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일잘러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수상 배우 하지성

나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로
세상을 비추다

글. 임산하  
사진. 김도형

  •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가 있다. 그는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으로, 주변의 반대에도 자신의 세계를 단단하게 만들어 낸 하지성 씨다. 장애예술가가 비장애인과 협업하는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그는, 연기로 세상에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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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를 향한 꿈에 강하게 빠져들다

  • 사람에게는 각자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모두 다른 모습으로 서로 얽혀 있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구축되는 세계란 없지만 이 뒤섞임은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 하는 난관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선택은 늘 막막하면서도, 나를 강단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지난해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하지성 씨가 스스로 쌓아 온 세계는 ‘강단’이라는 말과 닮았다. 2010년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15년 차가 된 그는 현재 장애인극단 ‘애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선천적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인 그가 배우를 꿈꾼다고 했을 때, 그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현실성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셨어요. 배우는 미래가 불투명한데, 이걸 장애인인 제가 하겠다고 하니 말이 안 된다고 하셨죠.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할 때에도 부모님은 계속 안정적인 직업을 찾길 바라셨어요. 그렇지만 저는 계속 하고 싶었어요. 그 마음이 너무 강했죠.”
    어릴 적부터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발표하는 걸 좋아했다는 그. 라디오도 즐겨 들어서 예능인에 관심이 생겼고, 배우나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다 배우를 선택하게 된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부터였다.
    “학창 시절에 집에 혼자 남으면 대화를 할 사람이 없었어요. 저는 대화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혼자 연기를 하게 된 거예요. 연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던 어린아이는 성인이 되어 극단에 입단했고, 그곳에서 대본을 보는 법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 연기를 배우는 것이 두렵다기보다 즐거웠다는 걸 보면, 그에게는 그 어떤 것으로도 희석되지 않는 배우의 피가 흐르고 있었을 테다.
    “걱정보다 궁금증이 더 컸어요. ‘연기가 뭐지? 어떻게 하는 거지?’ 하고 생각했는데, 대본을 보고 나면 이런 인물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게 재밌었어요. 그걸 토대로 연기했죠. 리딩을 할 때에도 인물의 의도, 그리고 작품의 최종 목적까지 생각하면서 연습했어요.” 그렇게 처음 무대에 올랐던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에스트라공 역할을 맡았는데, 분장실에서 대기를 하다가 8시 땡 하면 조명이 꺼진 무대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 지금도 생각나요. 조용한 객석에서 관객들이 집중하는 순간이 너무 좋았어요.” 연기하기 위해 무릎으로 기어가거나 보조기구를 이용해 걷거나 또 휠체어를 사용해 이동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그. “작품에는 인물의 태도가 중요해요. 그래서 이렇게도 행동하고, 저렇게도 행동해 보면서, 움직임을 다르게 하며 여러 시도를 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그는 오늘도 배우로서 연구를 거듭하는 중이다.

    •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나는 하지성 배우의 모습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나는 하지성 배우의 모습

    • 지성 배우가 연극 '전쟁터 산책'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지성 배우가 연극 <전쟁터 산책>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던 어린아이는 성인이 되어 극단에 입단했고,
    그곳에서 대본을 보는 법부터 차근차근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 연기를 배우는 것이 두렵다기보다 즐거웠다는 걸 보면,
    그에게는 그 어떤 것으로도 희석되지 않는 배우의 피가 흐르고 있었을 테다.

  • 꾸준한 노력 끝에 받은 연기상

    • 극단에서 함께 성장해 온 그는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을 무렵, 외부 작업이 하고 싶다는 바람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좀 더 많은 사람과 많은 예술인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2021년에 안식년을 신청했고, 운이 좋게도 그 해에 3개의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 인터뷰 형식의 오디션을 보기도 했는데, 그래서 이후에 <틴에이지 딕>에 도전할 힘이 생겼던 것 같아요.”
      연극 <틴에이지 딕>은 그에게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안겨 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무장애 공연으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리처드의 책략가이자 야심가의 면모를 보여 준다. 리처드는 뇌성마비를 가진 캐릭터로 이를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고, 망설임 없이 오디션을 준비했다고.
      “오디션은 자유연기와 지정연기가 있었고, 둘 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솔직히 많이 아쉬웠어요. 준비한 걸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처음 제대로 오디션을 봤던 것이기도 했고, 기대감도 있어서 발표 당일에는 국립극장 홈페이지를 계속 새로고침하면서 기다렸어요.” 그는 연출진이 좋게 봐주셔서 합격한 것이라고 덧붙이지만, 진심과 열정, 그리고 실력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진 그에게 ‘합격 목걸이’가 주어진 것은 당연했을 테다.
      그렇게 시작한 <틴에이지 딕>은 그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리처드는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하는데, 겉으로 보이는 장애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솔직하게 다 보여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나 3시간 분량에, 대사량이 어마어마해서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는 그. 그러니 연기상 수상이 그에게는 얼마나 멋진 선물이 되었을까.
      “정말 예상하지 못했어요. 물론 이왕 후보에 올랐으니 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보다 앞서 백상예술대상 후보에 올랐던 장애 배우 김원영 씨, 박지영 씨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수상을 하지 못했거든요. 세 번째로 후보에 오른 장애인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의 희망은 현실이 되었다. 주변 지인들에게서는 물론 유튜브 댓글이나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많은 축하를 받은 그는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라며 그때를 회상한다.
      그리고 더 기뻤던 것은 부모님께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는 것. 그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에게 “이것도 현실이에요”라는 강렬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상한 연기상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상한 연기상

  • 사회를 향한 꿈, 무대를 향한 열정

  • 그가 이룬 현실에서, 앞으로 꿈꾸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장애인이 상을 받은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구분을 넘어서 공동체로 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해요.” 물론 공연장에는 장애인석이 마련되어 있고, 대형 극장에서는 장애인 매니저를 고용하고 있어서 인식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그는 말한다.
    “소극장은 지금도 접근성이 어려워요. 그런데 아예 못 들어가는 극장이라면 어쩔 수 없더라도, 입구까지는 접근이 되고 최종적으로 턱이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예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천만 개의 도시>라는 작품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여성, 퀴어, 장애 등이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를 보여 줘요. 이것이 제가 꿈꾸는 사회예요. 공연장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슈퍼에도 일상적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면 앞으로 배우로서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실험극에 참여하거나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 속해지고 싶어요. 그 안에서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역할을 도전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의 답변을 들으니,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자신을 드러내는 소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는 그의 바람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 잠시 바람을 쐬면서도 연기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 그다.

      잠시 바람을 쐬면서도 연기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 그다.

    • '인정투쟁: 예술가 편'의 대본을 펼치며 연기 연습 중이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의 대본을 펼치며 연기 연습 중이다.

    “장애인이 상을 받은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구분을 넘어서
    공동체로 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해요.”

    “배우라는 직업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데다 장애인 배우를 고려하지 않은 작품이 대다수죠. 장애인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고민하는 작가와 연출가가 많아져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길 바라요.”
    끝으로 그는 배우가 되길 희망하는 장애인들에게 “장애인극단이 있으니 문을 두드려 주세요!”라고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서울에는 여러 장애인극단이 있고, 이 외에도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연극 자조모임을 하기도 해요. 팀들마다 다양한 방향을 갖고 있어서 배우를 꿈꾼다면 극단에 먼저 지원해 보기를 바랍니다.”
    ‘장애인 배우’라는 수식어가 사라질 세상을 그리며, 오늘도 연습을 거듭하는 배우 하지성 씨. 인터뷰를 마친 그는 <인정투쟁: 예술가 편>의 재연을 준비하기 위해 연습실로 향했다. 관객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때문에, 항상 대사 전달을 신경 쓰며, 정확하게 보여 주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는 그가 이번 작품에서는 자신과 어떤 싸움을 하고, 또 어떤 강단으로 역할을 밀고 나갈지 기대된다. 무대에 선 그가 궁금하다면 5월 28일, 두산아트센터에서 막이 오를 이 작품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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