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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선, 지금
세계 각국의 사례를 통해 국내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분석형 콘텐츠

장애인 평생교육, 일자리와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학령기 교육을 마친 뒤에도 배움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장애인에게 졸업은 때때로 교육의 끝이 된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학교를 떠나는 순간 ‘교육받는 사람’에서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위치가 달라지는 이른바 ‘배움의 절벽(graduation cliff)’과 마주한다. 장애인 평생교육을 시혜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권리로 바라보고, 이를 일자리와 자립으로 연결해 온 나라들의 사례를 살펴본다.

글. 이정주 센터장(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졸업 이후의 교육권 공백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누군가는 계속 배우지만 누군가는 배움의 절벽(graduation cliff)을 맛본다. 대학, 대학원에 가고, 자격증을 따고, 문화센터에서 악기를 배운다. 은퇴 후 평생교육원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있다. 아무도 이것을 특별한 일이라 여기지 않는다. 평생학습은 현대인의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교육받는 사람’이라는 지위가 사라지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된다. 특수학교를 나온 뒤 향하는 곳은 대개 복지관이나 주간이용시설, 주간활동서비스기관이다. 배움의 문제가 교육이 아니라 복지의 언어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이번 호에서는 장애인 평생교육을 시혜적 복지서비스가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 다시 설계한 나라들을 살펴본다.

사진 이미지

ⓒ 클립아트코리아

미국: TPSID, 대학의 문을 그대로 연다

미국은 2008년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지적장애 학생의 대학 진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TPSID다.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전환 및 고등교육 프로그램(Transition and Postsecondary Programs for Students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의 약자다. 별도의 장애인 대학을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대학 안으로 지적장애 학생이 그대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수업만 듣지 않는다. 캠퍼스를 다니고, 동료와 관계를 맺고, 자기결정과 독립생활을 훈련하며, 현장에서 직업을 경험한다. 배움과 사회참여와 일이 한 캠퍼스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성과는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난다. Think College의 2023~2024년 TPSID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의 97%가 직업체험이나 구직활동 등 고용·경력개발 활동에 참여했고, 67%는 재학 중 유급고용 또는 유급 직업학습을 경험했으며, 40%는 최저임금 이상의 개별 유급 일자리를 가졌다. 유급고용을 경험한 학생 중 98명은 TPSID에 들어오기 전에는 유급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수료 1년 뒤 추적조사(응답률 52%, 응답자 171명)에서는 65%가 유급고용 상태였다. 이렇듯 배움과 노동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생교육은 취미로 끝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인기의 삶 그 자체로 이어지는 경로라는 것이다.

아일랜드: TCPID, 대학과 기업 사이에 다리를 놓다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TCPID(Trinity Centre for People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목표는 대학 경험 자체가 아니라, 교육 이후 지속가능하고 의미 있는 고용으로의 이동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기업들과 '비즈니스 파트너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담당자 한 명이 50개가 넘는 기업 파트너를 관리하며, 기업은 학생에게 직장체험과 인턴십을, 졸업생에게 유급 일자리를 제공한다. 기업 직원이 학생의 멘토가 되고, 대학과 기업이 함께 적합한 업무를 찾는다. 기업 현장의 경험은 다시 교육과정에 반영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TCPID 기업 인턴십의 약 40%가 정규직 제안으로 이어졌다. EY는 2023년 기준 TCPID 졸업생 7명을 다양한 직무에 정규 고용하고 있다. 교육과 직업훈련, 인턴십과 고용이 서로 다른 기관에 흩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경로로 이어진다.
TCPID는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표현한다. 지적장애인이 교육과 고용, 사회에 완전히 참여하는 것은 열망이 아니라 권리라고. 평생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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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Up the Hill, 대학생활 자체가 배움이다

호주 플린더스대학교의 ‘Up the Hill Project’는 1999년 시작해 2025년 기준 26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적장애인이 개인적 목표에 따라 수업과 대학생활을 함께 경험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핵심은 또래 멘토다. 지적장애 학생이 비장애 학생과 관계를 맺으며 실제 대학생활을 경험한다. 이때 배우는 사람은 장애학생만이 아니다. 함께 생활하는 비장애 학생 역시 장애와 다양성을 경험한다. 분리된 장애인 교육시설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효과다.
플린더스대학교는 2026년 지적장애인을 위한 1년 과정 ‘고용경로 디플로마(Diploma of Employment Pathways)’를 새로 시작한다. 학습과 진로계획, 고용능력 개발, 실제 직장경험을 결합해 교육 이후의 고용까지 연결하려는 시도다. 26년간의 ‘대학 경험’ 프로그램이 이제 노동시장으로 이어지는 경로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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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더스대학교 캠퍼스(출처 - 플린더스대학교 홈페이지)

일본: ‘학교 이후의 배움’을 국가가 묻다

교육·복지제도가 한국과 비교적 가까운 일본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만하다. 문부과학성은 2018년부터 ‘학교 졸업 후 장애인의 배움 지원’에 관한 실천연구를 추진해 왔다.
중요한 것은 '학교 이후'라는 표현 그 자체다. 장애인의 교육을 학령기에 한정하지 않고, 졸업 후에도 문화·스포츠·지역사회 활동·직업생활을 포함해 계속 배우고 성장하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교육정책만이 아니라 복지·보건·의료·노동 분야와의 연계도 강조한다. 대학이 운영하는 지적장애인 대상 오픈칼리지와 공개강좌의 실태조사, 선진 사례 분석도 함께 진행 중이다.
미국의 TPSID처럼 국가 차원의 포용적 고등교육체계가 확립됐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평생학습의 공간을 장애인시설에 한정하지 않고 대학과 지역사회의 기존 자원으로 넓히려 한다는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서로 다른 제도, 하나의 방향

미국과 아일랜드, 호주와 일본의 제도는 서로 다르나 세 가지는 공통적이다. 첫째, 평생교육을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별도의 복지프로그램으로 보지 않는다. 둘째, 배움의 장소를 장애인 전용시설에 한정하지 않고 대학과 직장, 문화시설과 지역사회로 넓힌다. 셋째, 성과를 '몇 명이 몇 시간 이용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배웠는지, 누구와 관계를 맺었는지, 일자리를 얻었는지로 평가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배움과 일을 연결한다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교육과 고용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영역이었다. 학교는 교육을, 졸업 후에는 복지기관과 직업재활기관이, 취업은 다시 고용서비스기관이 나누어 맡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은 그렇게 나뉘지 않는다. 배우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하고, 사람을 만나며 사회적 관계를 익히고, 일을 경험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다. 그 경험이 다시 취업과 자립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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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복지시설을 넘어 지역사회로

우리나라는 2027년 「장애인평생교육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변화의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우리는 장애인이 배울 수 있는 시설을 늘리는 것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이미 가진 배움의 공간을 장애인에게 열 것인가, 질문을 가져야 한다. 장애인이 대학·평생학습관·도서관·문화시설·체육시설·직업교육기관과 실제 일자리로 이동하도록 연결하고 지원하는 지역사회 평생학습의 허브로 발전해야 한다. 대학 역시 중요한 평생교육 자원이 될 수 있다. 발달장애인이 대학에 간다고 해서 반드시 입학시험을 통과해 4년제 학위를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아일랜드 사례처럼 비학위 과정, 별도 자격과정, 직업교육, 일반강좌 참여, 캠퍼스 활동을 결합한 다양한 형태의 포용적 고등교육이 가능하다. 대학에는 강의실만 있지 않다. 도서관과 식당, 동아리와 체육관, 친구와 교수, 진로지원센터와 기업 네트워크가 있다.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정교한 ‘장애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런 평범한 성인기의 경험일지도 모른다.
평생교육의 목적은 사람을 계속 교실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배움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일하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데 있다. 그것은 장애인에게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