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컬처
극적 요소로 소비되는 장애
장애를 치트키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
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장애를 온전히 다루지 않고 다른 목적을 위해 도구화, 수단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를 치트키(Cheat Key)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치트키는 ‘속이다’라는 치트(Cheat)와 열쇠를 뜻하는 키(Key) 결합어다. 그대로 직역을 하면 ‘속이는 열쇠’를 뜻하는데, 상황을 전개 시키거나 바꾸는 비밀이나 반전의 설정을 가리켜서 치트키라고 할 수 있다. 치트키로 장애가 설정되는 사례들은 비일비재하다. 장애를 그 자체로 대하거나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극적 재미와 몰입을 위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 가운데 애초에는 장애 콘텐츠라고 홍보가 되지만, 이런 치트키 설정이어서 실망감을 주는 경우도 꽤 있다. 즉 진짜 장애인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트키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한 가지는 처음부터 등장인물의 장애가 가짜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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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 반전을 위한 치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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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1995년에 개봉되어 장안의 화제를 크게 모았던 할리우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의 백미는 수사관이 잔혹한 범죄왕 카이저 소제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인데, 떠버리 캐릭터를 보여주는 버벌(케빈 스페이시)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자, 왼손 마비 장애인으로 등장하면서 아무도 그를 ‘카이저 소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장애가 있는 수다쟁이쯤으로 여겨지는데, 하지만 그가 유치장에서 나가며 놀라운 장면을 펼쳐 보인다. 버벌의 굽었던 발걸음은 곧바르게 되고 접혀서 붙어 있던 왼손도 펴지며 표정은 한결 밝고 자신감 넘친다. 그가 바로 카이저 소제였던 것이다. 결국, 그의 장애는 가짜였고 이런 장애인 위장은 영화에서는 극적 반전을 위한 치트키였던 셈이다. 이런 가짜 장애인 연기를 한 케빈 스페이시는 아카데미상 남우 조연상을 받기까지 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아예 가짜 장애가 먼저 공개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2019년 개봉한 영화 ‘블라인드 멜로디’ 는 가짜 시각장애인이 살인 현장을 목격하며 벌어지는 스토리라인을 보여준다. 일단 ‘유주얼 서스펙트’와 달리 관객은 자신이 시각장애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언제쯤 가짜 장애가 탄로가 날지 스릴감 있게 긴장과 갈등을 조성하는 것이 이런 영화들이 노리는 목적이기도 하다. 물론 당연히 시각장애인들의 삶이 이야기는 관심도 없고, 보이는 장애인 캐릭터는 모방이나 모사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중간 유형의 사례도 생각할 수 있는데 영화 ‘올빼미’에서는 밤에만 보이는 주맹증 침술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맹증 같은 시각장애가 있는지 불분명하지만, 시각장애를 은유와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절충적인 면모를 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낮에는 보이지 않고 밤에는 보인다는 사실이 치트키가 되어 위기를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시각장애인의 삶에 좀 더 주목하기보다는 정치권력의 속성을 드러내는데 장애가 활용된 면이 더 크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유형은 장애를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례들이다. 여기에는 다시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다른 동기를 유발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극복이 목적인 경우이다. 동기부여 유형으로 가족이나 연인이 장애를 얻게 되면 복수에 나서는 설정이 있다.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서는 민선재(김강우)의 악행 때문에 차지수(임세미)가 시각을 잃어버리게 되고, 이에 오빠인 차지혁(이진욱)이 민선재에 대한 복수심을 자극하게 한다. 가족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봐 장애를 입게 되면 이에 대한 응징을 결심하는 것이다. 본인도 포함하는 복수도 있다. 영화 ‘더 파이브’에서 은아(김선아)는 강도 때문에 남편과 딸은 물론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되어 복수에 나서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 불법 무기류를 사려 접근하고, 불법 장기 적출 의사에게 협박하여 필요한 전문 인력을 갖추려고까지 한다. 장기 이식을 미끼로 불법적인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데 합법 여부는 물론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현실성은 매우 떨어져 보인다.
극복의 서사를 보여준 사례는 2020년에도 리메이크된 드라마 ‘불새’를 꼽을 수 있는데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었던 윤미란은 교통사고로 중도 장애를 갖게 되는데 가벼운 감전 뒤에 몇 번의 수중 재활 치료로 두 발로 서게 된다. 이는 척추 장애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드러내기 충분했다. 드라마 ‘나쁜 엄마’(2023)도 심각하다. 이 드라마에서는 사법고시 합격 후 검사가 된 최강호(이도현)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가까스로 깨어나는데 7살 지능과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갖게 된다. 그대로 살아가는 아들을 인정하기 싫은 엄마 진영순(라미란)는 강호가 다시 서게 만들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다가 위암 말기인 것을 알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데 극구 말리는 강호 때문에 그만두는 대신 강호를 강물이 밀어 버린다.
아들을 강물에 밀어 넣은 이유는 그렇게 하면 살기 위해 강호가 걸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번이고 밀어 넣기를 하니 갑자기 강호가 강물에서 두 발로 서서 나오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극단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이다. 드라마 ‘비밀의 여자’(2023)에서는 사고로 남지석이 31년 동안 지적 장애를 갖게 되고 기억 상실증에 빠지게 되는데 갑자기 의자에서 넘어지면서 31년 전의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 당시 남지석은 서정혜에게 영어 문제로 ‘Will you marry me?’를 냈고 서정혜가 대답을 하기 전에 교통사고가 난 것이었다. 31년 만에 ‘나랑 결혼해달라’는 말을 하는 남지석과 놀라움과 당황의 눈물을 흘리는 서정혜가 만드는 감동적인 장면을 제작진이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를 왜곡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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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마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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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면을 드라마나 영화가 반영하면 좋을까. 드라마 ‘라이프’에서 예선우는 다른 비장애인이 그렇듯이 자신의 일상에 충실할 뿐 장애로 어떤 극적인 성과나 이야기를 만드는 삶을 보이지 않는다. 영화 ‘원더’에서는 장애의 극복을 말하지 않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떨치는 법을 말한다. 영화 ‘차선변경’에서는 오토레이서 선수였던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경륜 선수로 탈바꿈한다. 즉 장애를 마주하고 어떤 삶의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보여준다. 다시 오토 레이서 선수로 재활 복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상황에 맞게 경륜 선수로 도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애를 있는 그대로 깊이 마주하게 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