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함께

더 늦기 전에
들어야 할
꿀벌의 경고

글. 김미현

기온이 올라가 날이 따뜻해지면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이는 꿀벌들. 하지만 봄기운이 완연한 지금, 꿀벌의 모습을 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꿀벌들이 무서운 속도로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많던 꿀벌은 다 어디로 갔을까?

꿀벌이 갑자기 집단으로 자취를 감춘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세계 곳곳에서 뚜렷한 이유없이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러 나간 일벌들이 돌아오지 않아 벌집에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가 떼로 죽는 ‘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 문제는 이러한 집단 실종이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S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매년 평균적으로 유럽은 30%, 남아프리카는 29%, 중국은 13% 정도 꿀벌이 사라지고 있으며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UN 역시 현재 전 세계 야생벌의 40%가 멸종 위기에 처했고,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오는 2035년에는 꿀벌이 영영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 상황도 꽤나 심각하다. 양봉협회는 몇 해 전부터 전국의 양봉 농가에서 월동 이후 벌무리의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월동 이후 사라진 벌통도 지난해 94만 개에서 올해 120만 개로 늘어났다. 보통 벌통 한 개 안에 꿀벌 개체수가 1만5,000여 마리에서 2만 마리 정도 산다고 가정하면, 올해만 꿀벌 200억여 마리가 사라진 셈이다.

  • 꿀벌의 집단 실종은 기후 위기의 시그널?

  • 이렇게 꿀벌이 계속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및 강수량의 변화로 벌들의 서식지가 줄어 갈 곳을 잃거나 각종 전자제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자파로 벌들이 집으로 가는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등 여러 잠정적 원인이 제시되고 있지만, 명확한 원인은 아직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상기후도 유력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낮과 아침·저녁 간 일교차가 심해져 낮에 채집활동을 나갔다가 월동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또 이상기후로 인해 식물의 개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꿀벌에게 꿀과 꽃가루라는 먹이를 주는 밀원(蜜源) 식물의 개체수가 감소해 꿀벌 생존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의 경우 기후변화로 따뜻해진 기온이 응애의 수를 급격히 증가시켜 꿀벌 개체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도 많다. 응애는 진드기의 일종으로 꿀벌이나 꿀벌 유충에 기생해 체액을 빨아먹으며 병원성 바이러스를 옮기는 기생충으로, 특히 꿀벌 유충이 응애에 노출되면 바이러스로 인해 성충이 되기 전에 말라 죽는 ‘낭충봉아부패병’에 걸릴 수 있다. 실제 지난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으로 국내 토종벌의 98%가 폐사하는 일이 있었으며, 현재도 양봉농가에 큰 피해를 주는 요인 중 하나로 꼽혀 예방을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 화분매개자 역할을 하는 꿀벌들

      화분매개자 역할을 하는 꿀벌들

    • 수분을 돕는 꿀벌의 모습

      수분을 돕는 꿀벌의 모습

  • 꿀벌의 위기 = 인간·생태계의 위기

  • 물론 누군가는 ‘꿀벌, 그까짓 거 좀 사라지면 어떤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벌의 개체수는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에 큰 위협이 된다. 벌이 꿀만 주는 곤충이 아니기 때문이다. 벌이 사라지면 인간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여 개가 꿀벌을 매개로 열매를 맺는다. 꽃에서 꽃으로 이동하며 꽃가루를 옮겨 스스로 수분하지 못하는 종자식물이 종자와 열매를 생산하게 하는 화분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비, 박쥐, 새 등 다른 화분매개자도 있지만, 수분을 가장 많이 돕는 종은 벌이다. 특히 아몬드처럼 무거운 꽃가루는 꿀벌만이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꿀벌이 사라지면 식물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고, 인간은 물론 생태계 전반에 걸쳐 극심한 식량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 미국에서는 꿀벌이 완전히 소멸하면, 전 세계적으로 과일은 22.9%, 채소는 16.3%, 견과류는 22.9% 생산량이 감소하며 이로 인한 인구 사망자 수가 연간 142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경제적 손실도 크다. 국제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에 의하면 식량 재배에서 꿀벌의 기여 가치는 세계적으로 373조 원에 이른다. 우리나라만 두고 봐도 과수·과채류 등의 작물과 특용작물·원예 종자·의약품 등에서 약 6조 원 규모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가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꿀벌은 매년 어마어마한 경제적 가치를 가진 농산물을 생산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 물론 누군가는 ‘꿀벌, 그까짓 거 좀 사라지면 어떤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벌의 개체수는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에 큰 위협이 된다.
      벌이 꿀만 주는 곤충이 아니기 때문이다.
      벌이 사라지면 인간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여 개가
      꿀벌을 매개로 열매를 맺는다.

  • 꿀벌이 가득한 세상으로 만드려면

    • 지난 2017년부터 UN은 5월 20일을 꿀벌의 날로 지정했다. 화분매개자로서 꿀벌의 중요성을 알리고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꿀벌은 계속 사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꿀벌의 집단 폐사를 막고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밀원 식물로 밀원 숲을 조성하는 등 그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작은 공간이라도 야생화를 심거나 꽃을 키우면 꿀벌 서식지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를 막을 수 있는 대중교통 이용하기, 낭비되는 대기전력 줄이기, 일회용품 사용 최소화하기 등 일상의 작은 실천을 더한다면 조만간 다시 꿀벌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사라져 가는 꿀벌이 남기는 다잉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보자.

    • 꿀벌과의 공생이 시급하다.

      꿀벌과의 공생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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