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가족에게 돌봄은 사랑이지만, 그 사랑이 오롯이 가족의 희생 위에만 놓여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해외 여러 나라가 가족의 휴식까지 돌봄의 일부로 보장하는 가운데, 이제 우리 사회도 ‘가족이 쉴 권리’를 제도의 언어로 고민해야 할 때다. 이에, 해외의 ‘Respite Care(휴양 돌봄)’ 사례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돌봄의 빈틈을 짚어본다.
글. 이정주 센터장(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돌봄의 무게와 휴식의 당위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임수정(45세, 여) 씨는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온전한 휴가를 다녀오지 못했다. 일상은 늘 돌봄의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치료실에 들어가 있거나 주간보호시설에 가 있는 동안 잠깐의 여유조차 죄책감으로 마음 편히 꽃구경도 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휴식이란 먼 나라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비단 임수정 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가족의 돌봄은 여전히 오롯이 가족이 떠안아야 할 사적 책임이다.
그러나 해외에는 이미 장애인 가족이 일정 기간 아이를 전문기관이나 위탁가정에 맡기고 온전한 휴가를 떠날 수 있는 ‘Respite Care(휴양 돌봄)’ 제도가 법적 권리로 보장된다. 돌봄의 주 대상자인 가족, 즉 부모와 형제자매 등 주 돌봄자는 지방정부의 돌봄자 욕구평가(Carer’s Assessment)’를 통해 휴식, 여행, 심리회복 프로그램 등을 지원받는다.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도 복지의 주체로 인정받는 것이다.
우리나라, 휴양은 없고 단기보호만 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가족의 휴양을 지원하는 제도를 찾아보면, 2015년 제정된 발달장애인권리보장및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 제30조 ‘가족지원’의 일환으로 가족휴식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 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투데이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망스럽다. 발달장애인 가족휴식지원사업은 연 1회, 최대 2박3일 수준에서 40~50만 원까지 여행 경비의 일부를 보조해주는 데 그친다.
해당기간에 발달장애인을 함께 돌봐줄 전문인력은 충분하지 않으며, 이용절차도 복잡하고 무엇보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그러다 보니 실제 이 정도의 지원이라도 받는 가족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 외에도 장기요양보험 내 단기보호 서비스와 긴급돌봄이 있으나 이도 65세 이상 고령장애인이 대상이다 보니 한참 돌봄이 필요한 발달장애인에게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또한 가능하더라도 가족이 긴급한 사유로 잠시 자리를 비울 때 돌봐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 긴급대응형 서비스이다. 가족이 쉰다는 개념은 없다. 돌봄 공백을 메우는 것과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임에도, 한국의 제도는 여전히 두 가지를 구별하지 않는다.
장애인가족의 돌봄은 국가가 아닌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우리나라 복지제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영국의 Respite Care: 장애인 가족도 권리의 주체
반면, 영국에서는 Respite Care는 선택적 복지가 아니라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다. 2014년 제정된 돌봄법(Care Act2014)은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의 욕구를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지원할 의무를 지방정부에 부과했다. 장애인 본인의 욕구와는 별개로, 가족돌봄자도 지원대상이 되는 것이다.
영국의 레스핏 케어는 크게 네 가지로 형태로 제공된다. 첫재, 휴양형 돌봄(Respite holiday)으로 장애인과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되 현지에서 24시간 전문돌봄이 제공된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돌봄이 포함된 휴가이다. 둘째, 단기보호 센터 입소로 장애인을 일정 기간 보호센터에 위탁하고 가족은 완전한 휴식을 취한다. 셋째, 데이케어 및 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낮 동안 돌봄을 제공한다. 넷째, 가족돌봄자를 위한 심리지원, 교육, 여가 활동 등 돌봄자 독립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 모든 서비스는 욕구평가를 통해 맞춤형으로 연결되며, 현금지원과 서비스 지원을 병행해 가족이 스스로 필요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제도의 철학 자체가 가족의 삶의 질을 목표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호출 버튼이 있는 화장실 Ⓒ 빅 아이
휠체어 이용이 편리한 서양식 객실 Ⓒ 빅 아이
왜 진짜 휴양이 필요한가
장애인 가족돌봄자의 소진(burnout)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와 가족이 지치면 본질적으로 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질도 함께 무너진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부모의 우울증 유병률은 일반 인구의 2~3배에 달하며, 상당수가 사회적 고립 속에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지치지 않도록 예방하는 개입’이 필요하다. Respite Care는 그 자체로 가족의 정신건강을 보호하고 장기적으로 공공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영국 연구들은 단기휴양 서비스를 이용한 돌봄 가족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정신건강 지표가 유의미하게 높고, 장애인 당사자를 시설에 보내는 비율이 낮다는 점을 일관되게 보고하고 있다. 가족이 쉬어야 오래 돌볼 수 있는 것이다. 돌봄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지속 가능한 돌봄 체계는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의 삶도 보장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티하우스 바라봄(Digital Detox Zone) Ⓒ 가평우리마을
마을산책 Ⓒ 가평우리마을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첫째, 가족휴양권을 제도화해야 한다. 발달장애인법의 가족휴식지원 규정을 실질적인 권리로 강화해야 한다. 연간 2박3일의 경비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돌봄인력이 함께 지원되는 패키지형 서비스로 전환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장애유형과 관계없이 모든 장애인 가족이 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 대상도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단기보호를 휴양형 서비스를 전환해야 한다. 현재의 단기보호 서비스는 긴급돌봄 공백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가족의 계획적 휴식을 위한 서비스로 설계를 바꿔야 한다. 영국처럼 위탁가정(SBFC; Short Break Foster Carers) 제도나 특수 휴양시설 네트워크1)를 단계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가족돌봄자를 독립적인 복지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한국복지제도에서 가족돌봄자는 여전히 비공식 노동자로만 취급된다. 영국의 돌봄욕구평가처럼 돌봄자 본인의 필요와 욕구를 별도로 평가하고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돌봄자를 복지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정책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넷째, 지역기반의 맞춤 서비스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중앙에서 일률적으로 설계된 제도는 지역현실을 반영하기 어렵다. 지방정부와 민간 기관이 협력해 지역 단위의 다양한 휴양 돌봄 서비스를 개발하고, 가족이 선택할 수 있도록 바우처 방식과 직접 서비스 방식을 함께 운영해야 한다.
1) 영국의 대표적인 특수 휴양시설로 ‘Revitalise House’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펜데믹 이후 경영난으로 잠정 휴지기에 들어가 있다.
한국형 휴양 돌봄, 이제 시작할 때
장애인 가족이 쉬는 것은 사치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돌봄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한국사회가 장애인복지를 논할 때, 이제는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그 곁에서 삶을 함께 꾸려가는 가족의 삶도 함께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Respite Care, 가족이 온전히 쉬고, 충전하고, 다시 돌봄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구조, 이제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다음 과제이다.
가평우리마을
충남장애인가족힐링센터 조감도
다행히 우리나라는 올 3월부터 ‘돌봄통합지원법’2)이 시행되면서 가족돌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공공에서는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 ‘장애인가족힐링센터’가 2027년 2월 개관을 앞두고 한참 공사 중이고, 민간에서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가평우리마을’이 장애인가족의 휴양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일본 오사카의 ‘빅아이(Big-i)’나 고베의 ‘행복촌’과 같은 공간을 넘어, 장애인 가족을 위한 돌봄이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 의료·요양 등 지역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2024.3 제정, 2026.3 시행)
‘고베행복촌(시아와세노무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