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해외에선, 지금
세계 각국의 사례를 통해 국내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분석형 콘텐츠

장애인 스포츠,

변방의 무대에서 이제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장애인에게 스포츠는 오랫동안 '극복의 서사'로 소비되어왔다. 감동적인 이야기, 불리한 조건을 이겨낸 인물. 그러나 국제패럴림픽위원회(International Paralympic Committee, IPC)는 최근 이 프레임 자체를 문제 삼고 나섰다. 장애보다 '선수'라는 정체성을 먼저 보라는 것이다. ‘극복’이 아니라 ‘권리’, ‘감동’이 아니라 ‘구조’. 스포츠 참여권과 접근성, 등급분류 같은 제도적 의제를 함께 다루라는 요구다.

글. 이정주 센터장(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감동이 제도가 되었던 순간

1988년 10월,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400m 트랙 위로 지체·시각·청각·지적장애 선수들이 함께 성화를 이어받는 최초의 릴레이가 펼쳐졌다. 마지막 주자는 휠체어 육상 조현희 선수였다. 한 손에 성화를 들고 어떻게 휠체어를 타고 달릴 것인가.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휠체어가 움직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밀고 달린 건 아주 작고 여린 그녀의 여섯 살 딸 윤보람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도 딸과 함께 만들어낸 마지막 봉송 질주는 전 세계를 감동에 몰아넣었다. 외국인 관람객들의 눈물 젖은 얼굴이 전광판에 비춰졌다. 88 서울 패럴림픽 최고의 걸작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38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또렷하다. 서울패럴림픽에서 두각을 보인 장애인 국가대표들의 인생 서사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크게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메달리스트들이 밝힌 꿈은 누구랄 것 없이 직업, 일자리, 고용으로 모아졌다. 그 열망은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등에관한법률’ 제정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국민소득 8,000달러도 못 미치던 개발도상국이, 국민소득 2만 달러 선진국에나 있을 법한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도입 당시 상시고용인원 300명 이상 기업은 고용인원의 일정 비율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부담금을 내야 했다. 그렇게 조성된 기금이 오늘날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감동이 아니라 제도. 서사가 아니라 법률과 기금. 1988년의 장애인 스포츠의 질주는 그렇게 한 세대의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지금 세계 장애인 스포츠가 던지는 질문은, 1988년의 공식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이미지

올림픽 주경기장

능력의 증명을 넘어, 독자적인 힘으로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의 최근 행보를 보면 하나의 흐름이 읽힌다. 장애인 선수가 “역경을 극복해 능력을 인정받고, 그 인정이 고용으로 이어진다”는 서사를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 스포츠 그 자체가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를 증진시키는 독자적인 도구로 설 수 있도록, 스포츠 안의 힘의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가장 뚜렷한 신호는 거버넌스다. IPC는 2021년 총회에서 종목별 국제 거버넌스를 2026년까지 독립 기구로 이양하겠다는 방침을 의결했다. 장애인 스포츠를 IPC 산하의 '특수 종목'으로 묶어두는 대신, 각 종목이 비장애인 스포츠와 동등한 독자적인 국제연맹 체계를 갖추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별 관리의 대상에서 전문 스포츠 체계의 일원으로. 이것은 선수 개개인이 능력을 증명해 밖에서 인정을 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스포츠 자체가 스스로 설 자리를 갖는 방식이다.
지난 6월 파리 유네스코 회의에서 IPC 부총재 크리스티나 몰로이가 던진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그는 패럴림픽이 보여주는 접근성과, 대회가 끝난 뒤 선수와 전 세계 13억 장애인이 교통·교육·고용에서 겪는 일상적 장벽 사이의 간극을 지적했다. 장애 아동 세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체육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수치도 함께 제시됐다. 이 지적의 방점은 ‘선수 한 명의 성공담’이 아니라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감동적인 순간도 무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물론 고용으로 이어진 성과도 분명하다. 런던 2012 대회 이후 4년간 영국의 장애인 고용은 수십만명이 늘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파리 2024를 앞두고 접근성·통합 사업에 15억 유로를 투자했다. 지난 3월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은 55개국 611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여성 선수도 160명으로 최다였다. IPC 자체 조사에서는 대회 시청자의 73%가 사회 통합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성과들은 '선수가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따라온 결과라기보다, 접근성·투자·참여 구조 자체가 바뀐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 순서가 다르다. 감동이 먼저가 아니라 구조가 먼저다. IPC는 장애인 스포츠도 조건과 구조만 갖춰진다면 감동의 장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 종목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진 이미지

현재 IPC가 승인한 패럴림픽 종목은 29개
여름 스포츠 23개, 겨울 스포츠 6개
ⓒ IPC 홈페이지

사진 이미지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패럴림픽 엠블럼
ⓒ IPC 홈페이지

한국에 던지는 질문

한국도 움직이고 있다. 2026년 반다비체육센터 건립 지원금이 최대 50억 원으로 늘었고, '스포츠 정책비전 2030'은 장애인 체육 지원을 5대 축 중 하나로 명시했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여전히 '감동적인 선수 서사 → 사회적 인식 개선 → 고용'이라는 1988년의 공식 안에서만 장애인 스포츠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장애인 스포츠 그 자체가 독자적인 거버넌스와 재원, 발언권을 가진 하나의 체계로 서도록 힘을 실어주고 있는가.
메달은 셀 수 있다. 거버넌스는 셀 수 없지만, 있는지 없는지는 분명히 드러난다. 세계 장애인 스포츠가 지금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감동을 다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감동 없이도 스스로 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
88패럴림픽이 지나고 38년, 여섯 살 소녀 윤보람씨가 그날 밀었던 것은 휠체어가 아니라 한 세대의 정책이었다. 지금 IPC가 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선수 한 사람의 서사가 아니라 장애인 스포츠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그 자체의 두 바퀴다. 비장애인 체육에 구색을 갖추거나, 장애 극복의 감동을 이끌어 내는 것에 머무는 스포츠가 아니라, 장애인 스포츠 그 자체로 우뚝 선 스포츠의 한 영역으로 독립성을 갖추는 방향이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올해 제주에서 열린 제4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는 비장애인 전국체육대회 보다 먼저 열렸다. 보통 전국체육대회를 마치면 그 끝물에 열리는 듯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올해는 독자적으로 그것도 먼저 열린 것이다. 중요한 첫걸음이라 생각된다.

사진 이미지

탁구 ⓒ 제4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홈페이지

사진 이미지

조정 ⓒ 제4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