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발견
장애인 증명서보다
선생님의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글. 백순심
뇌병변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며,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며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불편하게 사는 게 당연하진 않습니다> 등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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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돌봄교실 신청으로 고민스러웠던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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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학교에서 돌봄교실을 신청하기 위해 그에 해당하는 서류를 제출하라는 안내문이 왔다. 우리에게 해당하는 서류는 맞벌이 자녀뿐이었다. 맞벌이 자녀는 1, 2순위도 아니고 5순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인터넷으로 신청할 때는 부모 중 한 명이 장애인이면, ‘장애인 증명서’를 제출하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올해는 그런 항목이 사라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애인 증명서를 제출하면 아이들이 돌봄교실에 선정되기 유리한 조건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 보았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굳이 나의 장애를 알리면서까지 돌봄교실을 이용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망설이기도 했다. ‘장애가 있는 엄마라는 사실을 말하면 아이들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자신의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 수도 있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며칠 고민 끝에 장애인 증명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서류를 내지 않음으로써 나의 정체성인 ‘장애’를 부정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알게 되는 사실이기 때문에 매도 빨리 맞자는 심정으로 재직 증명서와 함께 장애인 증명서를 제출했다.
그 후 아이들 학교에서 ‘돌봄교실 모집 결과 인원 초과로 추첨을 할 예정이오니 학교로 방문 요청한다’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작년에는 추첨 없이 돌봄교실을 이용했는데 올해는 경쟁률이 치열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쌍둥이인데 추첨에서 한 명이 선정될 경우, 나머지 아이만 학원을 따로 보내야 할까’, ‘돌봄교실을 포기하고, 둘 다 학원을 보내는 것이 스케줄 관리에 편리할까’, 이리저리 재 보기 시작했다. 두 녀석 다 학원을 보낸다면 저녁까지 봐 줄 수 있는 학원을 알아봐야 했다. 예정에도 없던 학원비가 지출될 생각에 부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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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란히 전해진 돌봄 선생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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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교실 이용 추첨을 위해 학교에 갔다. 그 결과 한 아이만 선정되었다. 남은 아이는 후보 10번이었다. 10번이면 돌봄교실을 이용할 확률이 희박하다고 생각되었다. 아이의 돌봄교실 이용 문제로 선생님과 통화할 일이 있었다. 선생님은 돌봄교실 선정 과정에 장애인 증명서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당신이 학교 측에 ‘장애가 있는 엄마이니 기회을 주자’고 건의하셨지만, 학교 측으로부터 규정상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비록 한 아이만 선정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위로가 되었다. 선생님이 나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 도우려고 애쓰신 마음이 느껴져서 속에서 뭔가 울컥함이 올라왔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나의 장애로 인해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바라볼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나를 힘들게 한 사람도 있었지만, 나를 도와준 많은 이들의 선한 마음들까지도 깡그리 잊어버린 것이다. 돌봄 선생님의 애써 주신 마음을 비춰 봤을 때 1학년 때도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 주셨을지 짐작되었다. 아이들이 학원 가는 것을 거부하고 돌봄교실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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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엄마라는 불안감을 떨치게 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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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앞에 후보들이 돌봄교실 이용을 포기해서 나머지 한 아이도 함께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며 격양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해 주셨다. 엄마인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게 느껴졌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표현력이 부족한 나는 그 당시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려 선생님께 애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학교에 계시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부모가 장애가 있든, 외국인 혹은 한부모 가정이든 모든 아이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장애인 엄마라는 이유로 괜한 위축감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불안감에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설령 아이들이 나로 인해 상처받는 순간이 오더라도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의 보호막이 되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때로는 남들에게 나의 장애를 숨기는 것보다 터놓는 것이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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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워킹맘의 고민을 해결시켜 줄 제도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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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엄마는 퇴직을 고민하는 시기가 두 번 찾아온다. 첫 번째는 아이를 낳았을 때, 두 번째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때이다. 육아를 위해 퇴직하게 되면 재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장애가 있는 엄마라면 더더욱 힘들다. 다른 사람들은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장애인은 그것마저 쉽지 않다. 나 역시 시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봐주시지 않으셨다면 경력을 쌓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재취업되지 않았을 때 ‘나의 장애’ 때문이라고 비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애 여성이 아이를 낳고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서비스가 보장되면 좋겠다. 육아 휴직을 끝내고 복직할 때 아이돌보미를 이용하거나 유치원 입학 추첨, 초등학교 돌봄교실 이용 신청 우선순위에 다문화 가정, 다자녀 형제처럼 장애인 부모도 해당하길 바란다.
이러한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특혜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사회적 약자들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