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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하루
장애인의 일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코너

AI 기술로 열어가는 새로운 일자리

‘AI 아티스트’로서의 성장터 ‘아누타’

모니터 화면에 이미지가 하나둘 펼쳐진다. 같은 주제를 바탕으로 생성된 이미지이지만 색감, 구도, 분위기는 모두 다르다. “조금 더 따듯한 느낌이면 좋겠다”, “배경을 바꾸어 볼까?” 등의 생각이 오간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프롬프트를 수정하며 생성해 가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고민하며 아이디어를 다듬는 시간이 더 길다. 그렇게 ‘내 안’의 능력은 예술이 된다. 이곳은 발달장애인이 ‘AI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일터, 아누타다.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영상. 황의진

가능성을 작품으로 잇는 공동체

웹·AI 기반 디지털 서비스를 개발해 온 플랜아이가 설립한 아누타는 발달장애인을 AI 아티스트(이하 아티)로 양성해 디지털 콘텐츠 분야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장애인표준사업장이다. 기업명 ‘아누타(ANUTA)’는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작은 섬 이름에서 따왔으며, 그곳의 사람들이 지켜온 협동과 공유, 타인에 대한 연민의 정신 ‘아로파(Aropa)’1)를 기업의 핵심 철학으로 삼고 있다.
임준택 부대표에 따르면, 아누타의 출발점은 명료하다. 조립이나 포장처럼 반복적인 업무에 머물기 쉬웠던 발달장애인의 일자리에서 벗어나, 그들의 창의성과 예술성에 주목한 것.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가능했던 배경을 임 부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발달장애인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재능과 감각이 있습니다. 그것을 표현하고 보여줄 기회와 방법은 많지 않을 뿐이죠. 하지만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그 가능성을 현실로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고, 이제 아이디어만 있어도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어쩌면 발달장애인의 잠재력도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이 다시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아누타의 시작이었습니다.”
몇 년 전 품었던 막연한 믿음은 이제 아누타라는 이름의 구체적 일터가 됐다. 장애인 직원 30명과 비장애인 직원 10명 등 40명이 함께 일하는 이곳에서 아티들은 저마다의 강점으로 창작하고, 서로의 가능성을 북돋우며, 함께 성장해 간다. 가능성을 작품으로, 작품을 다시 직업으로 이어 가는 일상이 바로 이곳, 아누타의 정체성이다.

1) 협동과 공유, 타인에 대한 연민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누타 사회의 가치. 아로파의 실천은 섬의 한정된 자원을 주민들이 공평하게 나누는 데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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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ABLED+AI=ABLE’이라는 철학을 내건 아누타 쇼케이스 전경

AI로 만들어 가는 창작의 하루, 성장의 문

아누타의 하루는 각자의 리듬에 맞춰 흘러간다. 오전에는 사무직원들이 전날 접수된 주문을 확인하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제작 방향과 일정을 함께 논의한다. 오후가 되면 아티들이 출근해 주어진 주제에 자신만의 감각과 화풍을 더해 이미지를 완성한다. 임 부대표는 이 과정에서 AI는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고 창작의 가능성을 넓혀 주는 도구라고 설명하며 말을 이었다.
“아누타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지역의 몇몇 발달장애인훈련센터에서 ‘AI아트스쿨’을 운영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훈련생들이 아누타에 입사하고, 입사 후에는 발달장애인의 이해와 활용에 맞춰 설계된 AI 도구를 활용해 실무를 이어가는 구조입니다.”
교육에는 자체 개발한 이미지 생성 도구 ‘아누타 캔버스’가 활용된다고 한다. 어려운 문장을 입력하지 않아도 육하원칙 기반의 키워드형·문장형·편집형 방식으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으며, 30초 안에 결과를 확인해 수업 시간 안에서 창작과 수정을 반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AI 활용 역량을 익힌 아티들은 적성과 강점에 따라 매장 운영, 굿즈 제작, AI 교육 보조강사, 손그림 작가 등 다양한 직무로 확장해 간다는 것이 임 부대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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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아티들의 작품이 미디어아트로 구현된 아누타 쇼케이스 전시 공간

창작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다. 음악 생성 도구 ‘아누타 뮤직’을 활용해 직접 만든 이미지에 음악을 입히면 미디어아트 브랜드 ‘아티움(ARTIUM)’을 선보일 수 있다. 또, 화환 브랜드 ‘그림이꽃’, 케이터링 아트워크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창작의 범위를 넓혀 간다. AI를 활용한 창작이 하나의 직무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임 부대표는 모든 아티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고객 응대에 강점이 있는 아티에게는 매장을 맡기고, 손재주가 뛰어난 아티에게는 굿즈 제작을 권해요. 힘이 좋으면 액자 제작이나 포장에 투입되고, 그림에 재능이 있으면 AI 이미지를 손으로 다시 그리죠. 외부 기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거나, 사내 교육장에서 다른 발달장애인을 가르치는 아티도 있고요. 아누타에서는 이렇듯, 성향이나 기호에 따라 성장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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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전시와 체험 공간을 안내하는 내부(좌)와 발달장애인을 위한 ‘AI 아트스쿨’ 교재(우)

가능성이 자라는 아누타의 세계

아누타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보다 성장시키는 일에 먼저 집중한다. ‘AI 아트스쿨’을 그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데, 예비 아티들은 이곳에서 AI를 활용한 창작 기초와 이미지 생성, 프롬프트 작성 등을 익힌 뒤 아누타의 창작 현장에 합류한다. 초반에는 미술 경험이 있는 장애인을 우선 선발했지만, 창작 경험보다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익히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경험’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교육’에 무게를 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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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수상 작품으로 제작된 키링

가장 기억에 남는 직원을 묻자, 임 부대표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과 이름이 같아 더욱 애정이 갔던 그는 말수가 적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작업에 임했다고. 수없이 수정하고 다시 도전한 끝에 최근 AI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그 작품이 다양한 굿즈와 판촉물로 제작돼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도 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성실함이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이 다시 상품이 되어 세상과 연결되는 과정을 지켜본 순간의 감동을 임 부대표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결국 아누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AI는 그 가능성을 열어 주는 도구일 뿐이고요. 한 장의 그림으로 시작했지만, 누군가는 굿즈를 만들고, 누군가는 매장을 운영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AI 기술을 가르치는 강사로 성장하기도 해요. 그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이렇듯 아누타의 핵심 요소는 AI 기술보다 사람의 성장에 있다. 기술은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장하는 도구일 뿐이다. 한 장의 그림은 다양한 직무로 확장되고, 창작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결국 아누타는 결과보다 성장의 시간을,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가능성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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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을 채운 아티들의 작품(좌)과 화환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그림이꽃(우)

기술과 사람이 공존하는 아누타의 미래

대전의 대표 명소인 성심당 인근에 자리한 아누타의 공간은 그 미래를 미리 보여준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이곳에는 미디어아트 전시실과 굿즈숍, 카페, 교육공간, 사무실이 한 데 들어서 있다. 전시실과 굿즈숍은 성심당을 찾은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들러 아티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굿즈를 구매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AI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도 함께 만난다. 장애인의 작품은 소비자와 만나고, 그 경험은 다시 새로운 일자리와 창작의 기회로 이어진다. 아누타가 꿈꾸는 선순환이 바로 이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물론 AI가 장애인의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누타가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조금 다른 가능성이었다. 지적장애나 자폐성 장애가 있는 직원들도 AI를 배우고 활용하며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고, 교육과 굿즈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임 부대표는 이에 대해 “결국 기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 기술을 배우고 활용할 기회를 여는 일이다”라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저희가 만들고 싶은 일터는 단순히 쉬운 일을 나눠 주는 곳이 아닙니다.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를 경험하고, 그 경험이 또 다른 성장으로 이어졌으면 해요. ‘AI 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그 작품이 굿즈와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에게 닿는 경험을 하기 바랍니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장애인의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고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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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타의 굿즈샵(좌)과 아티들의 작업 공간(우)

미니 인터뷰
김정연 아티(리하)
김정연 아티(리하)

저는 동물과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을 좋아합니다.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따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담아 작업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며 꾸준히 성장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훈 아티(서브)
하지훈 아티(서브)

주로 동물의 특징을 살려 표현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AI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새로운 방식의 작업에 재미를 느낍니다. 저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