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함께

플라스틱의 종착지
우리 몸

글. 임산하

플라스틱은 인류에 의해 탄생했다. 플라스틱으로 인해 벌어지는 환경 문제의 책임도 인류에게 있다. 특히 해양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심각한데, 세계 물의 날이 있는 3월 이에 대해 생각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 플라스틱과 함께하는 삶

  •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고 세안을 한 뒤 로션을 바른다. 아직 날씨가 쌀쌀해 옷을 단단히 갖춰 입고 신발을 신는다. 스마트폰을 열어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는다. 직장 근처에서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한다. 대체로 비슷한 도시의 출근길 모습인데,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 찌푸린 표정, 지친 마음? 그런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잘 드러나는 무언가, 바로 플라스틱이다.
    이른바 ‘현대는 플라스틱시대’라고 할 정도로 우리 삶에는 언제나 플라스틱이 함께한다. 단순히 플라스틱 하면 연상되는 비닐봉지, 용기, 빨대 등을 넘어 의류, 바닥재, 가전제품 등에도 플라스틱이 숨어 있다. 무게는 가볍고, 내구성이 좋으며 빠르게 대량 생산이 가능해 산업적 경쟁력까지 갖춘 플라스틱은 현대 인류의 짝꿍으로 거듭났다. 게다가 재활용의 이점도 있었다. 그런데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경우, 잘게 쪼갠 뒤 다시 제품을 만들어야 해서 이 과정이 거듭되면 품질이 떨어져 폐기된다. 이마저도 실제 선별이 되어 재활용된 약 24%에 불과한 일이다. 플라스틱은 결국 쓰레기가 될 운명이었던 셈일까. 그러나 그 쓰레기가 언제까지나 우리 집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미세플라스틱

  • 플라스틱은 분해되는 데에도 몇백 년이 걸리는데, 이 과정에는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불청객이 나타난다. 바로 미세플라스틱. 미세플라스틱은 말 그대로 미세한 크기 즉, 1㎛(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에서 5mm의 플라스틱을 의미한다. 실제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08년 워싱턴대학교의 보고에서 시작되었고,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년 수백만 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로 바다에 유입된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미세플라스틱은 자연스럽게 해양 생물의 몸에 축적된다. 먹이사슬에 따라 해양 생물이 올라오는 곳은 우리의 식탁. 애초에 어패류를 먹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세플라스틱은 공기 중에도 떠다녀 호흡기를 통해 우리 몸에 들어온다. 미세플라스틱은 해양과 대기는 물론 토양, 극지방과 심해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 피하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가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무게만큼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물론 90%는 흡수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머지는 축적된다. 미세플라스틱은 크기에 따라 혈관벽을 통과하거나 세포벽으로 침투하기도 한다.
      WHO(세계보건기구)와 FAO(유엔식량농업기구)가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을 증명할 수는 없다고 한 것도 사실이나 안심할 수는 없다. 인체에 간접적 영향을 준다는 여러 연구 결과도 지속해서 발표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서북농림과기대학 연구팀이 미세플라스틱을 임신한 쥐에게 먹인 결과 태어난 새끼 쥐에서 저체중 현상이 나타났고, 임신 중 엄마 뱃속에서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된 새끼 쥐도 난자 성숙이 떨어지고, 수정률과 배아 발달이 감소하는 현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 미세플라스틱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년 수백만 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로 바다에 유입된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미세플라스틱은 자연스럽게
      해양 생물의 몸에 축적된다. 먹이사슬에 따라
      해양 생물이 올라오는 곳은 우리의 식탁이다.

    •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떠다니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떠다니고 있다.

    • 해양 생물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해양 생물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미세플라스틱 문제

  •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무심결에. 직접적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더라도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플라스틱 분말, 펠렛 등 생산 단계에서 작게 제조된 ‘1차 미세플라스틱’, 환경 작용에 의해 작은 입자로 부서지면서 발생한 ‘2차 미세플라스틱’ 등 어떻게든 미세플라스틱의 생성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UCNI(세계자연보전연맹)이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양 유입 미세플라스틱 원인은 의류세탁(미세섬유)이 35%로 가장 높았으며, 타이어 마모와 도시 먼지가 각각 28%, 24%로 그 뒤를 이었다. 미세섬유는 길이 5mm 이하인 섬유 형태의 플라스틱을 뜻한다. 플라스틱을 가공한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등의 합성섬유가 포함된 의류나 침구를 세탁할 때에는 마찰로 인해 미세섬유가 방출되는데, 입자가 작아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해양에 흘러간다.
    이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으로 인한 문제와도 교차한다. 패스트패션은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유통시키는 의류로, 이를 이끄는 것은 글로벌한 스파(SPA) 브랜드들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고 쉽게 버리는 문화를 만드는 패스트패션 산업이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노동력 착취 등의 인권 침해와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짚어볼 부분이다.
    그 누구도 오늘날의 미세플라스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오늘의 무심함이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 이전 페이지 이동 버튼
  • 다음 페이지 이동 버튼
  • 최상단 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