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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아 화면해설작가

글. 조서현  
사진. 김범기

등장인물의 침묵 뒤 오가는 표정과 눈빛, 배경음악 아래 펼쳐지는 미지의 풍경. 당장 시각장애인이 드라마와 영화를 볼 때 벌어지는 막막한 공백이다. 그리고 화면해설작가는 섬세하고 명확한 설명으로 이 공백을 메우는 사람이다. 권성아 화면해설작가 또한 벌써 13년째 시각장애인들에게 화면 속 세상을 들려주고 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화면해설작가 권성아입니다. 화면해설작가로서 본격적으로 일한 지는 13년째인데요. 대표작으로는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 <증인>, <헤어질 결심>과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스물다섯 스물하나>, <작은아씨들>, 예능 <도시어부>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드라마 <마이데몬>, 영화 <서울의 봄>을 작업했습니다.

  • Q. 어떤 계기로 화면해설작가를 직업으로 삼게 되셨나요?

    원래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일을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TV 속 배우들이 말하고 있지 않는데도 어디선가 말소리가 흘러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처음 화면해설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후 2011년부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現 한국시각장애인미디어진흥원)에서 1년 정도 교육을 받은 뒤 화면해설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Q. 화면해설이라는 것을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화면해설이란 무엇인가요?

    화면해설이란 잘 보이지 않거나 아예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면 속 장면들을 음성으로 설명하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당장 눈을 감고 영화나 드라마 속 방을 떠올린다고 하면 그 방이 어디에 있는지, 내부는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방에 있는 인물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등 많은 정보를 알 수 없는데요. 화면해설은 대사, 음향 효과, OST와 같은 요소를 되도록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꼭 알아야 하는 필요한 정보를 전달합니다. 흔히 지상파 재방송에서 접할 수 있는데요, TV 편성표 한쪽에 귀 모양이나 ‘해’라는 글자가 표시되어 있다면 화면해설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 미소를 띠고 있는 권성아 화면해설작가

    미소를 띠고 있는 권성아 화면해설작가

  • 화면해설 작업에 열의를 다하는 중이다.

    화면해설 작업에 열의를 다하는 중이다.

  • Q. 실제로 작가님께서 화면해설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방송국이나 영화사에서 화면해설 의뢰를 받으면 저에게 원대본과 영상이 전달됩니다. 저는 먼저 눈을 감은 채 영상 속 소리를 들어봐요. 들으면서 시각장애인분들이 어떤 상황과 소리를 궁금해할지 체크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영상을 보면서 원고를 작성하는데요,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는 작업까지 함께 진행합니다. 그렇게 작성된 원고는 성우의 목소리를 입히고 후편집 과정을 거쳐 음성으로 완성됩니다. 이후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화면해설방송 모니터 요원들의 검수를 받기도 해요.

    Q. 소설이나 시나리오 등과는 다른 자막해설만의 특징이 궁금합니다.

    화면해설 문장은 대사와 효과음 사이 5초, 10초 남짓의 짧은 시간만 주어지기에 간단명료해야 합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주어가 제일 앞에 오게끔 한다는 것인데요, 일단 주체가 누군지 알아야 그 사람의 행동과 감정을 따라가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또 작중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물건일 경우엔 물건의 이름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의 모양, 기능, 위치 등을 함께 설명해야 해요. 예를 들어 손목시계 측면에 태엽을 감는 꼭지를 ‘용두’라고 하는데, 이 명칭이 일상적으로 쓰이지는 않기에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아 부연 설명을 해야 합니다.

    Q. 작가님이 작업하신 화면해설의 실제 사례가 궁금합니다.

    공저서 <눈에 선하게>에도 쓴 내용인데, 드라마나 영화는 장르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장르인 멜로입니다. 사실 멜로의 정점인 키스신은 배경음악과 몸짓으로 분위기를 표현하기 때문에, 배우들이 ‘멜로 눈빛’을 발사하기 시작하면 이만저만 괴로워지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게 전부일지라도 대부분의 비시각장애인들이 무심코 흘려버릴 수 있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나 눈동자의 떨림, 몸짓을 찾아내 해설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설만으로도 주인공들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예시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장면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 희도가 지나쳐 가는 이진의 팔을 잡는다. 이진의 눈길이 희도의 손에서 천천히 희도의 얼굴로 향한다. 희도는 이진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희도: 너는 뭔데? 이진은 팔을 붙잡힌 채로 희도의 말을 듣고 있다. 희도: 우리 관계 정의하는 거 넌 고민 안 했다면서. 이진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희도: 니 답은 뭐냐고. 희도는 이진의 대답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진: …무지개는 아니야. 이진이 커다란 손으로 희도의 손목을 감싸 쥔다. 그러곤 자신의 팔에서 희도의 손을 떼어내, 그대로 손목을 꼭 잡고 있다. 희도가 이진에게 잡혀 있는 손목을 내려다본다. 이진: 나희도. 희도는 떨리는 눈빛으로 이진을 올려다본다.이진의 떨리는 눈동자도 희도만을 향해 있다.

Q. 화면해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시각장애인분들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기본이고 필수입니다. 그리고 화면해설은 영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돼요. 화면해설은 언제까지나 보조 수단이기에, 해설 없이 충분히 이해되는 장면에서는 강박적으로 해설할 필요가 없어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실에 기반한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Q.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해설해 오셨어요. 작품마다 노력을 기울이는 포인트가 다를 텐데요.

영화 <헤어질 결심>은 영화 자체가 어렵기도 했고, 미장센이 강조된 영화라 해설에 작품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고자 감독이나 배우들의 인터뷰, 평론가의 해설 등 많은 자료를 찾아봤던 것이 기억납니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는 작중 인물들의 펜싱 경기 장면을 설명해야 했는데요. 경기 규칙과 같은 전문 지식을 정확히 전달하려고 정말 공부를 많이 했어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제가 직접 펜싱 종목 해설 방송에 나서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옴니버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이들의 캐릭터를 살리는 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 온 권성아 화면해설작가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 온 권성아 화면해설작가

  • 관객분 중 감탄사를 내시거나, 같은 포인트에서 같이 웃으실 때가 있어요.
    이런 솔직한 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그 장면을 이해하셨다는 뜻이기에 해설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집니다.

Q. 화면해설에 대해 직접적으로 장애인 당사자분의 반응을 들으신 적도 있으신가요?

화면해설 전문 장애인 모니터링 요원분들이 피드백을 주시기도 해요. 한 분은 이전에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화면해설 없이 봤을 땐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이후 화면해설과 함께 보니 드라마의 재미가 더해졌다고 하시면서, 그때 해설에 참여한 성우와 작가의 조합이라면 기대부터 될 것 같다고 하셨어요. 또 보통 제가 해설한 작품은 극장에 가서 직접 보는 편인데요. 이때 관객분 중 감탄사를 내시거나, 같은 포인트에서 같이 웃으실 때가 있어요. 이런 솔직한 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그 장면을 이해하셨다는 뜻이기에 해설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집니다.

Q.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화면해설 분야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 화면해설 음성과 자막을 제공하는 ‘가치봄’ 영화가 있지만, VOD 서비스를 제외했을 때 작품 수도 적고 상영관도 부족해요. TV방송 화면해설도 현재는 재방송에만 적용이 되어서 아쉬운 면이 있어요. 이렇듯 과거보다는 좋아졌다 하더라도 아직도 시각장애인이 영상을 자유롭게 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앞으로 화면해설 서비스가 더 확대되었으면 하고, 저도 더욱 많은 이들이 함께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화면해설작가로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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