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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하루
장애인의 일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코너

가능성을 직업과 삶으로

자폐인 디자이너의 일터 ‘오티스타’

이름은 하나의 상징과 같다. 때로 한 사람 존재는 그 몇 글자로 설명되고, 한 기관의 방향 역시 그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 이름이 품은 의미와 실제 모습 사이 괴리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존재를 온전히 존중할 수 있다. 자폐인과 함께 일하는 사회적 기업의 이름 ‘오티스타’는 ‘자폐인의 특별한 재능’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격의 없는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얼굴들, 이들의 손끝에서 순수하고도 감각적인 디자인이 탄생한다. 이곳을 이끄는 이소현 대표를 만나, 오티스타의 서사를 청해 들었다.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출발: 결함 아닌 가능성의 이름으로

흔히 자폐인은 ‘지원이 필요한 존재’로 먼저 규정된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뛰어난 재능으로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많은 자폐인은 시각적 인지와 표현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데, 이는 종종 예술과 디자인 영역에서 발현된다고 한다. 다만 문제는 그 재능이 직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자폐인은 교육과정이 끝나면 또다시 사회와 단절되기 쉽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 회사가 오티스타다. 특수교육, 특히 자폐 영역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이소현 대표(전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자폐인의 특성을 결함 아닌 강점으로 바라보고 그 가능성을 직업과 연결해 실제 일터 안에서 구현해 왔다. 이는 이 대표의 설명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자폐인들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직장다운 직장’을 만나기 어려워요. 각자 재능과 강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나 기회는 충분하지 않죠.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회화’라면 그 마지막 단계는 반드시 ‘사회 속에서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한 ‘진짜 직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일종의 연구 프로젝트로 출발한 이 시도는 2012년 오티스타 설립 이후, 자폐인의 재능이 디자인이라는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꾸준히 증명해 왔다. 자폐를 뜻하는 ‘Autism’, 특별한 재능을 의미하는 ‘Talents’, 그리고 그 가능성이 삶 속에서 빛나기를 바라는 ‘Star’의 의미가 겹쳐진 이름을 통해서다. 그 이름이 지닌 의미처럼 오티스타는 오늘도 직업의 현장에서 당당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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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스타 자폐인 디자이너의 그림으로 기획·제작한 상품의 갤러리

성장: 경제적 수단 넘어 사회적 관계로

‘오티스타’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이곳 직원들의 섬세한 감각과 집중이 깃든 제품은 오히려 익숙할 수도 있다. 현대백화점과 삼성전자 등 대기업을 비롯해 한국관광공사, 국가유산진흥원 같은 공공기관, LG생활건강·아이소이 등 화장품 브랜드까지 다양한 협업으로 내놓은 오티스타 디자이너들의 작품은 생각보다 친숙하다. 이 대표의 말에 따르면, 이마트24에서 판매되는 ‘한국의집’ 약과와 올리브영에서 만날 수 있는 ‘독도 토너’ 패키지 역시 이들의 손을 거쳤다. 또 한때 교보문고를 찾을 때마다 들르는 핫트랙스 매장을 통해서도 어쩌면 오티스타의 제품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해 왔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이소현 대표는 자폐인의 시각적 인지와 표현 방식이 고스란히 결과물에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많은 분들이 알아보실 것 같습니다. 선은 둥글고, 색은 선명하죠. 분위기가 밝아서 덩달아 맑아지는 느낌일 거예요. 직원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시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속도가 빠른 자폐인들은 본 것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도 강점을 보여요. 오티스타가 주목한 자폐인들의 직업적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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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선과 선명한 선의 오티스타 다자인으로 제작된 상품

오티스타의 하루는 여느 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게 시작된다.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해 서로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전날 마무리하지 못한 작업을 이어 하거나 새로 전달된 업무를 확인한다. 디자인실에서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흐름을 함께 점검하고 작업을 나누며, 디자이너들은 패턴과 일러스트, 제품 디자인을 각자의 리듬에 맞춰 차근차근 완성해 간다. 점심시간이 되면 함께 식사를 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오후 업무를 이어간다. 일하는 틈틈이 간식을 나누거나 가벼운 산책으로 머리를 식히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하루 속에 스며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 직장 생활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의견을 나누며 디자인 방향을 정하고, 수정과 피드백을 거쳐 결과물을 완성하는 완전히 사회화된 구조. 즉 오티스타의 업무 방식은 훈련이나 체험이 아닌, 온전히 사회 속에서 작동하며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고 사회와 연결되는 경험이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적 있어요. 그때 한 직원의 작업을 본 PD가 깜짝 놀라 ‘회사에 와서 일하는 게 어떠냐’는 즉석 인터뷰를 시도했죠. 그랬더니 ‘스스로 위대하다고 느낀다’고 대답하더군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표현이었어요. 그 말을 듣는데 정말 눈물이 났고, 오티스타의 지향점이 바로 이러한 변화라는 사실에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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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이나 체험이 아닌, 온전히 사회 속에서 작동하며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고 사회와 연결되는 오티스타의 디자이너들

확장: 일터 넘어 삶터로

자폐인에게 ‘일’은 단순한 활동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경제적 자립은 물론, 사회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은 생계를 넘어 자존감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시장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이 충분히 펼쳐지기 어렵다. 자폐인의 특성을 고려한 일자리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많은 경우 보호나 지원의 틀 안에 머무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오티스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방식을 택한다.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기보다, 자폐인 디자이너 각자의 작업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 가지 디자인을 대량 생산하기보다 여러 디자이너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방식을 선택하고, 제품의 품질 역시 일반 디자인 브랜드와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한다. 다만 이소현 대표는 그만큼 가격 경쟁이나 마진 구조에서는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운영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 ‘두 번 나눔 프로젝트’예요. 기업이나 개인이 오티스타의 제품을 구매한 뒤, 이를 필요한 기관에 기부하는 방식이죠. 한 번의 소비로 자폐인 디자이너의 일자리를 지탱하는 것이 첫 번째 나눔이라면, 구매한 제품을 기관이나 시설에 전달하는 것이 두 번째 나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도움을 기다리는 곳이 많거든요.”
결국 이곳 디자이너들에게 오티스타는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이곳에서의 일은 사람과 사회를 만나고 이어지는 과정을 의미하며, 자존감과 삶의 반경을 넓혀 가는 경험에 가깝다. 처음 회사에 왔을 때는 낯설고 조심스럽던 이들도 이제 스스로 출퇴근을 하고, 주말이면 동료들과 약속을 잡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부연이다.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이 조금씩 넓어지는 과정, 더 나아가 그 변화를 가족들까지 함께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 오티스타가 지난 시간 동안 확인해 온 가장 의미 있는 성장인 것이다.

사랑방 같은 따뜻함이 돋보이는 카페 내부 인테리어
농인 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카페 내부

오티스타를 통해 사람과 사회를 만나고, 자존감과 삶의 반경을 넓혀 가는 디자이너들

도약: 사례를 넘어 하나의 모델로

오티스타의 시작은 단순한 기업 설립이 아니었다. 자폐인의 재능이 보호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하나의 가능성으로 자리 잡았다.
오티스타는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은 현재의 운영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내실화’다. 동시에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제품의 영역과 표현 방식 역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해외 진출도 중요한 과제라고 한다. 복지의 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 그 자체로 사회와 연결되는 구조, 그 당연한 방식을 세계 속에 뿌리내리겠다는 구상이다. 복지 중심이 아닌 ‘일’ 자체로 연결되는 구조, 그 당연한 방식을 세계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는, 세계를 향해 천천히 문을 열고 있다.

미니 인터뷰
이소현 대표
이소현 대표

오티스타는 한마디로 ‘가능성을 증명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어요. 자폐인과 그들의 재능이 보호나 지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목적으로 설립됐으니까요. 자폐인은 한국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것이 오티스타가 증명해 온 가능성을 더 많은 나라와 더 많은 방식으로 이어가야 할 이유입니다.
실제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해외 학술지에 관련 연구를 발표하고 국제 학회에 참여하며 이 모델을 꾸준히 소개해 왔어요. 특히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지사 설립과 디자인 스쿨 운영을 검토하며, 오티스타의 고용 모델을 보다 자연스러운 직업 환경의 형태로 확산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요. 어디에서든, 자폐인에게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은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언젠가는 ‘장애인 고용’이라는 말이 특별한 사례로 이야기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