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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일터> 웹진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 북을 사용합니다.

프로의 세계

프리다이빙 김미림 강사

고요 속에 유영하다
글. 강태성 사진 제공. 김미림

시골 계곡에서 물을 친구처럼 대하던 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배낭여행 중 우연히 마주한 홍해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았다. 듣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물속에서는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호흡하고, 같은 방식으로 자유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는 세계 최초의 농인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었다. 이제 그는 바다에서 얻은 용기와 자유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누구나 물속에서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는 배리어프리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바다를 통해 다시 태어나다

물과의 인연은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시골에서 자란 그는 계곡과 폭포를 놀이터 삼아 자연스럽게 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수영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바람은 형편 때문에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잊고 지냈던 ‘물’에 대한 감각은 성인이 되어 떠난 세계 여행 중, 이집트 홍해에서 다시 깨어났다. 처음 숨을 참고 내려간 그 순간,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오로지 제 안쪽만 보이는 시간이었어요.”
바닷속에서 수면 위를 올려다보면 빛줄기가 물속으로 내려오고, 몸은 무중력에 가까워진다. 그는 그 감각을 “프리다이빙을 하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세계 곳곳의 바다를 경험한 여행은 그의 언어와 감각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결국 세계 최초 농인 프리다이빙 강사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인생에는 분명한 터닝포인트가 있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함께 잠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
프리다이빙에는 LMC(신경조절운동장애)나 블랙아웃처럼 한순간의 판단이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긴급 상황이 존재한다. 하지만 기존 구조 방식은 대부분 ‘말’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어 농인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이 문제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고, 결국 비구두 방식만으로 명확한 구조 신호를 전달할 수 있도록 ‘농식 레스큐’를 직접 고안했다. 말없이도 정확하게, 혼란 속에서도 동일한 절차를 따를 수 있는 구조 체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고민은 자연스럽게 농인 프리다이버들의 커뮤니티 ‘데프리다’로 이어졌다. 농인 학생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공동체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의 정보가 모이고, 자격증을 가진 안전 버디를 연결하며, 강사 없이도 안전하게 연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공간이 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교육과 투어 역시 이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하며 농인과 청인이 함께 잠수할 수 있는 환경을 확장해왔다.
그는 청인 수강생에게도 수중 수어를 가르친다. 처음에는 손짓으로만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소 낯설어하지만, 막상 물속에서 사용해보면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이렇게 명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모두 놀라곤 한다. 그는 이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배리어프리’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배려해야 한다는 시선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조건으로 함께 잠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에게 배리어프리는 제도나 장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방식에 대한 신념이다.
그가 잊지 못하는 수강생도 있다. 평생 물이 무서워 바다에 발조차 담가보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얼굴을 물에 대는 것조차 어려워했지만, 천천히 그를 믿고 따라오면서 결국 10미터까지 내려갔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그는 오히려 자신이 더 강해졌다고 말한다. 공포를 이겨내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바다는 그 모든 속도를 받아준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물속의 자유를 느끼길
물속은 그에게 ‘완전한 자유’의 공간이다.
“몸이 가벼워지고 잡념이 사라져요. 연결감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래서 제가 프리다이빙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국제 교류를 통해 세계 농인 프리다이버 네트워크를 확장할 계획이다. 더 많은 농인 강사를 양성하고,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체계를 정착시키는 것도 목표다. “해외 농인 강사들과도 협력해서 수중 커뮤니케이션을 표준화하고 싶어요. 모두가 같은 언어로 잠수할 수 있도록.” 프리다이빙을 통해 얻는 가장 큰 가치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힘, 그리고 공포를 넘어서는 용기요.”
지구의 70%가 바다인 만큼, 여행의 가능성도, 삶의 가능성도 넓어진다는 믿음이 그의 미소에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그는 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때가 옵니다.”
바다는 언제나, 준비된 마음에게 길을 열어준다.

함께 꿈꾸는 세상
㈜포스코휴먼스 장애인표준사업장

모든 가능성을 연결합니다
포스코휴먼스
글. 강지형 사진/영상. 황지현

2007년 12월 설립된 포스코휴먼스는 국내 1호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으로, 많은 기업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실제로 다양한 기업이 벤치마킹하기도 했는데, 선도적인 역할의 밑바탕에는 끈질긴 고민이 있다. ‘장애인고용촉진대회’ 5회 수상과 ‘장애인고용 우수사업주’ 선정은 그를 증명한다. 포스코휴먼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연결함으로써 더 큰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함께’의 가치
700명의 직원들 중 약 45%가 장애 직원으로 구성된 포스코휴먼스는 IT지원, 사무지원, 클리닝, 차량관리 네 개의 그룹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분 없이 함께 일한다. 업무에 적합하기만 하다면 장애 유형에 관계없이 채용하고 직원들이 서로에게 배우고 소통하며 일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하면서 ‘어울림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IT지원그룹의 모바일헬프파트는 주기적으로 ‘학습동아리’ 모임을 가져 업무 이슈를 공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직무 능력을 키우는 환경을 구축했다. 이서연 직원은 “사내 업무 애플리케이션 안내 및 조치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제조사나 기종별 기능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익힐 수 있어 동료들과의 대화가 업무에 큰 도움이 됩니다.”라며 끈끈한 부서 분위기를 자랑했다.
포스코휴먼스의 지극한 노력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이웃과 함께하는 기업’이라는 미션에서 출발했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슬로우 브릿지’는 직원들이 함께 모여 박물관·영화관 방문이나 축구와 같은 운동을 하는 행사이다.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기도 해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화합의 장이다. 한 달에 한 번씩 그룹별로 진행하는 봉사 활동은 회사의 정체성을 고려해 기관을 선정하는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성진 직원은 “자녀들과 함께 봉사 활동에 참여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아빠가 이렇게 멋있는 일을 한다고 아이들이 생각해 주어 무척 뿌듯했고, 교육적으로도 훌륭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함께’ 걷는 길
포스코휴먼스의 목표는 ‘직원들이 정년까지 일하는 것’이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사내에 전문재활상담사를 배치해 연차에 따라 단계별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많은 직원들이 주기적인 병원 방문이 필요한 점을 고려해 재활근태제도를 도입해 월 8시간씩 병원 방문에 사용할 수도 있다.
사무동은 ‘제1회 서울 유니버설 디자인 대상’을 수상했다. 휠체어 이동을 고려해 양문형으로 엘리베이터를 제작했으며, 비상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을 자동으로 인식해 “계단 통행 시 손잡이를 잡아 주세요.”라는 안내 음성이 나온다. “휠체어로 이동하면서 한 번도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라는 권승혜 직원의 말처럼 포스코휴먼스는 작은 부분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근로지원을 담당하는 박세진 과장은 “구성원이 직장 내에서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펼치기 위해서는 회사가 한 발 더 움직여야 한다.”며 포스코휴먼스의 가치관을 드러냈다. 직원보다 먼저 움직이는 회사, 포스코휴먼스는 오늘도 다양한 가능성을 포용하고 함께 걷는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포스코휴먼스 직원 인터뷰
“권리를 당연하게 누리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박승대 사장
포스코휴먼스는 직원들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여러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복지(福祉)는 ‘행복한 삶’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서연 직원
“평생 다니고 싶습니다.”
포스코휴먼스에 입사한 지 어느덧 15년이 되었습니다. 함께 어울리고 화합하는 경험은 제가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특히 문의 전화를 주신 직원분께서 “우리 딸도 안 해주는 건데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해주신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정년까지 다니며 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문성진 직원
“가족 같은 사이입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 적응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클리닝그룹은 휴게실에 다 함께 모이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선배님들에게 조언을 들으며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한 공간에 일하는 만큼 클리닝그룹은 사이가 끈끈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가족처럼 지내며 일하고 싶습니다.

권승혜 직원
“자신감이 생겼어요.”
전에는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일을 하며 저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용기 있게 도전하세요. 응원하겠습니다.

같이 즐겨요
공과 스틱으로 세상을 연결하다

충현게이트볼
글. 강지형 사진. 김승환

서울 역삼동,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스틱과 공을 든 이들이 하나둘 모인다. 환하던 얼굴은 이내 공을 앞에 두자 진지하게 변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충현게이트볼의 회원들. 이들은 각도를 잠시 계산한 뒤 망설임 없이 공을 친다. “딱”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군가 연달아 모든 게이트를 통과시킨 뒤 골폴까지 맞추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일제히 일어서서 축하를 건네는 회원들의 얼굴에는 제가 성공한 듯한 기쁨이 퍼져 있다.

필드 위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
강당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이 게이트를 통과한 순간이었다. 스틱을 쥐고 있던 안지혁 씨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충현게이트볼은 충현복지관의 주도하에 발달장애인들이 게이트볼을 통해 신체 능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탄생한 모임이다. 하지만 모임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게이트볼을 향한 회원들의 사랑과 열정이다. 스틱을 들고 공을 치는 회원들의 얼굴을 진지했고, 공의 방향을 가늠하는 눈은 신중했다. 지금만큼은 그들도 게이트볼 선수이다. 서진욱 복지사는 “처음 한두 달간은 기본 자세와 스윙법을 배웁니다. 반복 연습에 지루해하던 회원들도 필드에 나가 공을 치는 순간 눈에 생기가 돕니다.”라고 설명했다.
매주 목요일이면 빼놓지 않고 참석한다는 김민석 씨는 “게이트볼은 즉각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게이트를 통과하거나 골폴(마지막에 맞추는 막대)을 맞추는 순간의 기쁨이 제 발걸음을 이곳으로 이끕니다.”라며 게이트볼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충현게이트볼이 만들어진 2023년부터 참여했다는 한형석 씨는 “게이트볼을 처음 할 때는 어려웠어요. 생각보다 규칙이 복잡하거든요. 스틱으로 공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공을 맞출 때 나는 명쾌한 소리에 중독이 된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게이트볼로 이어진 인연
충현게이트볼은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나아간다. 경기장에 나왔어도 게임을 하고 싶지 않다면 구경만 하기도 하고, 1~2게임에는 참여하지 않다가 3게임에만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건 그들에게 배려가 아니다. 저마다 특성이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충현게이트볼의 활동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타인과 나를 연결하는 일’이다. 매주 얼굴을 마주하며 웃는 순간들, 같은 운동을 함으로써 생기는 소속감과 게이트볼을 더 잘 치고 싶은 의욕, 실력이 늘었을 때의 성취감이 그들을 하나로 만든다.
비가 오거나 날이 궂으면 실내에서 모임을 갖지만, 날씨가 허락한다면 늘벗공원의 게이트볼장이 이들의 경기장이 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모임을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이트볼장은 그 수가 많지 않아서 이들이 이용할 만한 곳을 찾기까지 꽤나 애를 먹었다. 하지만 게이트볼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강남구게이트볼협회와 연이 닿아 게이트볼장을 함께 사용하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 이들에게 게이트볼을 가르쳐주는 유경남 강사와도 이를 통해 함께하게 되었다. 늘벗공원에서 같이 게이트볼을 치며 회원들과 친해졌는데, 때마침 강사 자리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충현게이트볼은 스틱과 공의 궤적으로 인연을 맺어가고 있다.

열정과 사랑으로 만들어온 곳
충현게이트볼의 활동은 경기장을 벗어나서도 계속된다. 회원들은 함께 게이트볼 경기 관람을 하러 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은 게이트볼을 어떻게 치는지 보고 배운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직접 게이트볼을 칠 때도 마찬가지다. 매 경기마다 점수를 매기지만 항상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러나 1등에서 2등으로 순위가 내려가도 속상해하지 않는다. 게이트볼을 하는 그 자체가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공적인 라운딩에는 아낌없이 축하를 건네고 박수를 친다.
“게이트볼을 하면서 활력이 더 생겼어요. 이제 게이트볼 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어요.”라는 서문길 회원의 말처럼 게이트볼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서 건강한 일상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다.
그래서인지 회원들의 대부분이 모임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함께했다. 게이트볼은 성장의 밑거름이자 커다란 추억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참석율도 높은데, 회원들은 매주 있는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자율 참석인 만큼 동호회를 활성화시키고 유지하는 일은 모두 이들의 손으로 해낸 것이다. 충현게이트볼은 그 존재 자체가 회원들의 열정과 사랑을 드러내는 증거인 셈이다.

게이트볼로 풍부해지는 삶
충현게이트볼은 앞으로 동호회 내에서 대회를 열거나 다른 동호회와의 친선 경기를 하는 등 게이트볼의 재미를 늘려갈 예정이다. 대회는 동호인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고, 목표는 연습을 이어갈 동력이 된다. 친선 경기는 회원들 간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대회는 이기기 위한 게임이 아닌,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초기 멤버들의 실력이 지금보다 더 성장한다면 그들이 직접 신규 멤버들을 가르치는 강사의 역할을 할 것에 대한 기대도 있다. 가르쳐주며 배우기도 하고, 선후배라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또 하나의 상호작용이 생길 것이다. 충현게이트볼은 그렇게 공과 스틱을 매개로 세상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