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스윗 정릉점
2월 3일은 ‘한국수어의 날’이다. 말 대신 손으로, 소리 대신 표정과 눈빛으로 전하는 ‘다름’의 언어가 ‘기념일’이라는 이름에 안겨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다름을 배려가 아닌 권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대변한다. ‘카페스윗’에서 그 변화는 이미 구체적인 일상이다. 손님은 필담 노트에 주문을 적고, 직원은 손끝과 눈빛으로 답한다. ‘천천히’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같은 업무를 함께 수행하며, 조용하고 다정한 관계의 하루를 만든다. 이번 코너에서는 수어가 언어를 넘어 일터의 조건이 되는 현장을 소개한다.
카페스윗의 매장 풍경. 손과 눈빛, 글자로 소통하는 이곳에서는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속도로 일한다.
은행 ‘사내 카페’ 아닌,
사회적 협동조합의 ‘일터’
‘카페스윗’은 “마음과 손으로 소통하는 아이컨택(Eye Contact) 카페”다. 신한은행의 사회공헌 사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자주적·자립적·자치적인 운영 원칙을 바탕으로 설립된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2020년 설립된 카페스윗은 그간 공공 영역만으로는 충분히 채워지기 어려운 사회복지 서비스를 보완하고, 취약계층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해 왔다. 이는 더 나아가 장애 인식 개선과 지역 기반의 문화 활동, 상생 협력 모델을 통해 사회 문제 해결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일상의 공간 속에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성실 팀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희 조합의 목표가 원래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비율에 비해 고용률이 낮은 청각장애인에 주목했어요. 신체 활동에 큰 제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의 장벽 때문에 계약 연장이나 고용유지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청각장애인과 비청각장애인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카페 형태의 일자리를 구상하게 된 겁니다.”
물론 은행은 사회공헌의 메시지를 낼 수 있고, 스윗은 운영 기반과 홍보 효과를 얻으며 상생하는 구조다. 그러나 ‘소리(Sound) 대신 특별함(Special)이 함께하는 공간(Space)’이라는 스윗(S-with)의 독립적인 정체성만은 명확하다.
카페 이용자들은 태블릿에 주문 목록을 적어 청각장애인 직원에게 전달한다.
일하는 방식까지
설계된 공간
정릉시장을 지나 보국문로 대로변에 자리한 카페스윗 정릉점은, 멀리서 보면 은행인지 카페인지 쉽게 구분하기 어려운 건물을 자랑한다. 실제로 과거 신한은행의 자리였다는 이곳은 ‘은행 반, 카페 반’의
복합된 구조가 특징이다.
1층에 들어서면 여러 대의 ATM과 함께 화상 상담이 가능한 디지털 데스크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옆으로는 주문 카운터와 좌석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금융 업무와 커피 주문이 같은 공간에서
나란히 이루어지는 풍경이 이 건물의 첫인상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 2층에서는 한층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클래식 스윗 라운지’라 불리는 이 공간은 1980년대 은행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차분하고 조용한 좌석을 배치해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냈다.
전체적으로 보면 기본 콘셉트는 ‘디지털 은행’과 ‘옛 은행’으로 대비되지만, 그 중심에는 카페스윗이 추구하는 느린 소통과 안정적인 일터의 리듬이 놓여 있다. 내부 곳곳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 고객을
위해 후문 출입을 돕겠다”는 문구도 그렇거니와, 건물의 구조와 동선 역시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이용자와 직원의 조건을 함께 고려해 설계됐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공간의 정체성은 주문 방식과 메뉴에도 이어진다. 정릉점에서는 은행 콘셉트를 살려, 실제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 사용하는 전표를 본뜬 주문서를 사용한다. 손님은 이 전표에 메뉴를 적어
주문하고, 직원은 이를 확인해 음료를 준비한다.
달러 모양의 크림을 얹은 ‘뱅크슈페너’, 돼지저금통 모양 컵에 담아 제공하는 ‘초코라떼’는 카페스윗 정릉점의 이색 메뉴다.
메뉴 역시 지점의 특성을 반영한 이색 음료들로 구성돼 있다. 달러 모양의 그림이 얹힌 아인슈페너 ‘뱅크슈페너’, 돼지저금통 모양 컵에 담아 제공하는 초코라떼가 대표적이다. 이렇듯, 카페스윗 정릉점의 건물과 운영 방식은 그래서 하나의 매장이라기보다, 금융과 일상, 그리고 장애인 노동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도록 만든 작은 실험에 가깝다.
그림과 커피향이
머무는 사랑방
카페스윗 정릉점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사랑방’이다. 비교적 넓은 매장은 많은 손님을 품고, 그만큼 단골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 커피를 마시러 한두 번 들렀던 이들은 어느새 수어로 말하며 커피를
주문하고 고마움을 전한다. 직원의 이름을 기억하고, 안부를 묻는 인사가 오가며, 매장 안에는 소박한 ‘대화’의 장면들이 점점 쌓여간다. 그렇게 카페스윗 정릉점은 단순한 일터를 넘어, 동네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머물며 ‘다름’을 표용하는 하나의 거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카페스윗 정릉점의 또 다른 얼굴은 ‘전시장’이다. 매장 한쪽 벽면에는 농인 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돼 있는데,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이 공간을 지나며 그림에 눈길을 주다가 QR코드를 통해
작가의 서사와 작품구매까지 닿도록 의도한 기획이라고 한다. 즉, 이성실 팀장에 따르면 이는 직접적인 판매에 나서기보다, 작가와 고객이 만나는 통로가 되는 역할을 자처하는 일이다.
“분기마다 이어온 게 어느덧 여덟 번의 정기전시와 두 번의 특별전시를 치뤘어요. 개인전으로 20점 가까운 작품을 선보인 작가도 있었죠. 공간 하나를 열어 그림을 걸어두었을 뿐인데, 그것이 누군가에겐 의미 있는 소비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겐 본업의 ‘소득’으로 연결됩니다. 일회성 전시로 손을 놓았던 작가가 다시 붓을 잡고 다음 전시를 준비할 때 마음이 울컥해요. ‘공간’을 열어둔다는 건 그만큼 그분들에게 창작을
지속할 이유와 여유를 건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사랑방 같은 따뜻함이 돋보이는 카페 내부 인테리어
농인 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카페 내부
일터를 만드는
또 하나의 방식
현재 운영 중인 카페스윗 7개 매장 가운데서도 정릉점은 특히 지역사회 안에서 이러한 ‘사랑방’의 역할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분기별 전시뿐 아니라 장애 예술가들의 특별전도 이어지며, 커피 한 잔을 계기로 장애와 예술, 노동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장면은 매일 쌓인다. 이제는 영유아 동반 가족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단골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그림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도 일상이 됐다. 인근 상인회와 협력해 정릉시장 내 상가 이용 시 할인 혜택을 제공하거나, 주변 유관기관들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등 지역과 함께 열린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성실 팀장
카페스윗은 ‘경험’을 파는 카페입니다. 커피를 주문하며 필담 노트를 쓰고, 눈을 마주치고 표정을 읽으며 소리없는 언어를 주고받는 사이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거든요.카페스윗의 이러한 운영 방식은 ‘사내 카페’ 모델로도 인기 만점이에요. 장애인을 고용해 사내에 카페를 운영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매장 운영 방식과 인력 채용, 교육과 관리에 이르기까지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죠. 하나의 매장에서 시작된 실험이 또 다른 일터로 확장되며 장애인고용의 가능성을 넓혀 가는 또 하나의 통로인 셈입니다.
언젠가 ‘장애인식 개선 행사’ 같은 걸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고, 다시 찾아오게 되는 이런 경험의 공간이 꼭 필요해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 차별 없이 함께 일하는 것이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상’인 세상도 꼭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