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오는 6월 3일 전국에서 치러진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를 선출하는 이번 선거는 시민이 지역의 정책과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민주적 절차다. 그러나 모든 유권자에게 선거 참여의 과정이 동일하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장애인 유권자의 경우 투표소 접근, 선거 정보 이해, 투표 절차 등 여러 단계에서 장벽을 경험한다. 제도적으로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실제 선거 현장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문턱이 남아 있다.
글. 편집실
민주주의 참여와 장애인 투표권의 현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참여 방식이며, 투표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고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직접적인 참여 행위다. 다만 이 과정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에게 투표는 ‘정보 접근’과 ‘이동’ 등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하는 절차와 같다. 투표권이 보장돼 있음에도 실제 참여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여전히 작지 않은 문턱이 존재하는 이유다.
최근 이러한 문제, 즉 장애인이 투표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차별적 대우가 다시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섰다.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하면서다. 이번 권고안은 ‘점자 선거공보 면수 제한 폐지’, ‘선거방송 수어통역 확대’, ‘발달장애인을 위한 투표 보조 지원’ 등 선거 정보 접근성과 투표 절차 전반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참정권은 시민의 지위를 확인하는 기본적 권리이지만, 장애인 유권자들은 선거 때마다 투표소 접근성, 선거 정보의 이해 가능성, 기표 과정에서의 지원 부족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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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의 이면,
‘보이지 않는 장벽’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완성은 법 조항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구나 실제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비로소 권리는 현실화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선거권은 과연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실현되고 있는가?”
참정권은 시민이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핵심적 기본권이며, 민주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확인하는 중요한 권리다. 그리고 ‘장애인 참정권’은 이러한 권리가 장애 여부와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보장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장애인 참정권이란 장애인이 선거 과정에서 투표권과 피선거권 등 정치 참여 권리를 다른 시민과 동등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 권리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정당한 편의 제공’의 관점에서 장애인의 이러한 권리 보장을 제도화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7조 제2항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시설과 설비를 마련하고, 선거 정보 전달과 홍보, 장애 유형과 정도에 적합한 기표 방법, 선거 보조기구의 개발·보급, 보조 인력 배치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투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리적·정보적 장벽을 해소하고 장애인의 실질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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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선거 현장에서 장애인 유권자에게 필요한 요소로는 투표소 접근성 확보, 투표 보조 지원, 선거 정보 접근성 개선 등이 꼽힌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이동 동선 확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자료,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과 수어 통역,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공약 설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이러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법과 제도가 요구하는 권리 보장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여러 한계가 지적된다. 실제로 일부 투표소가 휠체어 접근이 어려운 구조로 운영되거나, 발달장애인이 투표 보조 지원을 받지 못해 투표를 포기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또한 이해하기 쉬운 선거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장애인의 참정권 행사가 제한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투표 의사를 밝혔음에도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해 사실상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발달장애인의 사례는 우리 사회 장애인 참정권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장애인 참정권은 단순히 투표 참여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국민’이 사회의 정책과 방향을 함께 결정하는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투표소의 문턱,
장애인 참정권의 현실
실제 선거 현장에서 가장 먼저 지적되는 문제는 물리적 접근성이다. 일부 투표소는 휠체어 이동이 어려운 동선이나 건물 구조로 인해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이동 과정에서 겪는 불편은 투표 참여 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정보 접근성 역시 중요한 과제다. 선거 공약과 후보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거나, 점자 자료와 수어 통역, 쉬운 설명 자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결국 장애인 유권자는 정책을 비교하고 판단할 기회조차 충분히 갖기 어려운 현실이다.
투표 절차에서도 어려움이 발생한다. 투표 보조가 필요한 유권자는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밀투표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러한 한계는 특히 발달장애인 유권자에게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실제 선거 현장에서 투표 보조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해 참정권이 침해됐다는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2022년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당시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이 사회복지사와 함께 투표소를 찾았으나, 투표사무원이 동반 입장을 허용하지 않아 혼자 기표소에 들어가야 했던 것. 이후 당사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했고, 그 결과 법원은 발달장애인의 투표 보조를 거부한 조치가 차별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 역시 발달장애인의 인지적·심리적 특성상 투표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할 수 있으며, 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차별적 조치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장애인 참정권 보장이 단순한 투표소 접근 문제를 넘어, 투표 과정 전반에서 필요한 지원과 편의가 제대로 제공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례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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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권, 모두의 권리가 되기 위한 조건
앞선 사례가 보여주듯 장애인 참정권의 문제는 특정 집단의 편의를 넘어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과 직결된다. 장애인 참정권은 특별한 혜택으로 부여되는 권리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민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다. 누구나 차별 없이 투표소에 접근하고, 정책 정보를 이해하며,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선거를 ‘민주주의의 공정한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경사로 하나, 이해하기 쉬운 설명 한 장, 곁에서 돕는 손길 하나는 단순한 편의를 넘어 시민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임산부, 일시적으로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 등 더 많은 시민에게 열린 참여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던 장벽이 하나하나 사라질 때 장애인의 참정권 역시 비로소 온전히 보장될 것이다.
- 김나연, 「발달장애인은 투표 보조인 못 둔다?… 선거법 조항 위헌성 다툰다」, 경향신문, 2024.10.20.
- 박진홍,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해야" 장애인 차별구제 항소심서 승소」, 연합뉴스, 2025.1.16.
- 김소영, 「또 발달장애인 참정권 침해 “‘투표보조’ 되는 투표소 골라 가라는 건가”」, 비마이너, 2025.05.29.
- 김성준,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거부, 법원 간접차별 인정」, 제민일보, 2025.05.30.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같은 장애, 다른 대우… 발달장애인 투표는 복불복?」, 2025.6.5.
- 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장애인 참정권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2026.2.10.
- Lee Hae-rin, Hurdles remain for voters with disabilities in Korea, The Korea Times, 2025.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