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스틱과 공을 든 이들이 하나둘 모인다. 환하던 얼굴은 이내 공을 앞에 두자 진지하게 변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충현게이트볼의 회원들. 이들은 각도를 잠시 계산한 뒤 망설임 없이 공을 친다. “딱”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군가 연달아 모든 게이트를 통과시킨 뒤 골폴까지 맞추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일제히 일어서서 축하를 건네는 회원들의 얼굴에는 제가 성공한 듯한 기쁨이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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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위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
강당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이 게이트를 통과한 순간이었다. 스틱을 쥐고 있던 안지혁 씨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충현게이트볼은 충현복지관의 주도하에 발달장애인들이 게이트볼을 통해 신체 능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탄생한 모임이다. 하지만 모임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게이트볼을 향한 회원들의 사랑과 열정이다. 스틱을 들고 공을 치는 회원들의 얼굴을 진지했고, 공의 방향을 가늠하는 눈은 신중했다. 지금만큼은 그들도 게이트볼 선수이다. 서진욱 복지사는 “처음 한두 달간은 기본 자세와 스윙법을 배웁니다. 반복 연습에 지루해하던 회원들도 필드에 나가 공을 치는 순간 눈에 생기가 돕니다.”라고 설명했다.
매주 목요일이면 빼놓지 않고 참석한다는 김민석 씨는 “게이트볼은 즉각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게이트를 통과하거나 골폴(마지막에 맞추는 막대)을 맞추는 순간의 기쁨이 제 발걸음을 이곳으로 이끕니다.”라며 게이트볼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충현게이트볼이 만들어진 2023년부터 참여했다는 한형석 씨는 “게이트볼을 처음 할 때는 어려웠어요. 생각보다 규칙이 복잡하거든요. 스틱으로 공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공을 맞출 때 나는 명쾌한 소리에 중독이 된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비가 와 충현복지관 강당에서 게이트볼을 하는 회원들
게이트볼로 이어진 인연
충현게이트볼은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나아간다. 경기장에 나왔어도 게임을 하고 싶지 않다면 구경만 하기도 하고, 1~2게임에는 참여하지 않다가 3게임에만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건 그들에게 배려가 아니다. 저마다 특성이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충현게이트볼의 활동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타인과 나를 연결하는 일’이다. 매주 얼굴을 마주하며 웃는 순간들, 같은 운동을 함으로써 생기는 소속감과 게이트볼을 더 잘 치고 싶은 의욕, 실력이 늘었을 때의 성취감이 그들을 하나로 만든다.
비가 오거나 날이 궂으면 실내에서 모임을 갖지만, 날씨가 허락한다면 늘벗공원의 게이트볼장이 이들의 경기장이 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모임을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이트볼장은 그 수가 많지 않아서 이들이 이용할 만한 곳을 찾기까지 꽤나 애를 먹었다. 하지만 게이트볼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강남구게이트볼협회와 연이 닿아 게이트볼장을 함께 사용하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 이들에게 게이트볼을 가르쳐주는 유경남 강사와도 이를 통해 함께하게 되었다. 늘벗공원에서 같이 게이트볼을 치며 회원들과 친해졌는데, 때마침 강사 자리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충현게이트볼은 스틱과 공의 궤적으로 인연을 맺어가고 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회원들 게이트를 통과하면 다같이 축하한다
열정과 사랑으로 만들어온 곳
충현게이트볼의 활동은 경기장을 벗어나서도 계속된다. 회원들은 함께 게이트볼 경기 관람을 하러 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은 게이트볼을 어떻게 치는지 보고 배운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직접 게이트볼을 칠 때도 마찬가지다. 매 경기마다 점수를 매기지만 항상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러나 1등에서 2등으로 순위가 내려가도 속상해하지 않는다. 게이트볼을 하는 그 자체가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공적인 라운딩에는 아낌없이 축하를 건네고 박수를 친다.
“게이트볼을 하면서 활력이 더 생겼어요. 이제 게이트볼 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어요.”라는 서문길 회원의 말처럼 게이트볼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서 건강한 일상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다.
그래서인지 회원들의 대부분이 모임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함께했다. 게이트볼은 성장의 밑거름이자 커다란 추억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참석율도 높은데, 회원들은 매주 있는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자율 참석인 만큼 동호회를 활성화시키고 유지하는 일은 모두 이들의 손으로 해낸 것이다. 충현게이트볼은 그 존재 자체가 회원들의 열정과 사랑을 드러내는 증거인 셈이다.
게이트볼에 집중한 모습
게이트볼로 풍부해지는 삶
충현게이트볼은 앞으로 동호회 내에서 대회를 열거나 다른 동호회와의 친선 경기를 하는 등 게이트볼의 재미를 늘려갈 예정이다. 대회는 동호인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고, 목표는 연습을 이어갈 동력이 된다. 친선 경기는 회원들 간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대회는 이기기 위한 게임이 아닌,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초기 멤버들의 실력이 지금보다 더 성장한다면 그들이 직접 신규 멤버들을 가르치는 강사의 역할을 할 것에 대한 기대도 있다. 가르쳐주며 배우기도 하고, 선후배라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또 하나의 상호작용이 생길 것이다. 충현게이트볼은 그렇게 공과 스틱을 매개로 세상을 넓혀가고 있다.