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발견
누구를 위해 ‘장애인의 날’은 울리나
글. 윤은호
한양대학교 후견신탁연구센터 이사로 있으며, 자폐 장애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 자리에 올랐다.
“국가는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하여 장애인의 날과 장애인주간을 설정한다.” (법률 제4179호 4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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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는 장애인의 날 제정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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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유엔이 세계 장애인의 날을 처음 설정한 이후 각 당사국에게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권고한 데에 따라 1981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재활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의 날을 처음 열었다. 그러나 1회 이후 정부의 관심 부재로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민간 차원의 행사를 개최해 오다가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을 전후해 생긴 신체장애인 주도 장애운동의 영향을 받아 1989년 기존의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됨과 동시에 장애인의 날이 43조로 명기되면서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이후 법률이 전부 개정(5931호)되어 새천년 첫날 시행되면서 해당 조문의 위치는 12조로 옮겨져 날짜(4월 20일)와 ‘장애인주간’의 길이가 명시됐다. 이후 2007년 4월 1일 내용의 변동 없이 14조로 위치가 변경되며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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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그 의미가 무색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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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법률의 취지대로 장애인의 날이 시작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법률이 제정되었을 때 기대했던 입법효과는 충분히 달성되고 있는가?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 장애인의 재활 의욕도 목적을 이루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우선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어 왔는지 살펴보자. 4월 20일 전후로 다수의 언론에서 장애인 관련 심층기사를 보도하고 있으나, 그런 보도에서조차 장애인을 무능력한 존재로 지속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1. 한편 특정 커뮤니티에서 장애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혐오를 체득한 젊은 세대들이 현재 생산인구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취업 시 적응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회사 인사에서 강화되고 있는 동료 다면평가 등의 ‘객관적’ 제도를 통해 장애인의 일자리 유지 및 승진을 막아 구조적으로 장애인의 일자리 진입 장벽을 높이는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1년에 1시간 정도만 진행되는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 교육 및 사회적 장애인식개선 교육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두 번째, 장애인의 날을 통해 ‘장애인의 재활의욕’이 얼마나 고취되었을까. 1989년 장애인의 날이 법제화된 다음 해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제정되어 1991년부터 시행되었다. 의무고용비율 또한 확대되고 있어,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경우 장애인의 의무고용이 명시화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고용부담금으로 이를 때우는 실정이다. 의외로 기업과 장애구직자 간 인력매칭이 되지 않아 채용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장애인들이 특히 대학원이나 전문직 등의 고등교육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 근본적원인이다. 심지어 일부 공기업의 경우 장애인을 채용하고 싶어도 행정안전부의 지침2 때문에 증원이 되지 않아 울며겨자 먹기로 고용부담금을 내는 사례 또한 있다.
특히 장애 특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농인과 청각장애인, 내부장애인, 그리고 자폐인과 지적장애인, 심리사회장애인이 그러한 소외의 일선에 서고 있다. 실제로 신체장애인과 ‘안보이는장애인(비가시장애인)’ 간 유의미한 고용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e-고용노동지표 통계(2022)에 따르면 장애인의 평균고용율은 36.4%로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가운데 대표적 장애인으로 여겨지는 지체장애인의 고용율은 46.2%, 시각장애인은 43.1%로 평균을 상회하고 있는데 반해 안보이는장애인 중 지적장애인은 31.2%, 청각장애인은 31.0%, 언어장애인은 29.3%, 자폐인은 26.7%, 뇌병변장애인은 12.6%, 심리사회장애인은 11.3%에 불과하다.
1 박승희, 염지혜, 이현주. (2021). 장애인의 날이 포함된 4월 신문기사에 나타난 장애인 이미지의 30년(1990-2020)간 변화 추이. 장애와 고용, 31(3), 165-202. doi:10.15707/disem.2021.31.3.007
2 공공기관의 조직과 정원에 관한 지침 (기획재정부고시 제20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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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되어 있는 미인식장애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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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등록된 장애인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미인식장애인이 있다. 2022년 보도에 따르면 자폐인의 경우 2020년 한 해 2,719명이 의학적 진단에도 불구하고 장애 등록을 거부당하고 있고, 진단마저 받지 못한 자폐인 또한 적지 않다. IQ 1점 차이로 장애 등록조차 되지 않는 미인식 지적장애인은 셀 수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2021년 이후 최근 몇 년간 수만 명 단위로 증가한 ADHD인들도 이 목록에 포함되어야 한다3. 이들은행정적 관점에서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동일한 경쟁을 거쳐야 하고 그렇기에 더욱 쉽게 일자리 시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장애인에게, 특히 미인식 당사자를 포함한 정신적장애인과 신경다양인에게 장애인의 날은 그래서 자신들이 장애인 정책에서조차 배제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날임과 동시에(최근 돌봄요구가 적은 발달장애인이 청년정책과 장애인정책 모두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연구보고서가 발표되었다4) 더 나아가 수많은 장애인 일자리에서조차 자신이 주인이 아님을 확인하는 날이다. 따라서 현재의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식개선이나 장애인 재활이라는 비장애 포괄적인 목적을 향해 구성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 목적조차도 35년이라는 세월 동안 장애인 권리 이행과는 거리가 멀었던 날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고, 해당 조약이 요구하는 바를 준수하는지 여부를 벌써 두 번째로 심사받은 얼마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장애인의 괜찮은 일자리 제공 또한 해당 조약의 의무에 해당되며,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에게 신경전형인과 동일한 고등교육 접근성이 필요하다. 이 말조차 내뱉을 곳이 없는 장애인의 날은 지금 누구를 위해 울리고 있는가.
3 Adamou, M., Arif, M., Asherson, P. et al. (2013). Occupational issues of adults with ADHD. BMC Psychiatry 13, 59. doi:10.1186/1471-244X-13-59
4 박광옥 외. (2023). 발달장애청년의 정책소외 실태와 정책과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보고 23-일반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