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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선, 지금
세계 각국의 사례를 통해 국내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분석형 콘텐츠

장애인의 여행, 관광 그리고 휴가, 세계의 지혜

한 나라의 정신적 가치는 어떻게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는지에 나타난다고 한다. 여름 휴가철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여행지를 선택하고 이동에 불편함이 없다면 분명 정신적 가치가 높은 나라일 것이다. 더욱이 와상의 중증장애인도 휴가를 가는 데 어려움이 없다면 진정으로 멋진 나라가 아닐까?

글. 이정주 센터장(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누구에게는 일상, 누구에게는 꿈

지난 5월 누림센터는 이들 중증(와상) 장애인 가족들과 동해안 여행을 다녀왔다. 앰뷸런스에 준하는 특수차량과 응급의료 인력이 가족들과 함께 동행했다. 평범한 여행은 아니었다. 그만큼 장애인과 가족들은 “꿈결 같은 시간이었다“며 함박웃음이 끊기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의 온전한 휴가는 정말 꿈과 같은 일에 머물고 있다. 중증 장애인의 휴가는 대부분의 비장애인 가정처럼 일상의 목록이 되지 못하고 일생의 한번 주어진 이벤트로 남는다. 그것이 35,000달러 선진국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인가, 못내 안타까움을 감추기 어렵다.

다른 나라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까

프랑스는 이 문제를 제도로 풀었다. ‘적응형 조직 휴가(Vacances Adaptées Organisées, VAO)’라는 국가 인증제가 핵심이다. 5일 이상 숙박을 동반하는 장애인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반드시 이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인증 없이 운영하면 불법이다. 국가가 여행의 질을 보증한다는 선언이다. 여기에 국립휴가쿠폰기관(ANCV; Agence Nationale pour les Chèques-Vacances)이 저소득 장애인 가족에게 30~70% 할인된 숙박 바우처를 제공하고, 장애인 수당(PCH)으로 연간 최대 600유로의 여행 비용을 별도 지원한다. 동반 보호자의 교통비도 청구 가능하다. 파리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모를 통해 선정된 7개 단체가 연간 500여 개의 적응형 여행 자리를 제공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APV (Aides aux Projets Vacances, 휴가 프로젝트 지원금)은 장애인과 동행 보호자를 포함한 취약계층에게 여행 비용의 최대 80%를 휴가쿠폰 형태로 지원한다. 비장애인은 하루 110유로 상한이 적용되지만, 장애인에게는 상한이 없다. 개인 단독 여행과 보호자 동반 여행 모두 신청 가능하다. 신청은 반드시 ANCV 파트너 기관의 사회복지사(référent social)를 통해 이루어진다. 전국 4,300개 이상의 협력 단체(NPO, 지자체, 사회보장기관)가 현장에서 수혜자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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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휴가쿠폰기관ANCV
(Agence Nationale pour les Chèques-Vacances)

영국에는 ‘리미트리스 트래블(Limitless Travel)’이라는 단체가 있다. 이름 그대로 '한계 없는 여행'이다. 중증 장애인을 위한 전담 케어 매니저가 개인별 돌봄 계획을 수립하고, 호이스트와 프로파일 침대가 갖춰진 숙소만을 엄선한다. 목적지 제한도 없다. 남아프리카 사파리, 카나리아 제도, 스칸디나비아 크루즈까지 프로그램에 포함된다. 영국 관광청은 민관 협력으로 장애인 850만 명을 위한 대규모 기금을 조성하고, 1,000개 이상의 숙박시설을 심사해 등급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한다. 모토빌리티(Motability) 재단은 중증 휠체어 사용자가 공항부터 여행지까지 전 과정을 맞춤 설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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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리미트리스 트래블(Limitless Travel)’

미국의 접근은 철학 자체가 다르다. ‘홈 앤 커뮤니티 베이스드 서비스(HCBS; Home and Community Based Services) 웨이버’프로그램의 핵심 원리는 ”돌봄이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시설이 아닌 사람에게 복지 지원이 귀속된다. 연방-주 공동 재원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개인 돌봄, 이동 지원, 일시 돌봄(Respite) 포함하며, 뉴욕 AHRC 같은 단체는 이 재원을 활용해 발달장애인에게 교통·숙박·식사·직원 지원비까지 포함한 연간 여행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대기 명단이 수년씩 걸리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원칙은 분명하다. 여가는 시혜가 아니라 지원 대상이라는 것. 한계도 솔직히 봐야 한다. 이 웨이버 프로그램은 권리가 아닌 특혜로 간주되어 이용 가능 인원에 상한이 있고, 수년씩 대기 명단에 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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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HRC NYC 레크리에이션 및 캠프

일본은 ‘유니버설 투어리즘’ 생태계를 민간에서 키워왔다. 간호사·개호복지사·작업치료사 등 유자격자가 여행 전 일정에 동행하는 개호여행 전문 서비스가 발달해 있고, NPO 네트워크가 온천 입욕 지원과 전동 휠체어 렌탈, 배리어프리 숙박 정보를 통합 연결한다. 2024년 4월부터는 개정 장애인차별해소법이 시행되어 여행업자의 합리적 배려가 법적 의무가 됐다. 대표적인 업체로 ‘안신여행(ansin travel)’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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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과 의료 지원을 갖춘 장애인 맞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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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부터 귀환까지 지원하는 안신여행사

우리나라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의 장애인 휴가지원

우리나라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산림청 산하,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은 장애인의 휴가를 지원하고 있다. 산림복지서비스이용권(바우처)으로 장애인연금 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1인당 10만 원을 지원하고, 전국 113개소에 무장애나눔길을 조성했다. 또 국립자연휴양림은 장애인 우선예약 추첨제를 운영한다. 전국 37개소에 80개 객실이 장애인 우선 예약 대상이다. 매월 4일부터 8일까지 신청하고, 13일에 추첨 결과가 나온다.
다만, 숫자들을 들여다 보면 충분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장애인용 80개 객실. 전국 46개 국립자연휴양림의 전체 객실 수와 비교하면 그 비율의 저조함이 느껴진다. ‘1인당 10만 원. 1박 2일 여행까지’에서 교통비와 숙박비를 합산하면 얼마가 나오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113개소의 무장애나눔길. 대한민국 산림 면적이 630만 헥타르임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 외에도 중증 와상장애인과 가족(돌봄인)이 함께하는 1박 2일을 지원하는 한벗재단도 있고, 근이양장애인시설 ‘잔디네집’도 중증장애인의 여행을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은 매우 부족한게 현실이다.
부족함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이것을 ‘장애인 휴가 지원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누군가에게 빵 한 조각을 주면서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정부만 나설 일은 아니다 시장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원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한벗재단과 잔디네집의 장애인 휴가지원의 성과를 보면 민간시장을 지원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해볼만하다.
위에서 살펴본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정부의 정책지원을 민간에 받아 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ANCV는 관광 산업에서 발생하는 수익 잉여금으로 장애인 여행을 지원한다. 영국 Limitless는 민간 기업으로 9년째 운영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사회가 장애인의 여행을 하나의 시장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시장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수요가 있다는 것을 사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한다는 뜻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정부주도(산림복지진흥원)이거나 선의의 비영리법인활동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 여행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되어 있다. 그 전제가 바뀌지 않는 한, 누림센터의 동해안 여행 같은 사업은 언제까지나 ‘감동적인 특별 이벤트’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