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구두’로 이름을 알린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 아지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시각장애인인 유석영 대표는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시절 제화 현장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처음 만났고, 그때의 기억이 훗날 청각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드는 수제화 사업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문을 연 아지오는 3년 8개월 만에 한 차례 폐업의 아픔을 겪었지만, 4년여 뒤인 지난 2018년 다시 연장을 들었다. 최근에는 성수동에 새 매장을 열며 고객과의 거리도 한층 좁혔다.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영상. 황의진
꿈꾸는 구둣방, 아지오
낮은 건물과 개성 있는 상점들이 이어진 성수동 거리에 새롭게 문을 연 아지오 매장에는 정장화부터 로퍼, 스니커즈까지 다양한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가죽의 색과 질감, 디자인은 저마다 다르지만 손으로 여러 공정을 거쳐 완성한 수제화 특유의 단정한 품격이 느껴진다. 시각장애인 대표와 청각장애인 직원이 만드는 구두라는 이유로 제품의 품질까지 의심받기도 했고, 결국 판로와 경영의 어려움을 넘지 못해 한 차례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러나 한 켤레에 들이는 장인의 손길과 정성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오히려 한 번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시간만큼, 좋은 구두를 만들겠다는 마음과 기술은 더 단단해졌다.
작업대에서 구두를 만들고 있는 직원들
이 매장에 놓인 구두의 시작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유석영 대표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그는 점차 시력을 잃어갔고, 가까운 어른들에게서조차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앞이 안 보여도 목소리가 좋고 말을 잘하니 방송국에 가서 아나운서를 해보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로 난생처음 미래를 생각하게 된 유 대표는 실제로 방송국에서 취재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제화업체의 생산 현장을 취재하던 날, 능숙하게 구두를 만들고 있던 청각장애인 제화공들을 처음 만났다. 그 첫 만남이 훗날 어떻게 아지오로 이어졌는지, 유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파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으로 있던 때였어요. 청각장애인을 위한 취미·여가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정작 참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가 일용직이나 장사 등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먹고사는 일이 급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가 프로그램이 아니었어요. 안정적으로 일하며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자리였죠.”
아지오가 일하는 방법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자리한 아지오의 생산 현장. 작업대 위에는 가죽과 구두골, 망치와 집게를 비롯한 제화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재봉틀과 연마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직원들의 손도 분주해진다. 가죽의 상태를 살피고, 구두의 형태를 잡고, 밑창을 다듬는 작업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서로의 작업을 확인할 때는 수어와 손짓, 눈빛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말보다 눈과 손이 먼저 움직이는 일터다.
구두 밑창을 다듬는 작업(좌)과 구두 형태를 잡으며 수작업하는 직원(우)의 모습
공정마다 필요한 손길도 다르다. 갑피에 접착제를 바르고 월형과 선심을 넣어 고정하는가 하면, 구겨지거나 들뜬 부분은 망치로 두드려 매끈하게 잡아준다. 형태가 갖춰진 뒤에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삐져나온 실밥과 자투리 천을 정리하고, 표면과 안쪽에 놓친 부분은 없는지 다시 살핀다. 이렇게 여러 번의 확인과 손질을 거친 구두는 마지막 검수를 마친 뒤 ‘아지오’ 세 글자가 선명한 상자에 담겨 비로소 주인을 만날 채비를 마친다.
유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같은 사이즈를 신더라도 사람마다 발볼의 너비와 발등의 높이가 달라 구두를 만드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가죽 역시 결이나 두께, 부위에 따라 성질이 달라 같은 방식으로만 다룰 수 없다. 어느 정도 힘을 주어 당겨야 하는지, 망치는 어떤 각도로 두드려야 하는지, 어디를 조금 더 다듬어야 하는지는 결국 손끝의 감각과 경험이 결정한다. 아지오가 발을 직접 재고 각자의 모양에 맞춰 구두를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 대표는 편안한 한 켤레를 완성하는 데에는 결국 오랜 시간 쌓아온 제화공들의 숙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제화 기술은 한 번 배운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같은 공정을 반복하면서 가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하는지를 몸으로 익혀야 하거든요. 또 한 사람이 자기 몫을 제대로 해내야 다음 사람의 작업도 잘 이어질 수 있고요. 결국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기술과 책임이 하나씩 더해져 한 켤레가 완성되는 겁니다.”
멈춘 작업장이 다시 움직이기까지
청각장애인이 기술을 익혀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시작한 아지오는 판로 부족과 경영난을 넘지 못해 2013년, 문을 연 지 3년 8개월 만에 공장을 닫았다. 전환점은 2017년이었다. 과거 아지오의 구두를 구입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밑창이 닳도록 오래 신은 모습이 알려지면서 브랜드가 다시 주목받았고, 재기를 바라는 응원과 참여가 이어졌다. 이후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을 꾸리고 사람과 기술을 다시 모아 2018년 생산을 재개했다.
재출범 이후 9년째를 맞은 지금, 아지오에는 16명의 청각장애인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세 명은 아지오가 처음 문을 열던 시절부터 함께해 온 직원들이다. 오랜 시간 같은 공정을 반복하며 쌓아온 숙련은 아지오를 지탱해온 힘이다. 다만 젊은 청각장애인의 유입이 많지 않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안정적인 판로를 넓혀야 한다는 과제도 남아있다.
서울 성수동 거리에 걸린 아지오 매장 간판
올해 성수동에 새 매장을 연 것도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이다. 그동안 성남의 생산 현장에서 제작과 고객 응대, 판매까지 함께해 왔지만, 재출범 10주년을 앞두고 이제는 아지오의 제품과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직접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매장이 문을 연 뒤에는 그동안 성남까지 찾아오기 어려웠던 기존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 새로운 고객과의 접점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공장에서 쌓아온 시간과 기술이 이제 성수동을 통해 더 넓은 시장과 만나기 시작한 셈이다.
아지오 매장의 외관
손끝의 기술이 내일의 길이 되도록
마지막 손질을 마친 구두 한 켤레가 작업대 위에 놓인다. 처음에는 평평한 가죽 조각이었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발을 감싸고 먼 길을 함께 걸을 단단한 형태를 갖췄다.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든 구두가 아니다. 가죽을 살피고 자른 손, 형태를 잡고 밑창을 붙인 손, 작은 흠까지 찾아내 매만진 손이 차례로 이어져 완성한 결과다.
아지오가 만드는 것도 구두만은 아니다. 일을 배우고 기술을 쌓으며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는 일터, 장애가 있어도 동료들과 오래 일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그 일터가 지속되려면 따뜻한 응원만큼이나 제품의 품질을 보고 선택하는 고객도 필요하다.
오늘 완성된 구두는 상자에 담겨 새로운 주인을 향해 떠난다. 그리고 그 구두를 만든 사람들은 다시 작업대 앞에 앉아 다음 한 켤레를 시작한다. 그렇게 손끝에서 손끝으로 이어진 기술은 누군가의 안정된 일상이 되고, 아지오의 다음 시간을 만들어간다.
아지오가 그리고 있는 다음 장면은 분명하다. 국내를 대표하는 명품 수제화 브랜드로 성장하고, 그 성장을 더 많은 청각장애인의 일자리로 이어가는 것이다. 우선 현재 16명인 청각장애인 직원을 30명까지 늘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넓혀갈 계획이다. 더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날에는 새로운 공장을 세우는 꿈도 품고 있다. 더 좋은 구두를 만드는 일과 더 많은 사람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일. 아지오에게 두 꿈은 결국 사람과 일터가 함께 성장하는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
작업대 위에 놓인 구두골(좌)과, 그에 맞춰 구두의 형태를 잡는 작업(우)
유석영 대표
다시 공장 문을 열고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작업장으로 돌아오던 날의 감격을 말로 다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지오의 목표가 처음부터 ‘청각장애인이 기술을 익히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일터’였거든요. 아지오의 문을 닫을 때 그래서 더 미안했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좌절도 깊었죠. 지금은 한 번 멈췄던 손들이 다시 구두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이번에는 반드시 이 일터를 오래 지켜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지속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지오의 두 번째 시작은 제게 더욱 무겁고 소중한 약속이에요. 그 약속을 꼭 지켜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