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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하루
장애인의 일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코너

행복을 모아 ‘함께하는 삶’을 굽는 일터

SK하이닉스의 장애인표준사업장 ‘행복모아’

행복모아는 SK하이닉스의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이다. 2016년 설립 이래, 형식적·일시적 지원이 아닌, ‘오랫동안 다닐 수 있는 안정적인 일터’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다. 방진복 제조·세탁을 담당하는 청주사업장과 제과·제빵 사업을 운영하는 이천사업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두 곳 모두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가치 위에서 운영된다. 그중 고소한 빵 냄새와 직원들의 여유 있는 표정이 인상적인 이천사업장을 찾아가 봤다.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안심’ 위에 쌓아 올린 일상의 ‘지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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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파우더를 뿌리고, 띠 포장을 하는 직원들의 모습

행복이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람의 결을 따라 방향을 잡아가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침마다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날마다 주어진 몫을 묵묵히 해내는 생활의 리듬.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내가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자연스럽게 깨달아 가는 것. 행복모아의 하루는 그렇듯, 조용하지만 단단한 행복 위에서 시작된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 마련된 앞마당과 턱없는 입구를 지나 중앙 홀로 들어서자, 바닥에 깔린 밝은 색감의 쿠션들이 긴장을 풀어 준다. 이어 그 주변을 에워싼 카페·보건실·구내식당 등은 이곳이 딱딱한 직장이 아닌, 안심하고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공간임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한 이순범 대표는 행복모아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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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홀의 휴게공간(좌)과 전시 공간(우)

“설계 단계부터 장애인 구성원의 눈높이에 맞춰 이동 동선과 편의시설을 구상했어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도 충분히 확보했고, 출입 과정에서 넘어야 하는 턱을 모두 없앴죠. BF(Barrier Free·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최우수 등급도 획득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애인이 공간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사람에게 맞춰져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모두가 편리하니까요.”
공간뿐만이 아니다. ‘안정감’이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돌아가는 행복모아의 하루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일정한 리듬 속에서 운영되며, 그림 자료와 반복 교육으로 업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발달장애인 구성원들이 낯선 변화에 대한 불안보다, 익숙한 패턴 가운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성과의 크기보다 성장의 깊이를 재다

행복모아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지속성’이다. 말하자면 장애인 직원을 채용하는 것만큼이나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이 대표 역시 행복모아의 성장을 숫자의 확대보다 직원들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행복모아의 장애인 직원은 대부분 지적장애나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어요. 2017년 86명이던 장애인 직원이 지난 5월에는 정확히 493명이었는데, 올해 말이면 600명을 넘지 않을까 해요. 규모에 상관없이 그저 장애인 직원들에게 편안하고 친숙한 일터였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행복모아의 평균 근속연수는 약 5년으로, 장애인고용 현장에서는 비교적 높은 수준에 속한다. 자연히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 장애인고용 우수사업장 선정 등의 성과가 뒤따르기도 했다. 행복모아의 경쟁력은 일터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청주사업장과 이천사업장 모두 오전·오후로 나눠 근무하며, 무엇보다 직원들의 집중력과 건강을 고려해 2시간 근무 후 30분씩 충분한 휴식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생산 공정 또한 체계적이다. 청주사업장은 방진복 제조와 세탁·검수·포장을, 이천사업장은 제과·제빵 생산을 담당하며, 이 모든 과정은 SK하이닉스의 엄격한 품질 기준에 따라 관리된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체계가 생산성만을 위한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애 유형만으로 업무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입사 전 약 한 달간의 맞춤 훈련을 통해 손재주와 집중력, 적성 등을 살펴 가장 적합한 업무를 찾는다. 이후 작은 성공 경험이 쌓이면 단계적으로 역할을 넓혀 갈 수 있도록 돕고, 업무 속도 역시 개인의 숙련도와 컨디션에 맞춰 조정한다. 어떤 환경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원인을 함께 찾고, 성향과 강점에 맞는 역할을 맡기며 변화가 필요할 때는 한 걸음씩 적응을 돕는다. 실제로 라벨 부착 업무에 배치된 한 직원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뛰어난 집중력과 꼼꼼함을 발휘하는 현장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했다. 획일적인 성과보다 각자의 속도에 맞춘 성장을 우선하는 행복모아의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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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홀

‘행복만빵’으로 지켜가는 성장의 약속

행복모아의 ‘사람 중심’ 철학은 이천사업장에도 가득 담겨 있다. 2020년 ‘행복만빵’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천사업장은 청주사업장에서 쌓아온 장애인고용 경험을 바탕으로, 발달장애인이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직무를 고민한 끝에 탄생했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제과·제빵 사업이야말로 발달장애인의 강점을 전문성으로 연결할 수 있는 분야였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반죽의 상태를 살피고, 모양을 만들고, 굽기의 변화를 확인하는 과정에는 손끝의 감각과 섬세한 집중력이 필요해요. 발달장애인이 가진 예민하고 특별한 감각이 강점으로 발휘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죠. 단순한 생산을 넘어 전문 기술을 익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봤습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스스로 만든 제품에 자부심을 느끼고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이 대표에 따르면, 행복모아는 공장 설립에 앞서 장애인 구성원을 대상으로 약 1년간 제과·제빵 전문 교육을 진행했다고 한다. 개인의 강점과 적성을 고려해 맞춤형 직무교육을 진행하며 실제 생산 공정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 과정을 거쳤다.
‘행복만빵’은 바로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다. “행복이 가득 차다”는 의미의 그 이름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성장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행복모아의 약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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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한편에 마련된 갤러리(좌)와 브랜드 로고(우)

일을 통해 ‘자립의 삶’을 굽는 하모니

실제 생산 현장에서는 각자가 맡은 역할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반죽을 일정한 크기로 나누고 모양을 만드는 손길, 갓 구워진 빵의 상태를 확인하는 눈빛, 완성된 제품을 꼼꼼하게 포장하는 움직임이 분주하게 이어졌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빵은 현재 SK하이닉스 이천·청주캠퍼스 구내식당으로 납품되며, 장애인 직원들의 기술과 노력이 담긴 결과물로 수많은 구성원의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다.
행복모아가 단순한 일터를 넘어 ‘삶터’로 느껴지는 이유는 사람을 중심에 둔 지원 체계에 있다. 생산 현장에서는 제빵사와 사회복지사, 장애인 직원들이 하나의 팀처럼 움직인다. 라인장과 제빵사들이 공정·품질·안전을 책임진다면, 사회복지사들은 장애인 직원들이 일터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곁을 지킨다.
성장의 과정 역시 혼자 감당하게 두지 않는다. 오래 근무한 직원들은 새로 입사한 직원들에게 작업 방법과 현장 문화를 알려 주며 적응을 돕고, 반복 교육과 현장 코칭, 정기 상담이 꾸준히 이어지기도 한다. 대학 연계 학위과정과 직무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성을 키울 기회도 제공한다. 이 모든 과정에 실수나 어려움이 생기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 원인을 함께 찾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이 행복모아가 성장의 과정을 함께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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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 생지 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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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기 공정을 끝낸 식빵

한 사람의 성장, 더 넓은 세상으로

행복모아가 오랫동안 지켜온 철학은 결국 사람의 변화로 증명된다. 이 대표는 청주와 이천사업장에서 성장한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을 이었다.
“청주사업장에 발달장애와 지체장애를 함께 가지고도 오랫동안 성실하게 근무해 지난해 장애인고용촉진 유공자 장관 표창을 받은 직원이 있어요. 이천사업장에도 제과·제빵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고 오븐 조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한 직원이 있죠. 모든 직원이 같은 속도로 적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하기 쉬운지를 함께 고민하다 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해 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예요.”
행복모아가 바라보는 성장은 비단 직무 능력의 향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로 “표정이 밝아졌다”, “책임감이 생겼다”, “우리 아이가 존중받고 있다”,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된다”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행복모아가 만들어 온 변화가 직원 개인을 넘어 가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대변한다.
행복모아가 꿈꾸는 자립은 일터에서 얻은 자신감과 성취감이 가정과 지역사회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꾸려 갈 수 있는 역량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성장이 가족의 안정으로 이어지고, 다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는 셈이다.

미니 인터뷰
이순범 대표이사
이순범 대표이사

행복모아는 그동안 서로를 존중하며 모두가 일터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회사의 성장도 의미 있지만, 직원과 가족 모두에게 안심을 주는 일터를 만들었다는 것에 더 큰 자부심을 느끼죠. 직원들의 안정과 휴식을 위해 사내에 ‘행복모아 미니텃밭’을 조성해 함께 가꾸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앞으로는 행복모아만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립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의 모델을 완성해 보고 싶어요. 장애인이 오래 일하고 성장하며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일터’, 그것이 행복모아가 그리는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