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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하루
장애인의 일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코너

기술 기업이 만든 또 하나의 일터

장애인 오케스트라 ‘네패스루아’

‘조현(調絃)’이란 느슨해진 줄을 다시 팽팽히 당겨 본래의 소리를 되찾는 과정을 의미한다. 삶도 이와 같다. 흐트러진 마음의 방향을 가다듬을 때 우리는 다시 자기만의 울림을 회복한다. 잘 조율된 현악기가 언제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준비를 하듯, 삶 역시 조율의 순간을 거치며 다시 빛날 채비를 한다. 의 연습 풍경은 바로 그런 ‘조현의 시간’에 가까웠다. 서로의 음을 듣고 리듬을 맞추며 하나의 음악으로 모여 가는 과정. 이곳에서 음악은 연주 이전에, 함께 삶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루아의 모(母) 기관 ‘네패스(Nepes)’

반도체는 마치 사람의 신경계처럼 보이지 않는 곳까지 연결되고 복잡하게 작동한다.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연결’의 마지막 단계, 곧 칩이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한 조립과 마감 공정에는 기술적 난도가 높고 경쟁력 차별이 큰 영역이 존재한다. 네패스는 칩의 완성을 책임지는 핵심 영역의 중심에서 경쟁력을 만들어 온, 국내 대표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전문 기업이다. 박상규 본부장에게 네패스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0년 설립된 네패스는 단순한 부품 제조를 넘어 웨이퍼 레벨 패키징(WLP), 팬아웃 패키징, 전자재료, AI 반도체 솔루션 등 첨단 기술과 연결된 후공정 전반을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입니다. 단순히 반도체를 ‘완성’한다기보다는, 글로벌 산업 생태계가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기술과 수요를 잇는 매개체, 즉 보이지 않는 혁신을 연결하는 기업이라 할 수 있어요.”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기술 기업 네패스의 일터 한편에서는, 조금 다른 리듬의 협업이 이어진다. 생산라인도, 연구실도 아닌 연습실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서로의 호흡이다. 정밀한 공정과 수치로 움직이는 산업의 중심에서, 음악을 매개로 한 또 다른 협업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코스닥 상장 기업인 네패스는 오랫동안 ‘음악경영’을 기업문화의 한 축으로 실천해 왔다고 한다. 음악을 단순한 문화 활동이 아니라, 구성원의 감성을 깨우고 조직의 결을 부드럽게 만드는 경영 요소로 바라본 것. 따라서 네패스의 예술 기반 일자리는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기존에 축적되어 온 음악경영 철학이 장애인고용과 만나 자연스럽게 확장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네패스 안에서 음악은 이미 조직을 연결하고, 존중과 감사를 표현하는 매개인 것이다.

1990년 설립된 네패스는 단순한 부품 제조를 넘어, 첨단 기술과 연결된 후공정 전반을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네패스루아 로고

1990년 설립된 네패스는 단순한 부품 제조를 넘어, 첨단 기술과 연결된 후공정 전반을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네패스루아(Nepes Rua), 기술과 예술이 만난 ESG 실험

2022년 11월 3일, 네패스는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사내 오케스트라 ‘네패스루아’의 창단을 공식화했다. “기뻐 외치다”라는 뜻의 이름처럼, 네패스루아는 음악을 통해 동료와 지역사회를 잇고, 더 넓은 사회 통합으로 나아가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장애인을 배려의 대상이 아닌 기업문화의 한 축을 이루는 동료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네패스루아의 출발점이다. 이를 통해 네패스는 장애인고용을 사회적 의무를 넘어 기업문화의 확장과 가치 실현의 영역으로 확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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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전원이 정식 직원으로 근무하는 네패스루아에서는 김남진 예술감독이 지휘를 맡고 있다.

네패스 ESG 보고서에 따르면 루아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아니다. 충북 최초의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이자, 단원 전원이 정식 직원으로 근무하는 ‘일터 기반 예술 공동체’다. 2023년 전국발달장애인 음악축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음악적 역량을 입증했고, 2024년에는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첫 유료 공연을 열며 전문 연주자로서의 입지도 다져 나가고 있다.
박 본부장은 이와 관련, “네패스루아는 장애 예술가를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동료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했다”면서 “기술 기업의 일터 안에 음악이라는 언어를 심고, 그 언어로 사회와 소통하는 과정 자체가 네패스에게는 중요한 실험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네패스가 추구하는 ESG는 일회성 활동이 아니라, 사람과 공동체를 함께 키워 가는 지속가능한 방식이다”면서 “루아는 그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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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패스루아는 충북 최초의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이자, 모든 단원이 정직원으로 근무하는 ‘일터 기반 예술 공동체’다.

‘지원’ 아닌 ‘일터’,
네패스루아의 방향을 잡다

초기에는 네패스루아의 단원 대부분이 악기를 다뤄 본 경험 없이 입단했다고 한다. 선발 역시 연주 실력보다는 음악에 대한 의지와 가능성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입사 후에는 악보 읽기와 기본 자세, 소리내는 방법까지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시간이 이어졌다. 일반 연주자에 비해 성장 속도는 더딜 수 있지만, 반복 연습과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점차 서로의 소리를 듣고 맞추며 합주를 완성해 가는 단계를 밟았다. 그런 시간의 축적이 있었기에, 처음에는 30분 이상 자리에 앉아 집중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단원들이 이제는 지휘자의 손짓만으로 연주의 흐름을 이해하고 스스로 연습을 준비하며 무대를 향해 나아간다.
공연 경험이 쌓이면서 자기 관리와 일상의 습관을 스스로 정돈하며, 무대에 서는 직장인으로서의 태도를 갖추는 변화도 이어졌다. 충동적이던 행동은 줄어들고, 동료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 가운데 관계 맺는 방식 역시 안정됐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연습실로 출근해 개인 연습과 합주, 파트 연습, 이론과 표현을 다듬는 교육과정을 이어 가는 하루는 이제 자연스러운 삶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고, 공연을 앞두고는 동선과 무대 매너, 곡 해석까지 세밀하게 점검하며 준비에 집중한다. 그럴 때면 평소 차분하고 반복적인 호흡 위에서 흐르던 연습실은 공연 직전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서로의 음을 맞추며 하나의 음악으로 수렴하는 시간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 함께 일하고 성장하는 일터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사랑방 같은 따뜻함이 돋보이는 카페 내부 인테리어
농인 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카페 내부

창단 초기 네패스루아의 신입 단원들은 악보 읽기와 기본 자세부터 배워나갔다고 한다.

한 기업 안에 자리 잡은 포용의 무대

이러한 루아의 운영 방식은 기존의 의무 고용 중심 장애인고용 모델과는 결을 달리 한다. 단순히 고용 비율을 채우기 위한 배치가 아니라, 장애 예술인의 역량을 기반으로 한 ‘예술 직무’를 정식 일자리로 설계했다는 점에서다. 이는 보호적 고용을 넘어 전문성과 역할을 전제로 한 모델이며, 기업 내부에서도 사회공헌을 넘어 조직 문화와 브랜드 가치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공연과 활동을 통해 임직원은 장애 예술인을 동료로 인식하게 되었고, 관객과 지역사회 역시 그들을 ‘지원 대상’이 아닌 ‘연주자’로 만나며 일터에 대한 개념을 확장해 간다.
앞으로 네패스 루아는 안정적인 연주 환경과 교육 체계를 바탕으로 더 많은 무대와 관객을 만나며 활동 영역을 넓혀 갈 계획이다. 장애 예술인이 기업 안에서 전문 직무를 수행하며 성장하는 구조를 지속 가능한 모델로 남기려는 시도는, 장애인고용의 또 다른 방향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입사 후의 단원들은 전공 지도강사와 함께 파트별 연습과 합주를 병행하며 근무와 훈련을 이어가요. 연주 기술을 높이는 과정과 함께 공연 준비를 통해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이해하는 훈련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죠. 결국 네패스루아의 성장은 장애인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배우는, 역할 중심의 ‘구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본부장에 따르면, 현재 네패스는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사내 카페와 편의점 운영을 통해 장애인을 위한 일터를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매장 운영과 서비스라는 명확한 직무를 기반으로 조직 안에서 기능하며 일정과 책임을 공유하는 구조라고. 장애인고용을 단순한 의무 이행이 아닌 조직 운영의 일부로 통합해 온 네패스의 이러한 시도는, 기업 안에서 포용의 방식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인 셈이다.

사랑방 같은 따뜻함이 돋보이는 카페 내부 인테리어
농인 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카페 내부

현재 네패스는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사내 카페와 편의점 운영을 통해 장애인을 위한 일터를 마련하고 있다

미니 인터뷰
박상규 본부장

박상규 본부장
예전에 〈삶으로서의 일〉이라는 책을 읽은 적 있습니다. 일과 삶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가 특히 인상적이었죠. 의미 있는 ‘일’은 결국 의미 있는 ‘삶’으로 이어진다는 말이잖아요. 네패스루아야말로 그 가치를 현실에서 실현해 가는 아름다운 도구이자 소중한 통로라는 생각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실제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본 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 또한 “더 편안해 보이고 웃음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요.
‘기뻐 외치다’라는 뜻을 지닌 이름처럼, 네패스루아를 통해 장애인들의 일과 삶이 전하는 감동과 도전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보다 먼저는 우리 구성원과 가족들, 공연을 보고 커피를 마시며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에게 따뜻한 웃음이 더 크게, 더 멀리 퍼져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