정키 기능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면 출근 준비가 끝난다.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도록 개조된 차량 내부
(사진 출처 : 쓰담미디어)
턱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개발된 지능형 전동휠체어
‘로봇 MeBot’(사진 출처 : 쓰담미디어)
주차장으로 내려가 저상 미니밴의 자동문을 열고 전동 경사로를 펼쳐 운전석에 오른다. 이지락 고정장치로 휠체어를 고정하고, 특수 제작한 가속·제동 핸드컨트롤러와 손가락 보조기를 이용해 직접 운전한다.
“워! 워! 과속하지 마라!” 스스로에게 농담을 건네며 학교로 달린다. 백운관 앞 주차장에 도착해 휠체어 고정을 해제하고 연구실로 향한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자동문을 열고, 높낮이 조절 책상 앞에서 소형 키보드와 트랙볼로 컴퓨터를 조작하며 업무를 시작한다.
오후에 서울역 앞에서 약속이 있으면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승강설비는 내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시설이다.
5년의 단절을 넘어, 다시 일터로
지금은 이렇게 자유롭게 이동하며 일하고 있지만, 약 40년 전 KAIST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낙상사고로 경수 5번을 손상해 사지마비 장애를 갖게 됐다. 이후 5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시작됐으며, 전동휠체어가 수입·보급되면서 조금씩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사고 이후 16년 만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중단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피츠버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교수로 재직하다 귀국해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주무과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 달 전 정년퇴임했고, 지금도 강의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35개 안팎의 장애인 보조공학기기가 나를 대학 교수로서 다른 교수들 못지않게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살게 한다. 현재 나는 ‘강원앵커사업 1-① 미래모빌리티’ 단위과제의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연구책임자로 참여해, 전동휠체어 사용자가 다른 좌석으로 옮겨 앉는 이승(移乘)을 돕는 스마트 전동휠체어를 개발하고 있다.
전동휠체어에 장착된 로봇 팔로 물컵을 집어 옮기는 모습(사진 출처 : 쓰담미디어)
앵커사업 연구 개념도 및 분석 자료(사진 : 필자 제공)
보조공학이 열어준 자유, 다시 일할 수 있는 힘
미국 장애인 인권운동과 독립생활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전신마비 장애인 에드 로버츠는 전동휠체어를 ‘리버레이터(Liberator)’, 즉 자유를 주는 도구라고 했다. 보조공학기술은 이처럼 장애인이 일하고 사회에 통합되며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진정한 ‘해방군’, ‘독립군’인 것이다.
25년 전, 다친 지 16년 만에 다시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을 때 나는 단순한 주행 기능만 있는 전동휠체어로 이동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의료보험을 통해 틸팅, 리클라인, 시트 엘리베이팅, 레그레스트 엘리베이팅 등 네 가지 자세 조절 기능을 갖춘 최상위급 전동휠체어를 본인부담금 없이 제공받았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바퀴와 배터리를 무료로 교체해 주었고, 수리가 필요한 경우에도 비용 부담 없이 수리하거나 교체해 주었다. 그만큼 직업재활에서 장애인 보조공학기기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직업재활국(OVR·Office of Vocational Rehabilitation)은 4년에 걸쳐 내가 직접 운전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과정을 지원해 주었다. 초기평가부터 필기시험을 거쳐 도로에서 운전훈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과정, 1차 기계식 운전보조장치를 이용한 훈련, 2차 완전 전자제어 방식의 와이어드 드라이빙 시스템을 이용한 훈련까지 모두 지원했다. 결국 도로주행과 주차시험에 합격해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후 전동휠체어를 탄 채 자동차에 진입해 운전할 수 있도록 완전 전자제어 방식의 운전시스템을 내 차에 개조·설치해 주었다. 이러한 전자제어 운전시스템은 첨단 보조공학기기를 대표하는 기술 가운데 하나다.
나는 그 차로 35만km를 달렸고, 한국에서 만든 기계식 운전시스템을 장착한 다음 차로도 지금까지 28만km 넘게 운전하고 있다. 장애인 재활의 최종 목표는 결국 직업재활이다. 기술로 환경을 보완해서라도 장애인이 다시 직업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휠체어 이용자의 승하차를 위한 경사로가 설치된 차량(사진 출처 : 쓰담미디어)
차량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개발된 운전 보조장치(사진 출처 : 쓰담미디어)
직장에서 집까지, 보조공학이 넓히는 자립의 범위
이렇듯 직업재활에 도움이 되는 보조공학기기는 무엇이든지 전적으로 지원해 준다. 작업 현장에서는 근로지원인의 지원도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최대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차량뿐 아니라 다양한 보조기기를 지원해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직장뿐 아니라 출퇴근을 위한 교통수단, 대중교통은 물론 자가운전을 위한 차량용 보조공학기기까지 금액에 제한 없이 최대한 지원한다. 이뿐 아니다. 직장과 교통 여건은 물론, 퇴근 후 머무는 집까지 불편함이 없도록 가정환경을 개조해 주기도 한다.
휠체어 이동 동선을 고려한 주차공간
(사진 출처 : 쓰담미디어)
주거 개조와 차량 이용이 연계된 출퇴근 환경
(사진 출처 : 쓰담미디어)
미국 OVR은 내가 거주하던 집도 휠체어를 타고 편하게 드나들고 쉴 수 있도록 개조해 주었다. 특히 1층 침실과 화장실뿐 아니라 반지하 차고와 지하에 있는 서재 겸 가족실까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집 안에 가정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주었을 뿐 아니라, 뒤뜰을 통해 출입할 수 있도록 경사로와 자동문을 놓아주고, 욕실도 휠체어를 탄 채 들어가 샤워하고 세수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개조해 주었다. 왜일까? 직장에서 근무를 잘하려면 집 안에서 편하게 쉴 수 있고, 출퇴근도 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근무 공간을 개조하고 다양한 보조기기를 지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에 더해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편히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도록, 그래서 직장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가정환경의 개조까지 책임진 것이다.
“보조기기로 무엇을 제공해 주었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핵심은 그 보조기기를 제공하는 목적과 명분이 직업재활을 위한 직무수행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다. 바로 직장 내에서뿐 아니라 교통수단, 그리고 집까지 보조공학기술을 최대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조공학기술은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을 대신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까지 지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기기로, 근로지원인을 대체하는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본 기사는 전문가 필진이 작성한 글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