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때문에 장애인이 더 먼저 일자리를 잃는 거 아닌가요?"
요즘 장애인고용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쏟아지고, 자동화가 빠르게 퍼지면서 만들어진 불안이다. 특히 의 등장은 이 불안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풍경이 보인다. AI가 일자리를 없애기도 하지만, 전혀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간단하다. AI를 누구 기준으로 만드느냐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설계의 기준에 따라 더 심한 장벽이 될 수도, 더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번 호에서는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장애인고용을 이야기한다.
보조기기에서 역량증폭으로: 관점의 전환
그동안 우리는 장애인과 기술을 이야기할 때 늘 '보조'라는 단어를 썼다. 휠체어, 보청기, 점자 단말기처럼 '부족한 걸 채워주는 도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제 논의는 다르다. AI를 '역량 증폭기(Capacity Multiplier)'로 본다. 단순히 불편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 자체를 넓혀준다는 뜻이다. 부족함을 메우는 기술이 아니라, 능력을 함께 구성하는 기술이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 장애인고용에서 결정적이다. 일의 '난이도'가 아니라 '업무의 구조'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은 능력을 함께 구성하는 기술로, 일의 ‘난이도’가 아니라 ‘업무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예전의 사무 환경을 떠올려 보자. 마우스, 메뉴, 화면 중심의 구조. 시각·지체장애인에게는 늘 높은 장벽이었다. 하지만 음성 기반 언어 사용자 인터페이스(LUI) 환경에서는 다르다. 말로 문서를 만들고, 수정하고, 서식을 적용한다. “3번 문단 삭제해 줘”, “표 하나 추가해”하면 끝이다. 이는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다. 사무·행정 직무 접근성 자체의 변화다.
어떤 장애인 단체는 AI 기반 회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영수증을 사진 찍으면 알아서 항목을 인식하고 장부에 기록한다. 반복 업무가 줄어드니, 직원들은 상담이나 권익옹호 같은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일이 쉬워진 게 아니라, 맡을 수 있는 일이 달라진 것이다.
창작의 문도 열린다. 한 발달장애 청년은 AI 작곡 프로그램을 써서 자기가 쓴 가사에 곡을 붙였다. 악기를 다루거나 악보를 읽지 못해도 가능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나도 작곡가가 될 수 있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심어줬다. 디자인, 영상 편집, 번역, 데이터 분석 같은 분야에서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실제로 넓어지고 있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데이터가 쓰이는지, 내 권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비판적 AI 리터러시’다.
그러나 장미빛만은 아니다
물론 AI가 저절로 평등을 만들어주진 않는다. 오히려 잘못 쓰면 차별을 더 정교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과거 채용 데이터에는 이미 편견이 깔려 있다. 장애인을 덜 뽑았던 기록, 낮은 평가를 받았던 기록 말이다. 이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장애인을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면 채용, 배치, 평가가 자동으로 차별이 된다. 또 하나, 접근성 문제도 있다. 좋은 AI 도구는 대부분 비싸다. 유료 구독, 고가 기기에 의존하는 구조가 굳어지면, 돈 있는 일부만 혜택을 보는 새로운 불평등이 생긴다. 기술이 권리가 아니라 상품으로만 남으면, 장애인고용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장애인고용의 격차를 줄이려면 기술이 상품이 아닌 권리가 되어야 한다.
장애인이 AI 설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AI는 시장에만 맡기면 안 된다. 공공 인프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은 AI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걸 ‘공동 설계(Co-design)’라고 부른다. 장애인이 직접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야 진짜 쓸모 있는 기술이 나온다는 뜻이다. “우리를 배제한 결정은 없다.” 장애인은 사용자가 아니라 설계의 주체여야 한다. 기기 사용법만 가르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AI가 어떻게 판단하고, 그 판단이 어떤 권리문제로 이어지는지 이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AI 도구 사용법’이 아니다.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데이터가 쓰이는지, 내 권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비판적 AI 리터러시’가 장애인 당사자에게도 분명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던지는 과제
이제 질문은 해외에 있지 않다.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다. AI 기반 장애인고용 리터러시를 구상해야 한다. 단순한 시범사업이 아닌 공공 인프라로 다뤄야 한다. 일부 기관의 혁신 사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특히 장애인고용공단은 기금 재원을 투입해서라도 AI 리터러시와 장애인고용을 밀접하게 연결하는 아젠다를 정립하고, 그에 맞는 역량 증폭 기능을 활용하여 새로운 직무를 개발하고 빠르게 전파해야 한다.
장애인고용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의 시험대
AI 시대 장애인고용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노동 기준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장애인과 함께 설계된 AI 기술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더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든다. AI를 시장에만 맡기면 수익성 높은 곳에만 투자되고, 장애인 접근성은 후순위로 밀린다. 하지만 공공 인프라로 만들고, 장애인을 설계 주체로 참여시킨다면 AI 시대 장애인은 더 이상 사회적 배제의 대상이거나 시혜적 조치에 의존해야 할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지금 우리 사회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이 지점이 장애인고용공단 기금 재원을 AI 접근성 개발에 투입하고, 당사자 참여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기술은 가장 먼저 사회적 약자, 특히 장애인을 더 멀리 밀어낼지 모른다.
지금 세계는 묻고 있다. 새로운 기술 AI로 지금까지와 같이 장애인의 한계를 관리하고 보조하는 수준이 머물 것인가, 아니면 가능성을 확장하여 ‘장애인고용을 위한 AI 리터러시와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인가. 적어도 장애인고용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 AI 기술은 좋은 기술이라 말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보편적 기본사회(Basic Soceity)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이 선택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