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불꽃을 만나 부드러워지고, 손끝의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형태를 갖춘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색을 입히고 모양을 다듬은 뒤, 천천히 식히는 기다림 끝에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작은 유리 조각에 담긴 빛과 색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집중과 인내의 즐거움. KEAD 혁신주니어보드로 활동하는 이태윤 주임, 서울동부지사 이홍주 주임, 서울북부지사 박상원 대리(이하 삼인방)가 유리공예의 매력을 경험했다.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영상. 황의진
멍때림과 긴장 사이
각지에서 모여든 삼인방의 표정에 기대와 긴장이 교차한다. ‘유리공예’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막상 불꽃 앞에서 유리를 녹이고 모양을 빚어야 한다니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자칫하면 깨질 수 있는 유리로 과연 삼인방은 어떤 작품을 완성하게 될까.
흔들리는 불꽃을 가만히 바라보는 순간, 머릿속이 잠시 고요해진다. 불꽃 속에서 유리가 녹기 시작하자 손끝에선 긴장이 감돌고, 거리를 살피며 녹아내리는 유리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다.
유리공예는 이처럼 차분한 몰입과 섬세한 긴장이 공존하는 작업이다. 투명한 유리에 색을 입히고, 서로 다른 색의 유리를 이어 붙이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제작 방식에 따라 색유리를 잘라 이어 붙이는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 고온에서 유리를 녹여 결합하는 퓨징(Fusing), 토치의 불꽃으로 유리봉을 녹여 형태를 만드는 램프워킹(Lampworking) 등으로 나뉜다. 이번 삼인방의 체험 종목은 ‘램프워킹’이다.
램프워킹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장비로 작업할 수 있고, 유리를 녹여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어 초보자도 기초부터 체험하기에 좋은 기법이다. 복잡한 도구나 전문적인 기술을 익히지 않더라도 강사의 안내에 따라 작은 장식품부터 머들러, 스푼 등 실용적인 소품까지 만들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불꽃의 열기에 따라 유리가 부드러워지고, 손끝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물론 보기에는 간단해도 원하는 모양을 완성하려면 충분한 인내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작업대에 모여 앉은 직원들(좌)과 토치 불꽃으로 녹인 유리를 성형하는 모습(우)
인내, 유리가 녹는 시간
공방 한쪽에는 분홍색과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등 형형색색의 유리봉이 가득 꽂혀 있다. 이 가운데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불꽃에 녹이고 모양을 다듬으면 작은 장식부터 머들러와 스푼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불이 생각보다 굉장히 세거든요. 너무 가까이 가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주세요.” 강사의 설명과 함께 시연이 시작됐다.
강사에 따르면, 유리는 갑자기 열을 가하면 깨지기 쉬운 소재다. 따라서 유리봉을 불꽃 가까이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온도를 높여야 한다. 끝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면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녹기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유리가 한쪽으로 쏠리거나 흘러내리지 않도록 두 손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유리봉을 가열하고 모양을 빚으며 집중하는 모습
먼저 버너에 불을 붙이자 작지만 강렬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강사는 완성된 작품을 쉽게 분리할 수 있도록 금속봉인 만드렐(Mandrel)에 이형제(Bead Release)를 바르고, 다른 손에는 유리봉을 쥔다. 유리봉을 불꽃 가까이 가져가자 단단하던 끝부분이 점차 붉게 달아오르더니 아래로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다. 열을 받아 부드러워진 유리가 특유의 유동성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끝부분이 동그랗게 뭉치고 가느다란 줄기가 늘어진, 이른바 ‘콩나물 머리’ 모양이 되자 강사는 이를 만드렐에 가져다 댄다. 이어 금속봉을 일정한 속도로 돌리며 녹은 유리를 둥글게 감아 올린다. 감고 다시 녹이기를 반복할수록 유리 덩어리는 조금씩 커지고 모양도 둥글게 잡힌다.
원하는 크기가 되자 이번에는 나이프와 패들(Paddle),1) 핀셋 등을 이용해 형태를 다듬는다. 둥근 표면을 누르고, 살짝 밀고, 필요한 부분은 잡아당기며 모양을 빚는다. 여기에 다른 색의 유리를 조금씩 녹여 덧붙이자 눈과 코, 입과 귀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전까지 길고 가느다란 막대에 불과했던 유리봉이 어느새 표정을 지닌 귀여운 얼굴로 변신했다.
1) 유리 표면을 평평하게 누르거나 형태를 정돈하는 도구
작게, 섬세하게 모양을 빚다
삼인방도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강사의 손끝에서 그토록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동작들이 막상 자신의 차례가 되자 고장이라도 난 듯 삐걱거린다. 한 손으로는 금속봉을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가볍게 쥐고, 두 손가락을 서로 비비듯 움직이며 끊임없이 돌린다. 다른 손으로는 유리봉 끝을 불꽃 속에 가져가 천천히 녹인다. 유리가 한쪽으로 쏠리거나 흘러내리지 않도록 금속봉을 일정한 속도로 돌리는 것이 관건이다. 두 손으로 서로 다른 동작을 동시에 해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양손을 쓰다 보면 마음 같지 않아서 정신이 없을 수도 있어요.” 강사의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불꽃과의 거리를 유지하느라 팔을 든 자세가 길어지고, 손가락으로 봉을 쉼 없이 돌리다 보니 어느새 팔이 뻐근해진다. 잠시라도 손을 멈추고 싶지만, 그사이 유리의 모양이 흐트러질까 마음대로 쉴 수도 없다.
토치 불꽃에 유리봉을 녹이며 작품을 만드는 모습(좌) 가열한 유리봉을 돌리며 섬세하게 모양 빚기(우)
가까스로 유리를 둥글게 감고 나면 이번에는 작은 장식을 붙일 차례다. 강사가 보여준 것처럼 다른 색의 유리봉 끝을 녹여 붙이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의도한 것보다 커다랗게 뭉치기도 하고,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지기도 한다. 유리를 녹여 붙이고, 불꽃 속에서 끊어낸 뒤 다시 가열해 접합 부위를 매끄럽게 다듬는다. 너무 오래 가열하면 애써 만든 형태가 무너지고, 불꽃에서 멀어지면 금세 굳어버리니 적당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렵다”는 탄식이 수시로 흘러나오지만, 누구 하나 손을 놓지 않는다. 불꽃에 시선을 고정하고 녹이고 붙이고 다듬는 동작은 반복된다. 그렇게 둥근 유리에 작은 귀를 붙이고, 눈을 더하며 조금씩 모양을 완성해 간다. 서툰 손끝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을 향해 반가운 감탄이 흘러나온다. 작고 앙증맞은 유리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이토록 많은 집중력과 인내가 필요할 줄이야.
서냉(徐冷), 조심조심 온도를 낮추다
작품의 형태가 완성됐다고 모든 과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뜨겁게 달궈진 유리는 급격한 온도 변화에 깨질 수 있어 서서히 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금속봉에 붙은 작품을 작은 자갈처럼 생긴 버미큘라이트(Vermiculite) 속에 조심스럽게 묻는다. 천연 광물인 질석을 가열해 부풀린 버미큘라이트는 단열성이 뛰어나 유리가 급격하게 식는 것을 막아준다. 유리는 식는 동안 표면과 내부의 온도 차가 커지면 금이 가거나 깨질 수 있다. 실제로 몇몇 작품이 깨지는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불꽃 속에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그 열기를 천천히 식히는 일도 중요한 셈이다.
충분히 식힌 뒤 금속봉에서 분리하면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기다림 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저마다의 색과 모양을 지닌 작은 유리 작품들. 조금 삐뚤어진 모양도, 생각과 다르게 완성된 부분도 직접 만든 작품이기에 특별하다. 작은 유리 장식 하나에도 색을 고르는 즐거움과 불꽃 앞에서 보낸 집중의 시간, 완성의 뿌듯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상의 분주함에서 잠시 벗어나 하나의 작업에 마음을 쏟는 시간. 유리공예는 그렇게 손끝에서 빚어낸 작은 작품과 함께 잠시 잊고 있던 몰입의 즐거움을 선물한다.
(좌측부터) 이홍주 주임, 이태윤 주임, 박상원 대리
유리공예의 역사는 약 4,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모래와 소다, 석회 등을 이용해 유리를 만들었으며, 초기에는 구슬이나 장신구 등 작은 장식품을 제작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유리를 활용한 향수병과 각종 용기가 만들어졌고, 다양한 색을 입히는 장식 기술이 발달하기도 했다.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유리관에 입김을 불어 넣어 형태를 만드는 유리 불기 기술이 등장하면서 유리 제품의 제작과 보급이 확대됐다. 오늘날 유리공예는 스테인드글라스, 퓨징, 램프워킹 등 다양한 기법으로 발전해 생활용품부터 예술 작품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이태윤 주임
평소 좋아하는 노란색과 보라색 유리로 하트와 고양이를 만들고 싶었어요. 20분 동안의 사투 끝에 복숭아와 못생긴 고양이를 완성했지만요.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할 만큼 재미있었어요. 퇴근 후나 주말에도 업무에 대한 생각이 많은 편인데, 오롯이 눈앞의 유리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머릿속을 비우고 재충전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이홍주 주임
투명한 분홍색과 연보라색 유리로 티스푼을 만들었어요. 평소 커피나 차를 자주 마셔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트 모양이 잘 안 나와서 자신이 없었는데,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완성하고는 정말 기뻤습니다. 마치 예민하고 까칠한 무언가를 길들이는 느낌이었어요. 평소 손재주가 없어 공예에 도전할 생각을 못 했는데, 이번에는 작업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흥미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상원 대리
녹인 유리를 큰 덩어리에 붙였다 떼어내는 작업이 쉽지 않았어요. 붙이는 건 괜찮았는데, 떼어낼 때 길게 늘어지거나 식어서 굳어버리기도 했죠. 불과 유리를 다루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작업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잡생각도 잊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비록 사과를 만들려고 했는데 당근이 되어버렸지만, 그것마저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