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20일이면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 그러나 이 날의 의미와 기원, 그리고 지금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익숙한 기념을 넘어, 장애인의 날이 지닌 의미와 변화의 방향을 살펴본다.
글. 이정주 센터장(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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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행사에 가려진 기원: 시작과 의미
해마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 4월 20일이면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어김없이 열린다. 복지부와 17개 광역시, 226개 기초단체는 비슷한 현수막을 걸고, 유사한 축사를 하고, 상장과 꽃다발을 나눠주며 큰 박수를 이끌어낸다. 행사의 백미는 단연코 기념품이다. 물론 기념품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받을 수 있다.
참으로 낯설지 않은 풍경의 장애인의 날은 어떻게 법정 기념일이 되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 4월 20일일까.
흥미롭게도 장애인의 날을 따로 정해 기념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더구나 날짜가 4월 20일인 경우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우리도 처음부터 이날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1981년 유엔의 권고에 따라 세계장애인의 날(12월 3일)1)을 법정기념일로 삼으려 했지만,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 대신 다른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1972년부터 민간 단체를 중심으로 4월 20일 ‘재활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1980년대에는 ‘장애인재활대회’로 이어졌다. 정부는 이 오랜 흐름을 받아들였다. 1991년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의 날’이 명시되면서, 결국 4월 20일은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그래서 1991년 기념식은 ‘제1회’가 아니라 ‘제11회’였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날이 아니라, 이미 이어져 온 시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장애인의 날은 조금 특별하다. 법이 먼저 만든 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시작된 날이기 때문이다. 4월 20일은 1972년부터 이어진 장애인계의 시간과 연대가 축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초기 시민단체는 왜 하필 이 날짜를 선택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4월은 봄이 시작되는 달이고, 20일 무렵은 가장 따뜻해 바깥 활동이 가능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긴 겨울 동안 집 안에 머물러야 했던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날, 그날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4월 20일은 만들어졌다. 따듯한 선택이었고, 분명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
1) 세계장애인의 날은 1981년 12월3일 제37차 유엔 총회에서 ‘장애인에 관한 세계 행동 계획’이 채택된 날이다. 이 독트린은 전 세계 장애인복지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아태장애인 10년까지 이어지며 우리나라를 비롯. 아시아 지역 국가에서도 장애인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천착하기 시작한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념 중심의 한국, 구조 중심의 해외
따듯하다는 말은 때로는 현실을 미루는 말로도 다가온다. 따듯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랄까. 서구식 복지강국의 장애인복지에서는 따듯한 감성을 찾기는 어렵다. 우리가 어느 봄날 하루를 정해 따듯한 기념품을 나눠줄 때, 다른 나라는 장애인에게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주려고 사회적 구조를 만드는데 머리를 썼다.
영국, 독일, 스웨덴, 뉴질랜드 등은 우리나라처럼 고정된 ‘장애인의 날’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장애가 있는 시민(PWD)’를 위해 교통, 교육, 노동, 주거 등 삶터에서 장애로 인해 불편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 주는 방식에 더 관심을 두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버스와 지하철의 접근성이 건축, 교통, 도로 등 사회 인프라를 조성할 때 모두 기본 설계에 포함되어 있지만,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이동권의 날”을 정하고 있지는 않다.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을 고려하는 일은 특별한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일상의 기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모든 장애인이 일할 수 있도록 의무고용제도를 강하게 법률로 정하고, 일할 수 있는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사회구조를 갖추고 있다. 영국의 경우 ‘Disability History Month’라고 마치 특정 기간을 정한 듯싶지만, 이달은 기념식 같은 행사가 없다. 장애인 관련 교육과 정책을 점검하는 기간으로 운영된다. 뉴질랜드는 또 다른 방식이다. 한국처럼 하나의 장애인의 날에 집중하지도, 유럽처럼 기념이 완전하게 없지도 않다. 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의 유형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이슈를 부각하는 일정으로 활용한다. 4월 2일 세계 자폐인의 날에는 자폐 스펙트럼과 관련된 교육과 지원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3월 21일 다운증후군의 날에는 고용과 사회참여 문제가 강조된다. 접근성 인식의 날에는 공공시설과 디지털 환경의 접근성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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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마음으로, 권리의 ‘일상’을 향해
한국, 유럽, 뉴질랜드의 사례를 보며, 어느 방식이 좋고, 나쁘고 평가는 유보하고 싶다. 서로 다른 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차이 속에서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더 나은 장애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더 소중하리라 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장애인 복지는 장애인 당사자의 어려움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Human Rights)가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도 주지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장애인을 위한 아름다운 하루도 중요하지만 그날을 포함하여 날마다 권리가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사회구조가 설계되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법률에 장애인의 날 하루를 기념하고도 있지만 장애인의 권리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20여 개 법률도 두고 있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국가이다. 다만 다양하게 정비된 법률의 양에 비해 실행하는 사회구조는 아직 자리 잡고 있지 못하고 있어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어느 봄날의 기념일, 기념품, 상장과 꽃다발의 향연도 여전히 반갑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지금 국회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올해 장애인의 날은 따듯한 우리 국민의 감성과 권리가 보장되는 대한민국 장애인복지의 첫날이 되길 바라본다.
사족 같지만, 12월3일 겨울 초입이 추운 세계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생동하는 봄날 장애인이 가장 활동하기 좋은 날, 4월 20일을 1972년 재활의 날을 정해준 로맨틱한 장애인복지 분야 선배님들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4월 20일은 참으로 따듯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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