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 대만, 필리핀을 여행하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가볍게 만들 수 있는지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낯선 도시들이 건넨 작은 배려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서 있는 감각을 경험했다.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우리가 함께 누리는 세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한 번 질문해보고자 한다.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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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옥지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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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지구 시인은 199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
지금은 인공와우를 착용한 구어와 수어의 이중언어 사용자이다.
슬픔을 억누르기 위해 유치한 장난을 연구하는 내향인이다. 저서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다정함을 은폐하기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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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지구 시인은 199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환대의 방식
스무 살 초반, 21년 지기 친한 언니가 한국복지대학교에서 유니버설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던 나는 그 단어가 생소해 “그게 뭐야?”라고 물었다. 언니는 “유니버설디자인은 나이, 장애 유무, 신체 조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거야. 특별한 보조나 예외 규칙 없이 처음부터 모두에게 편하게 작용해야 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오디즘(Audism, 청인이 우월하다고 믿고 농인에게 청인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청능주의)에 갇혀 있었기에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무도 모르게 ‘유니버설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중얼거렸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더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해외여행을 하지만, 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들어가는 일은 예민한 내 성격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 대만, 필리핀 세 나라를 다녀왔는데, 예상과 달리 낯선 환경에서도 내 마음에는 온화함이 찾아왔다.
첫 해외여행은 2017년 일본 후쿠오카였다. 타워 엘리베이터 안에서 농인 친구와 수어로 농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손짓을 보내왔다. 일본 안내원이 작은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을 일본 수어로 통역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호텔에서도 프론트 직원은 우리가 온천을 찾는다는 말을 알아듣고 일본 수어로 길을 안내해주었다. 일본 수어와 한국 수어는 약 70% 정도 비슷해 큰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농인이라는 이유로 먼저 필담을 요구하는 편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안 들린다”고 양해를 구하면 되돌아오는 것은 따가운 눈총과 엉뚱하게 크게 높아진 목소리뿐이었다. 사소한 불편함조차 해결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해외에서 현지인이 먼저 수어로 말을 건넸던 경험은 더욱 놀라웠다. 그제야 비로소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는다는 감각이 들었고,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두 번째 여행은 2023년 대만 타이베이였다. 로맨스 영화 <청설>을 통해 대만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언젠가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실제로 자전거를 대여해 도심 곳곳을 누비며 보니, 보도는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만했고 턱이 없는 구간도 많았다. 대만은 비가 자주 내리고 더위가 심한 나라라 대다수 건물의 1층이 필로티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 구조가 비와 햇빛을 자연스럽게 막아준다. 그 아래에서는 자전거 이용자, 휠체어 이용자, 어린이, 노인, 다양한 보행자가 서로 방해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오갔다.
2024년 필리핀 여행에서는 마닐라에서 세부로 이동해야 했는데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터질 듯한 공항 인파와 해가 져도 식지 않는 더위에 모두 지쳐 있었고, 수하물 등록을 누구 명의로 할지를 서로 떠넘기고 싶은 분위기였다. 그때 공항 직원이 우리가 수어를 쓰는 것을 보고 국제 수어 스펠링으로 우리 이름을 한 명씩 불러주었다. 다행히 일행 중 한 명이 국제 수어를 할 줄 알아 무리 없이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또 다른 직원은 우리가 환승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국제 수어로 계속 통역해주었다.
나는 이 세 나라의 장애인 복지 수준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경험들 덕분에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수채화처럼 옅어졌다. 일본의 엘리베이터 안내원과 호텔 직원, 대만의 도시 구조와 자연스러운 배려, 필리핀 공항 직원의 수어 안내는 ‘사회적 약자 배려’를 넘어 다양한 사람을 서비스의 기본값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유니버설디자인은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곁에 있었다.
동등한 인간으로 서기 위한 질문들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질문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은 여전히 편하게 움직이기 어렵고, 필요한 지원이나 정보 접근이 제때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각장애인이 점자 안내가 부족한 건물을 지나야 하고, 지체장애인은 경사로조차 없는 출입구 앞에서 멈춰 서야 한다. 발달장애인은 복잡한 행정 절차에서 충분한 설명을 얻지 못하고, 청각장애인은 의사소통 지원 없이 중요한 상황을 마주한다.
나는 살아오면서 이러한 장벽 앞에 설 때마다, 그 상황을 스스로 해결해내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거나,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요구한다. 그러나 최근 몇 해 동안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외출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고, ‘장애를 드러내는 일’ 또한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 무엇보다 그 경험은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장애가 있는 모두가 자유로움을 느끼고,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위한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경사가 울퉁불퉁하거나 표지 안내가 부족한 장소에서 불편함을 조심스레 표현하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변화의 씨앗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나는 앞으로도 두 가지 질문을 오래 붙잡고 가고자 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는 어떻게 허물 수 있는가’, 그리고 ‘한국 사회는 언제쯤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될 것인가.’ 상황이 허락한다면 매년 세계 장애인의 날마다 낯선 도시로 떠나 보고 싶다. 서로 다른 몸과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제약 없이 공간을 누비며 어울리는 장면 속에서, 이 질문들의 답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날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들과 한국에서도 부드러운 경사의 길을 함께 걷고 싶다.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건물을 지나며, 서로를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필요한 지원이 당연하게 제공되는 사회를 함께 꿈꾸고 싶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고, 그 사실만으로도 동등하다. 평등과 포용이 ‘배려’의 언어가 아니라 ‘공존’의 언어가 될 때,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수월하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