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함께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옷장 속 예쁜 옷의
불편한 진실

글. 김미현

싸서, 예뻐서, 계절이 바뀌었으니까…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옷을 산다. 그런데 잠깐, 이제부터라도 좀 더 심사숙고해 보자. 우리가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의류 폐기물로 인한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 환경오염의 주범은 누구?

    • 답은 ‘패션 산업’, 그중에서도 패스트패션이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맞춰 트렌드가 될 만한 의류 제품을 짧은 주기로 생산, 판매하는 것을 가리켜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라고 부른다. 패스트패션은 2000년대, 제조부터 유통·판매까지 직접 운영하는 스파(SPA) 브랜드가 하나둘 늘어 나고, 온라인 쇼핑이 급성장하면서 하나의 소비문화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SNS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트렌드를 공유하는 일이 점점 더 활발해지면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패스트패션의 등장은 우리에게 최신 스타일이 옷을 빠르게, 값싸게 살 수 있다는 이점을 안겼다. 일각에서는 일부 명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디자인을 모든 사람이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게 됐다고 하여 패스트패션이 패션의 민주화를 가져왔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유행의 주기가 빨라지고, 패스트패션에 대한 인기가 가속화될수록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특히 많은 상품을 싸고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과다한 에너지와 유해 약품, 염색·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와 폐수, 쓰레기로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원단 등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패스트패션 덕분에(?) 지금 패션 산업이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셈이다.

  • 옷의 소비 기간과 환경 오염의 인과 관계

  • 모두 패스트패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전체 직물의 85%가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 이렇게 발생한 쓰레기와 폐기물은 매립할 장소가 없어 산처럼 방치되고 있으며, 그 면적도 갈수록 늘고 있다. 세계 최대 의류 관련 쓰레기 매립지로 유명한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의 매립지 면적은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규모와 맞먹을 정도다.
    문제는 재활용할 수 없는 이러한 의류 폐기물들이 방치된 장소의 토양은 물론 주변의 강과 해안의 생태계까지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의류 폐기물 대부분이 합성섬유, 다시 말해 미세플라스틱으로 이뤄져 있어 그 심각성이 상당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발표에 의하면, 전 세계 바다에 유입되는 미세플라스틱 주요 발생원 중 합성섬유가 35%를 차지할 정도다. 우리가 미세플라스틱 유발 물질로 알고 있는 치약·샴푸 등 개인 위생용품이 2% 남짓에 불과하다는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다.
    새 제품을 생산할 때마다 발생하는 온실가스도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섬유 및 의류 산업으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은 전체 배출량의 약 1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는 항공 및 해상 운송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많다. 문제는 만약 지금의 온실가스 배출 속도가 계속 유지된다면, 2030년에는 현재보다 50%가량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쁜 색을 내기 위해 염색, 표백하는 과정에서 수은이나 납·크롬·카드뮴 등의 발암 물질이 사용되고, 그 물질들이 강이나 바다로 그대로 흘러 들어가면서 각종 오염을 유발해 심각한 수질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패스트패션의 인기가 이어져 옷을 소비하는 기간이 계속해 짧아질수록 환경오염이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옷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넘어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꼭 필요한
    옷을 구매하는 것이 나를 더 돋보이게 하고
    환경도 지키는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적게 사고 가지고 있는 옷을 오래 입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자.

  • 나와 지구를 위한 행동이 필요한 때

  • 심각성이 가속화되자 패스트패션 종식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환경은 물론 노동 착취의 문제까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패스트패션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는 것. 지난해 국제연합(UN)은 패스트패션 규제를 공식적으로 예고했다. 2030년까지 일정량 이상의 리사이클링 소재 사용을 의무화하고, 재고품 폐기 처분 금지,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유럽연합(EU) 입법기구인 유럽의회 역시 지난해 7월 유로존에서 유통되는 의류의 내구성을 끌어올리고, 수선을 용이하게 하며, 재활용도를 높여 패스트패션으로 인한 환경오염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정비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 프랑스 정부는 지난 3월 2030년까지 패스트패션 업체들이 판매하는 상품 건당 최대 10유로(약 1만4,800원) 또는 의류 판매가의 최대 50%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린다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국내 기업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의류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옷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넘어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무조건 유행에 따를 필요는 없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꼭 필요한 옷을 구매하는 것이 나를 더 돋보이게 하고 환경도 지키는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적게 사고 가지고 있는 옷을 오래 입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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