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일잘러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교수
절망 속에서 찾은 의미
희망 속에서 찾은 가치
글. 임산하
사진.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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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끼어든 우연한 사고에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찾았던 이지선 교수. 스스로가 인생의 이정표가 된 그는, 장애인의 삶과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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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말하며 힘을 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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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선택지는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답도 오답도 없으며, 다음을 예상할 수 있어도 결정할 수는 없다. 우연으로 이루어진 걸음걸음들에 때로 우리의 바람이 무참히 부서지기도 하지만 그 순간에도 삶은 이어진다.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하던 것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매섭게 보여 주다가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또 삶이다.
대학생이던 2000년 7월 30일,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중화상을 입어 중도장애인이 된 이지선 교수는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당시 의료진도 살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기나긴 수술과 치료, 그리고 재활을 통해 새살이 돋아나는 기적을 경험했다. “저는 오늘을 기대감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사실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지났는데 그때 희망의 힘이 얼마나 큰지, 일상에 바람을 품고 사는 삶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어요. 더 이상 과거의 나쁜 일은 오늘의 저를 괴롭히지 못해요.”
고난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지선아 사랑해>로 많은 이에게 울림을 주었던 그. 지난해에는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에 다시 돌아왔다. 대학 시절 유아교육을 전공했지만 사고 후 몸의 장애와 마음의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유학생이 되어 재활상담학과 사회복지학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재활병원을 운영하는 ‘푸르메재단’, 화상경험자를 돕는 ‘한림화상재단’ 등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며 희망을 나누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저서 제목처럼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맞기까지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아 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을 지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의 사랑, 신앙의 힘, 그리고 순간순간마다 그때의 웅덩이를 지나게 해 주었던 많은 이의 도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누군가의 인생을 오롯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노력을 하고자 하는 재단들과 기꺼이 손을 잡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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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을 기대감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사실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지났는데 그때 희망의 힘이 얼마나 큰지,
일상에 바람을 품고 사는 삶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어요.
더 이상 과거의 나쁜 일은 오늘의 저를
괴롭히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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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회통합을 위해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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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장애인이 되어 상실을 경험했던 그는 이전에 받은 적 없던 타인의 시선이 폭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뚜렷이 구분 짓는 사회가 만들어 낸 시선일 테다. 이지선 교수는 ‘모두 함께 모여 우아한 회색을 이루며 사는 것’이 진정한 통합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주로 직업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는데, 비장애인이 갖는 선택권들이 장애인에게도 주어지는 것이 ‘회색을 이룬 사회’라고 생각해요. 장애인들 중에는 장애를 가진 이들끼리 모여서 일하는 게 편하다는 사람도 있고, 비장애인과 어울려 경쟁적인 사회에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들의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능력을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스펙트럼을 인정하는 사회가 필요하겠죠.”
언젠가 사회복지학과에서뿐만 아니라 교양과목으로도 ‘사회통합’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를 나누고 싶다고도 덧붙이는 그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는 여전히 법과 제도가 미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는 경쟁사회에 들어와서 비장애인처럼 마땅한 권리를 누리며 살고 있어요. 그러나 모든 장애인이 동등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장애인 당사자에게 와닿는 변화가 일어나려면 좀 더 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장애인의 주 돌봄자 가족들에 대한 지원 같은 것. “물론 활동지원인 제도가 있지만 정서상 장애인 가족을 맡기기 어려워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러면 우리는 이 노동력에 대해서도 마땅한 지원을 해 줘야 해요. 장애인 가족을 키우는 가족들이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하거든요.”더불어 그는 장애인고용 모델에 대한 적극적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돌봄과 자립의 문제를 상당 부분 고용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사회적 농업(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안아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농업 활동)을 운영하는 곳과도 연구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치유농업이라고도 불리는 사회적 농업의 가치에 대해서 소개하는 그다.
“주로 스마트팜으로 운영을 하는데,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하고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에요. 그리고 단순히 기계나 제품을 만지는 것보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다루는 것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며 ‘나도 무언가를 돌본다’는 마음을 갖고 애정을 담아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장애인고용에 있어서도 좋은 대안이 될 것입니다.”
물론 ‘단순 직무’로 한정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는 고민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노동력, 그들의 애씀과 숙련에 대해 임금을 지불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선하게 풀어 가려는 노력과 시도”에 대해서 함부로 단정 짓지 않으려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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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장애인’ 하면 떠올리는
장애인 중에 제가 포함되어 있나 봐요.
4월 무렵이 되면 조금 바빠지는데,
그렇다는 건 이 무렵에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삶은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는 게
아닐까요. 내일 당장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장애인들의 마땅한 권리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는 기회를 줄 수 있으니
의미 있는 날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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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얻은 ‘나’에게서 발견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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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를 잃은 후, 진짜 ‘나’를 얻었습니다.”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 속에 담긴 말이다. 이지선 교수가 찾은 ‘나’는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타인과 희망을 나누며, 새로운 행복을 채워 가는 ‘나’다. 그리고 <이지선의 이지고잉>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나’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쉬운 삶은 없잖아요. <이지선의 이지고잉>은 모두가 어렵고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그 사이사이 삶의 여유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설한 채널이에요.” 최근에는 ‘영양가 있는 채널!’이라는 댓글을 받아서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다정함과 진심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에너지가 된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고취하고, 복지 증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제정한 이 날은 이지선 교수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이 ‘장애인’ 하면 떠올리는 장애인 중에 제가 포함되어 있나 봐요. 4월 무렵이 되면 조금 바빠지는데, 그렇다는 건 이 무렵에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삶은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는 게 아닐까요. 내일 당장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장애인들의 마땅한 권리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는 기회를 줄 수 있으니 의미 있는 날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최근에는 멋진 행보를 보이는 장애인 유튜버들이 많잖아요. 이분들이 매일을 장애인의 날로 만들죠.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삶에는 서사가 있고, 그 서사를 지어 가는 이는 단연 나 자신이다. 그러나 모든 서사가 오롯이 나의 의지로만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삶은 어렵고 때로 가혹하다. 하지만 의미를 만드는 것은 내 몫이다. 스스로 자신의 길잡이가 되는 것. 이지선 교수를 보며 삶의 태도를 배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